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이름은 시오리. 옛 도쿄의 서민 동네 풍경과 정취가 남아 있는 야나카에서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세 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목조 상가 건물로 1층은 가게, 2층은 생활공간으로 쓰고 있다. 여동생 둘이 있는데 큰 동생 하나코는 외국인들의 데이트 파트너가 되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막내 동생 라쿠코는 아직 어리고 아빠가 다르다. 엄마가 집 근처 사는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 낳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엄마랑 아빠는 이혼을 했다. 동생 둘은 엄마랑 살고, 아빠는 고향으로 내려가 염색을 하는 여자와 재혼을 한 뒤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난 혼자 살고 있지만, 자주 과자를 사들고 와서 같이 차를 마시는 마도카 씨와 죽은 아내가 입었던 고급 기모노를 넘겨 주었던 잇세이 씨 덕분에 외롭지는 않다.
 

 어느 날, 내가 운영하는 가게 '히메마쓰'에 어떤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아빠랑 목소리가 똑같아 깜짝 놀랐다. 기린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그의 이름은 기노시타 하루이치로. 다도회에 입고 갈 기모노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도회에 다녀온 후 보고한다고 해서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보고를 하러 와서 의외였다. 그렇지만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낀 그 남자가 반가웠고, 또 보고 싶었다.

 

 '초초난난'은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이나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 단어의 의미답게 이 책의 남자 기노시타 하루이치로와 여자 시오리는 늘 다정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늘 음식과 술, 일본의 다양한 축제와 문화, 기모노와 옷이 함께한다. 침공양, 벚꽃놀이, 액막이, 불꽃놀이, 납량 유령화, 칠복신 순례, 달구경, 국화 축제, 다도회, 복갈퀴 시장 등을 비롯해 시오리가 그 남자 기노시타 하루이치로와 보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는 이렇게 다양한 일본 문화와 축제가 늘 함께 하는데 덕분에 낯선 문화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음식은 두 사람의 데이트 뿐만 아니라, 여동생인 하나코, 동네 친구인 마도카 씨, 가끔 데이트를 하는 잇세이 씨, 새 엄마와의 만남에도 늘 등장한다. 책의 첫 문장도 시오리가 정월 7일에 봄나물 일곱 가지를 넣어 끓인 죽인 칠초죽을 만들어 먹는 걸로 시작될 정도니까. 본가 방문을 어색해 하는 시오리가 가을이 되어 집을 찾은 것도 밤밥을 만들기 위해서 였고, 그 남자 기노시타 하루이치로를 만나게 된 계기도 다도회 참석 덕분이었다. 시오리가 아직은 손님일 뿐이었던 그 남자에게 처음 대접한 것도 고치카라는 전통 과자였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후리소데를 빌리러 온 하나코가 시오리에게 뇌물로 내민 것도 몽블랑이었다. 시오리가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그에게 이별을 고했던 날, 그가 만들어 준 음식은 카레 우동이었고, 새 엄마와 둘이 앉아 먹은 식사는 양식이었다. 작가 오가와 이토의 전작 [달팽이 식당]에 이어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인 [초초난난]에서도 이렇게 음식과 요리가 주요 소재가 될 수 있었던 건 작가 자신이 요리를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ogawa-ito.com)에 독서 일기, 식당 순례기와 더불어 자신만의 요리법을 '밥과 간식'이라는 코너를 통해 소개할 만큼 그녀는 요리를 좋아하니까.

 

 [초초난난]의 큰 틀은 시오리와 기혼자인 기노시타 하루이치로의 연애소설로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연애는 오히려 일본의 문화와 음식 문화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정도로 보인다. 일본 소설 답게 유부남과 미혼 여성의 사랑이라는 불륜 코드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감정이나 다툼, 결정적 사건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두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기모노나 다도 같은 일본 문화를 비롯해, 음식 이야기로 일괄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439쪽에 달하는 적지 않은 양이 지루하지 않게 읽혔고, 그녀의 전작 [달팽이 식당]이 영화화된 것 처럼, 이 책 역시 영화화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가와 이토가 다음 책은 "기모노 차림의 시오리와는 달리 주인공이 맘껏 달릴 수 있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는데, 어떤 책일지 궁금하다. 그 전에 그녀의 다른 책들(홈페이지에 연재한 일기와 레시피를 모은 [펭귄과 살다], [펭귄의 부엌], [펭귄과 하늘 위를 걷다], 식당 순례기를 모은 [지구 식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을 먼저 읽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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