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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ㅣ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로열 호텔 42층, 스카이 다이닝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죽은 동양인처럼 생긴 흑인 남자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사건을 맡은 형사 무네스에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생모는 어린 자신과 아버지를 두고 집을 나갔다. 남자 혼자 몸으로 어린 아들을 키우던 아버지는 미군들에게 희롱당하는 여자를 도와주려다 몰매를 맞아 죽었다. 아버지를 때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미군들, 도와주지도 않고 웃으며 보던 구경꾼들, 틈을 타 도망친 여자, 자신을 버린 어머니까지 모두 증오한다. 형사가 된 것도 합법적으로 복수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잡는다는 구실로 인간들에게 복수할 수 있으니까. 조니라는 이름의 젊은 흑인은 왜 이 먼 타국까지 왔다 살해당한 걸까?
다케오가 병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자 아내 후미에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제 발로 화류계로 뛰어들었다. 안 그래도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미모의 아내는 일을 시작하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그런 아내에게서 다른 남자의 냄새가 난다. 일이 일이니 만큼 어느 정도는 각오한 터였지만 단순한 손님이 아니란 느낌이 온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남자랑 도망이라도 간 걸까?
켄 슈프턴은 할렘 출신의 뉴욕 경찰이다. 일본에서 조니 헤이워드에 대한 자료를 요청해오자 남의 나라 국민의 살인에 열의를 다하는 일본 형사들에게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할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에 어떻게 일본에 갈 돈을 구한 건지, 일본에는 왜 간 건지 처음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감이 온다. 조니의 아버지는 왜 자신의 목숨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아들을 그 먼 일본으로 보낸 걸까?
야스기 교코는 촉망받는 정치인 고오리 요헤이의 아내다. 남편도 유명하지만 본인도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작가 겸 가정 문제 평론가로 잘 나간다. 열아홉이 된 아들과 열일곱이 된 딸이 있는데 아들은 엄마 사업의 파트너로 반듯하게 잘 자란 아들 놀이를 하며 뒤로는 온갖 짓을 다하고 다니고 있다. 교코는 아들이 사람을 차로 치어 죽이고 뺑소니를 친 걸 알면 어떻게 될까?
80세가 다 된 현역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인물들의 사건을 씨실과 날실을 흠없이 엮어내듯 엮어냈다. 500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일본에서 770만부 넘게 나간 게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장르로 보면 추리소설이겠지만 '돈은 그야말로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인간은 무기물로 변한다. 오로지 돈만이 존재한다(323쪽~324쪽)' 같은 문장들에선 사회를 고발하는 의식도 엿보인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인간의 증명'인가는 제일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제목이 갖는 무게감에 비하면 그걸 풀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 감정에 호소한 거 같아 아쉽긴 하다. 작가가 극 중 인물을 통해 '인간의 증명'을 설명하기보다는 작품 자체로 느끼게 해줬다면 더 묵직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드라마 '로열 패밀리'의 원작이라고 하는데 드라마를 보지 않아 내용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모르겠다. 드라마 '로열 패밀리'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원작인 소설도 읽어보면 어떨까? 듣기론 드라마보다 원작이 더 완성도가 있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