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와 보니 잘 생긴 인도 애인은 가재도구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언젠가 둘이 가게를 함기 위해 모아둔 비상금까지 홀랑 다 들고서. 심지어 알뜰살뜰 모아온 주방 기구도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외할머니가 남겨 주신 겨된장항아리는 남겨둔 게 다행이랄까?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10년 전, 열 다섯에 도망 나왔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표를 끊었다. 설강가상 갑자기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집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엄마가 텃밭에 몰래 숨겨둔 돈만 훔쳐내면 바로 도망 나올 계획이었는데 그만 들켜버렸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엄마 집 한쪽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 식당을 열기로 한다. 물론 돈은 엄마한테 빌렸다. 사금융 아쉽지 않을 이자를 갚기로 하고. 물론 식비, 난방비, 월세 등도 지불해야 한다. 댓가로 돼지 엘메스를 돌봐야 하지만.

 

 식당 이름은 '달팽이 식당'이다. 하루에 한 팀만 예약을 통해 받는다. 전화나 이메일, 팩스, 아니면 직접 면담을 통해 손님을 파악한 뒤 예산에 맞춰 메뉴를 짠다. 재료는 현지 조달. 산에 들어가 버섯과 나물을 채취하고, 동네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사용하며, 가까운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구입한다. 동네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상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정도만 인터넷으로 구매할 뿐이다.

 

 손님은 다양하다. 첫 번째 손님은 식당 개업을 도와 준 동네 어른 구마씨였다. 도망간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는 그를 위해 석류카레를 만들어 줬다. 짝사랑하는 여고생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스프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꼬마가 맡긴 거식증 걸린 토끼를 치료하기 위해 쿠키를 구웠고, 몰래 도망온 게이 커플을 위해선 배달을 나가기도 했다. 남자가 죽은 후 상복만 입고 지내온 첩 할머니를 위해선 풀코스 만찬을 대접했고, 엄마의 애인에게는 오차즈케를 만들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암에 걸렸고,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약혼했던 슈이치를 다시 만나 결혼도 했다. 돼지 엘메스를 잡아 결혼식 피로연 만찬으로 요리한 후 몇 주 뒤 엄마는 죽었고 '나'는 식당을 닫았다. 계절이 지나 문득 손에 들어온 들비둘기를 요리해 먹고 비로소 목소리가 돌아온 '나'는 다신 식당을 열기로 한다.

 

 이 책을 쓴 오가와 이토는 처음에 작가로 데뷔했지만 작사가로 오래 활동했다고 한다. 요리를 좋아해서 낸 첫 장편소설 [달팽이 식당]이 히트해 '평일엔 작가, 주말엔 요리사'로 살고 있다는데 책에 내내 등장하는 요리가 여쩐지 범상치 않더라니. 나도 달팽이 식당에 가고 싶다. 제철에,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주는 요리, 먹고 나면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한 번도 꿈에 나타난 적이 없던 사람이 보이는 그런 요리를 만들어 주는 달팽이 식당 말이다. 그럼 나는 어떤 요리를 부탁할까? 아, 모르겠다. 뭐, 내가 몰라도 달팽이 식당 주인이라면 알아서 해줄 것 같지만.

 

 재미있고 맛있는 책 읽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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