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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Zone
차동엽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문장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언급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문장 말이다. 그의 연설문 전부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의미로 이 두 개의 문장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해석했다.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고 배워라,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은 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일테니 어떤 사람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버려라, 겸손한 자세로 늘 책을 읽고 배워라, 세상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얼마든지 많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할 때 나의 성장은 그 때부터 끝이다,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거저거 다 재는 똑똑이가 되기 보다는 다른 건 포기하더라도 내가 진짜 원하는 거에 미쳐봐라, 바보에게 세상은 온통 신기한 일 투성이일 테니 늘 바보의 눈으로 세상을 처음 만난 듯 봐라 등등.
이번엔 차동엽신부님이 바보가 되라고 하신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디젤도 "Smart? No! Be stupid!"라는 브랜드 광고를 내놨다는데 바보가 새로운 유행거리라도 되나?
차동엽신부님은 누구에게나 바보지대라는 게 있으며, 그것이 새로운 시대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란다. 그러면서 '바보철학 12훈'을 제안하는데 상식을 의심하라, 망상을 품으라, 바로 실행하라, 작은 일을 크게 생각 여기라, 큰일을 작게 여기라, 미쳐라, 남의 시선에 매이지 마라, 황소걸음으로 가라, 충직하라, 투명하라, 아낌없이 나누라, 늘 웃으라가 그것이다. 슥 읽어봐도 그다지 새로워 보이는 건 없어 보인다. 그럼 차동엽신부님은 이걸 어떻게 풀어낸 걸까.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들며 각 원칙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바보 철학 3훈인 '바로 실행하라'를 읽어 보면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이 등장하는데 이렇다. 작가가 어렸을 적 동네에 '재만'이라는 바보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심부름시킬 일이 있어 재만을 부른 뒤 "고잔 좀 갔다 오너라."라고 말하고 심부름 내용을 알려주려고 아들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몇 시간이나 지나 아들이 나타났기에 화가 나서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났냐고 물었더니 들은 대로 고잔에 다녀왔다고 하더란다. 고잔이란 곳은 그 동네에서 20~30리나 떨어진 곳이었는데 말이다. 그 뒤로 그 마을에는 "저 놈 하는 행동이 꼭 재만이 고잔 갔다 오듯 하다"는 속담이 생겼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실례를 통해 즉시 이행의 중요성을 전달한 셈이다.
이렇듯 풍부한 실례 덕분에 책은 쉽게 읽힌다. 그리고 작가가 주장하는 '바보'의 개념이 새로운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의미의 '대지약우(大智若愚)'가 노자의 말에서 유래된 걸 보면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바보가 아니라 확장된 의미로서의 바보는 허허실실의 도가 트인 도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바보가 성공하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