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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왕원화 지음, 문현선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왜 샀더라..?
지난 여름 아주 오랫만에 이 책을 꺼내들었다. 분명 나오자마자 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이쿠, 4년전이군. 하지만 내 기억엔 그때 한번 읽고 책장 구석에 방치한 걸로 끝이다. 당시 어디엔가 이 책을 묻는 내 친구에게 나는 "광고로 이루어진 책이야. 예를들어 이런 식이지. 주인공들은 애니콜 폰을 쓰고 입사의 크림을 발라.."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이를 들어 다시 읽은 이 책은 달랐다. 그때는 그런것들이 몹시도 거슬렸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내용이 눈에 들어오더라. 게다가 밍홍이 꼭 그때 내가 알던 누구같아서 난 이 책을 교본삼아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그래도 그뿐이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고.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해 잘 쓰여진 인터넷소설같다. 한때 인기있던 귀여니풍의 인터넷소설말이다. '인터넷소설'이라는 자체를 폄하하는것은 아니지만, 그 말에서 누구나 공감하는 분위기라는것은 있을것이다. 심플하고 세련된 주인공은 대체로 행복하지만 고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늘 즐겁게 해주고, 그때마다 즐겁게 지내지만 사실 대체로 언제나 공허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국 그 고민을 헤쳐나간다. 물론 그 고민은 "집을 마련해야겠다!""우리 부모님이 너무 아프셔!"이런것은 아니고.. "나의 과거 연애때문에 지금 연애하기가 겁나!"뭐 이런것들이다.
인터넷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대화체가 아주 많다는것이다. 그래서 슥슥 읽힌다. 물론 이는 아주 잘 쓰여진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작년과 올해 잠시 이 책을 들고나서 결국 끝까지 읽어버린데는 그 '슥슥 읽히는'이 책의 결정적 장점이 작용한 이유가 컸다. 무려 47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은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 챕터당 최소 하나씩의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한 장면당 하나씩의 '싸이 사진첩 글귀'가 나온다는 얘기다. 미처 보지 못했는데 아마 알라딘 밑줄긋기에 엄청 많이 되어있을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엄청 잘 쓰여졌다.
그러나 그 잘 쓰여짐이 나쓰메 소세키나 박경리의 잘 쓰여짐과 같은 말을 나타내는것은 아니다. 매우 읽기 쉽게 쓰여졌다. 하루키보다는 요시모토바나나와 약간의 교집합이 있을수도 있겠다. 몇년전만해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인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여러가지 경험이 생길수록 이 책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래서 이 책 리뷰는 반드시 낮에 써야한다. 밤이 된다면 누구든 감상에 빠질것이다.
카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릴때 혹은 여행을 갈때 챙겨가기 좋은 책이다. 특히 여자들끼리 여행갈때는 최고다. 갖가지 종류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최소 한명과는 자신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위에 쓴 '사소한 고민'이야말로 누구나 하는거니까. 사실 세상 어느 누구도 진지한 고민만 하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저우치와 밍홍. 이 책의 여주인공-남주인공이라고 할수있는데 난 이들이 왜이리 맘에 안들었을까. 아마 주인공이 즈핑과 그레이스, 아니 안안과 두팡이었다면 난 이 책을 당장 영화화하라고 찬양하지 않았을까? 답답하기 짝이없는 밍홍, 과거에 갇혀있는 그가 동정과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구남친의 이름도 잊은 나같은 사람은 결코 피하고 싶은 인물이다. 또한 저우치는 굳이 밍홍뿐 아니라도 별로 사귀고싶지 않은 타입아닌가! 엄마같은데다 틈따위 보이지 않는 좋은 여자. 저우치에 대한 비호감은 마지막 "난 끝에서 두번째 여친이라 행복하다..그들은 지금 부인보다 나를 더 기억하고 사랑할것이다."라는식의 자기 위안에서 절정에 달했다. 쯧, 불쌍한 여자.
밍홍은 안안같은 여자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끝으로 이 책의 수많은 이미지 씬중 하나를 흉내내본다.
"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좋아했지. 그곳에 가면 왠지 어린시절로 돌아간것같아서 좋았거든...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은 쿼터백크런치였어. 바닐라에 카라멜 시럽, 거기에 크런치 조각까지 딱 내가 찾던 그맛이었지. 그런데 어느날 가보니 그 아이스크림이 없어진거야. 알고보니 비인기 품목은 정리한다고 하더군. 다 그런식이야. 내가 좋아하는것들은 언젠가 사라져.."
"걱정말아요. 난 체리쥬빌레를 좋아하거든요. 그건 결코 없어지지않아요"
"왜지?"
"달콤한맛과 새콤한맛을 동시에 느낄수 있는건, 누구나 좋아하니까요!"
이 소설은 정말 누구든지 쓸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