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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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법의학자다.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교수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 지난 20년간 1,500번 부검을 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교수들의 다양한 강의를 펴낸 「서가명강 시리즈」의 하나로 '죽음의 과학적 이해' 강의는 2013년에 처음 기초교양원에서 개설됐다. 처음에는 60명 정원이었지만 학생들의 좋은 평가 덕에 이제는 정원 210명의 대형 강의가 됐다.

법의학자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익숙해진 건 아마 미드의 영향의 클 것이다. 〈CSI〉 같은 수사 드라마에 꼭 등장하는 직업이 법의학자나 프로파일러니까. 지은이 역시 세월호 같은 큰 사건 및 범죄 사건 부검의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책에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 부분이 읽기에는 흥미롭겠지만.

1부는 부검 사례 중심이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다뤘다. 2부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생명과 죽음의 정의를 배울 수 있다. 생명과 죽음의 정의라니 생소할 수 있는데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2장을 읽고 알았다.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는 수태가 된 때부터 사람으로 여기는데 반해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진통이 있을 때부터 사람으로 여겨 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진통 전에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낙태죄가 적용되지만 진통이 시작된 후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살인죄가 적용되는 것이다. 더불어 의학이 발달하며 연명의료로 발생하는 그레이 존(gray zone), 즉 삶과 죽음의 영역 중에서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가 불분명한 중간 지대의 존재가 새롭게 부상하게 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전이라면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으니 식물인간이 되면 가족들이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포기를 했지만 지금은 의술의 힘을 빌려 얼마든지 생존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상태를 죽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비롯해 존엄사나 안락사 등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이다. 3부에서는 왜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지 말한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기 마련,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데 태어나면 죽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니 삶을 더 반짝거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알아야 한다는 지은이의 의견에 동의한다. 몇 년 전 일본에서는 종활(슈카스, 인생의 종말을 충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벌이는 죽음 준비 활동)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제일 처음 하는 준비가 유서 쓰기라고 한다. 노인이 아니더라도 유서 쓰기를 하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질 테니 삶의 방향을 잡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나이에 상관없이 유서를 써 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한동안 하버드 대학교를 비롯해 미국 명문대의 다양한 강의를 소개하는 책이 한참 나온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와서 좋다. 6개월 강의를 책 한 권으로 요약하다 보니 깊이는 좀 아쉬울 수도 있지만 교양 입문서로 접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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