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집 안방마님 지론이 있다. '사람은 얼굴 파먹고 산다.'가 그것인데 나도 동의한다. 링컨대통령이 '마흔 살 이후에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다. 어릴 때 얼굴이야 부모님께 받아 타고난 얼굴이지만, 나이를 먹으며 만들어지는 얼굴은 자기 자신이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관상학 보다는 인상학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렇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산다'가 아니라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 생겼다'가 맞는 말이란 거지.
 

 책 표지 띠지에 실린 작가의 사진을 보고 보통 인상 아니라고 생각했다. 갸름한 얼굴이며,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 가늘게 뻗은 목, 섬세한 이목구비까지 분명 미인인데 여리지도, 순하지도 않은 기세가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까 책 앞날개를 펼쳐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빙고! 역시 '평범'과는 아니구나.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활동 경력에 프랑스 유학 기간 만난 예술가와 결혼 없이 아이를 가져 출산했다. 책에 나오지만 그녀는 임신 7개월까지 부모님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남편 옆에서 출산하기 위해 프랑스행 비행기를 탄 사람이다.

 

 책이(문장이) 창조자인 작가를 닮는 건 당연하다. 내가 느낀 작가의 인상 그대로 책에서 읽혀지는 목소리는 매우 강하고, 단호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문장과 속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했다. '아니, 이건 억지야', '지나치게 편협한 해석인데?', '일반화의 오류야', '모든 걸 못으로 보고 망치 들고 달려드는 자세 아닌가?',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이 억지스러운데' 등등. 물론 기발해서 재미있었던 부분도 많았다. 남성들이 정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박은 아이의 엄마는 언제나 분명하지만 아빠가 누구인지는 언제든 약간의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생리적 불안에서 기인한다(28쪽)는 해석이나, 유니폼을 입고 있는다는 건 그 유니폼 속의 역할 이상을 결코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는 해석(35쪽), 원조교제를 꿈꾸는 30대, 40대 아저씨들 입맛에 맞게 조련된 듯 애교 만점의 걸그룹들이 창궐하는 사회라는 문장(36쪽), 인류를 구원하는 아주 쉽고 달콤한 방법으로 스킨십을 가능한 많은 인류에게 건네라는 부분(67쪽)같은 부분 말이다.

 

 작가의 목소리나 주장을 그대로 따라 편하게 읽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불편할 것이다. 대신 끊임없이 물음표를 들이대며 읽는 독자라면 반대로 아주 즐거운 책읽기가 될 것이다. 어차피 양 손에 떡을 쥐는 법은 없다 했으니 한 쪽 독자를 잃는다고 작가가 서운해 할 것 같지는 않다. 난 재미있게 읽은 쪽에 해당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마음에 쏙 든다는 말은 아니다. 바로 문장때문이다. 그녀의 문장은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듯 보인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주어가 지나치게 길어 어디까지가 주어인지 분명하지 않은 문장이 많았다. 수식어가 지나치게 길어 내용의 이해를 떨어뜨리는 문장도 많았고, 작가의 생각이 엉킨듯 풀려나온 문장으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묻게 되는 문장도 많았다. 때문에 난 난동증 환자도 아닌데 책 곳곳에서 막혀 어렵지도 않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책의 창조자는 작가이니 내 하고 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책이란 형태를 가지고 세상에 나올 때는 적어도 독자를 의식한 글쓰기를 하는 게 작가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한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글쓰기라면 혼자 써서 혼자 읽고 마는 게 마땅하다. 생각이 다듬어져 나온 문장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쏟아지는 그대로 만든 문장 같은 게 많이 보여 아쉽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에게 더 즐거운 경험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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