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서진영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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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서울내기다. '서울내기 다마네기'라는 그 서울내기. 태어난 곳도, 살고 있는 곳도, 살게 될 곳도 서울인 완전 서울내기다. 그런 내 피에도 5천년의 역사가 녹아있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새 것 못지 않게 옛 것에도 눈이 가기 시작한 걸 보면 말이다.
 

 작가 서진영에게는 그 순간이 더 빨리 왔었나 보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그녀가 전작 [한국의 시장]에 이어 무형문화재 12인을 인터뷰하고 책을 냈다. 출판사는 2009년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출간했던 시드페이퍼다.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뉜다. 의, 식, 주, 멋. '의'에서는 한산모시짜기, 염색장, 침선장 장인 3명을 만나 우리 옷의 멋스러움을 보여주고, '식'에서는 옹기장, 사기장, 나주반장의 장인 3명을 만나 우리 먹을거리에 깃든 멋을 소개한다. '주'에서는 소목장, 염장, 나전장의 장인 3명을 만나 우리 옛 집에 스민 멋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멋'에서는 백동연죽장, 낙죽장도 장인, 배첩장(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기법, 표구는 일본식 표현이다.)의 장인 3명을 만나 우리 생활에 배인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작가가 전하는 장인의 삶은 참 고단하다. 한산모시 짜기 장인의 입술과 혀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는데 모시실을 만들려면 이로 태모시(모시풀을 1차 가공한 실)을 쪼개야 하기 때문이다. 입술과 혀에서 피가 날 만큼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모시 한 필(약 30*180cm)을 짜는 데 꼬박 석 달이 걸린다고 한다. 또한 옹기장은 1,000도가 넘는 가마를 보름 동안 지켜내다 보니 눈이 버텨내질 못해 색안경을 낀다고 한다. 예로부터 옹기장은 예순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는데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낙죽장도 장인의 손도 성한 곳이 없다. 수시로 베이니 응급처치에는 이골이 나서 피가 뚝뚝 흘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데 오히려 보는 이가 놀라 어쩔 줄 모른다고 한다. 날이 선 칼을 다루다 보니 몇 손가락은 마디가 부족하기까지 하다. 요즘에야 호신용으로 낙죽장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작업의 편리를 위해 날을 세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날을 세우지 않은 건 이미 칼이 아니기에 요즘에도 작업할 때는 반드시 칼의 날은 세운다고 한다.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쳐 장인이 된 그들은 모두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대를 이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는 대부분 장인의 자녀들이 자신의 의지로 혹은 부모의 권유로 대를 잇고 있는데 그 다음을 누가 이을지 막막하다고 하니 어쩌면 다음 세대에서는 어떤 것들은 책으로만 남을 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장인이란 단어때문에, 500쪽에 가까운 분량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어휘때문에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우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충분히 재미 있으니까. '도'와 '검'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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