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빅터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존 칼린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결정적 시간적 배경인 1995년 6월 24일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학생이었고 태어나서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여름을 보내고 있었네요. 그때 나에게 세상은 가족, 친구, 학교 정도의 범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변화에 대해서는 당연히 무지했습니다. 아니,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이 책을 통해 1995년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있었으니 참 뒤늦은 배움입니다.

 책은 1995년 6월 24일 새벽에서 시작되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 있었던 1985년으로 단번에 10년을 되감지요. 그리고 차근차근 사람들과 시간들을 풀어냅니다. 책의 첫 시간으로 돌아가기까지요. 그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그 날이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동시에 단 한 순간의 변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택과
만남과 변화를 통해 역사에서 자신의 몫을 완벽히 수행한 결과란 의미입니다. 그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0점을 향하여>의 '모든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전부터 예비되기 시작한다그것이 발생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제각각 다른 시각, 다른 장소에서 준비되기 시작하여 그 사건 발생 각에 맞춰 다가온다. 그리하여 사건 발생시각, 즉 영점이 되면 그것들은 일시에 합쳐져 사건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마 비전을 가지고 가지고 있었던 만델라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영점을 향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테지만요. 

 스포츠는 3S(sex, screen, sports)의 하나로 정부나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그들로부터 돌리기위해 사용하는 대표적 수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 야구가 도입된 시기를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걱정하는 이들은 스포츠가 그런 수단으로 오용되는 것을 경계해왔구요.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에서 보듯 스포츠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내는 화해의 수단이 될 수도 있군요. 럭비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나니 왠지 호기심이 생깁니다. 언젠가 TV에서 럭비경기,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프링복스팀 경기를 보게 된다면 재빨리 채널을 돌리지않고 잠시 시선을 두게될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는 개봉 날짜가 벌써 정해졌군요. 3월 4일. 키가 큰 모건 프리먼이 만델라대통령을 맡았고 아마 맷 데이먼이 맡은 역은 등번호 6번의 주장 피나르이겠지요? 책으로도 충분히 가슴 울렸던 이야기를 클린트 이스트우드감독이 얼마나 깊이있게 연출했을지가 궁금합니다. 마초영화를 주로 찍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이 된 후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들을 찍으며 거장이란 소리를 듣고 있으니 실망시키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비전을 가진 지도자 만델라가 럭비를 통해 흑과 백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내는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을 덮은 후 그것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미 이루어진 기적으로만 생각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 기적은 다른 곳, 다른 시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그리고 이루어져야할 기적입니다. 우리는 늘 편가르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때 우리는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사람들처럼 각자의 몫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목 <인빅터스>는 좁은 감옥방에서 창살에 갇힌 넬슨 만델라를 27년간 지탱해주었던 윌리엄 어네스티 헨리의 시로, '정복되지 않는 자들', '정복 불능'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라고 합니다.

 참고 삼아 시를 덧붙입니다. 번역은 이 책의 번역가 나선숙씨입니다.


 

         

 

        인빅터스


—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온 세상이 캄캄한 무덤처럼
         나를 뒤덮는 밤에,
         나는 내 영혼이 굴하지 않음에
         어느 신에게라도 감사하였다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 붙잡혀도
         나는 움찔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시련이 아무리 내리쳐도
         내 머리는 피투성이나, 굽히지 않는다


         분노와 눈물의 이 땅 너머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구나
         그러나 세월이 위협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문이 아무리 좁아도
         훗날 어떠한 형벌이 내릴지라도 상관없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오,
         내 영혼의 선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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