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비가 잠깐 내렸다고, 그새 바람이 몹시 매서워졌다. 11월이 이젠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또 한번의 나의 가을도 지고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그래도 한치의 빈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못내 야속하기만 하다.

이래저래 요즘 정신을 잠깐 놓기도 하고 의지도 조금 약해졌나 싶더니만, 여지없이 그간 읽었던 책들이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었다. 이 책, 토지 1권 역시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로 읽었던 것인데 아직까지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으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느슨해져 있었는지를 증명하리라.

책의 내용을 떠나 읽던 시기의 여러 정황들이 떠오른다. 특히 연휴기간 동안 이른 아침이나 오후 지루한 시간 고향 해안가에 차를 세워두고서는 해가 뜨거나 지던 장면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쉬엄쉬엄 읽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독서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언제나 한결같은 지적활동이라 생각하지만, 그날들의 느낌이란 아마 나중에도 두고두고 생각이 날 특별한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책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고, 어릴적 주말 저녁 눈과 귀를 집중시켰던 드라마의 원작이라 읽기전부터 기대 수준이 매우 높았고, 읽은 후에도 나름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의 말처럼 모국어로 쓰인 최고의 글이라는 평가는 적잖이 과대평가 된 점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작가가 한 호흡으로 일관된 감정선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지난한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각 장마다 사뭇 다른 문체나 정서로 이어지는 점이 없지 않았고 그래서 어색함을 느낀 적도 더러 있었다. 더군다나 어떤 깊은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사투리 등의 해석을 각주도, 미주도 아닌 책 말미에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둔 상상초월적인 출판사의 노고에 얼마나 황당함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이런 점들이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고 몰입도를 현저히 약화시키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이유로 원래 계획대로면 다음 권을 계속 읽어 나가고 있어야 하지만, 잠시 휴지기간을 두고 다른 책부터 읽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 중 울컥했던 장면이 몇군데 있어 그 점 역시 밝혀두고 싶다. 나는 모든 형태의 사랑이란 결국 본질은 하나라고 본다. 그 대상이 이성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아니면 생면부지의 타인이건, 결국 우리가 그들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란 끝까지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종국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귀착된다. 예컨대, 이성에 대한 사랑만 놓고 보더라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본인의 두근거림 또는 성적인 감흥,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의 지각 등을 좋아하는 상태를 사랑이라 칭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요즘에 와서야 차즘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나이기에 그렇겠지만, 근래 책을 읽다보면 유독 사랑을 이야기하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이책에서는 몇 종류의 사랑이 나오지만 특히 나를 사로잡았던 부분은 이용과 월선이의 사랑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상민의 신분인 이용, 불가촉천민 중 하나인 무당의 딸 월선이, 서로를 사랑했으나 결국에는 신분차이로 함께할 수 없었던 두 사람. 세월이 지나도 애틋한 감정은 그대로였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벽 역시 또 다른 형태로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벽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저하던 두 사람의 모습. 그 장면에서 왠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월선아”
“야.”
“우리 도망을 가까?”
“그랬일라 카믄 옛날에 했지요. 이 마작 해서...... 얼굴만 보믄 될 긴데, 얼굴만 뵈 주었이믄 여기 안 왔일 긴데.”
(240쪽)

“월선아, 아무데도 가지마라”
“......”
“와 니가 무당이 될라 카노”
“안 될 기요.”
“그래, 되지 마라.”
“나는 체모 없는 놈이다.”
“......”
“니를 술청에 내어놓고...... 그래 놓고 밤에 니를 찾아가는 내꼴을 생각해봤다. 부끄럽더라. 그, 그래서 못갔다. 니가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것을 알믄서 니가 밤에 잠을 못자는 것을 알믄서. 영팔이가 그러더마, 내 안부를 묻더라고. 간장이 찢어지는 거 같더마. 천 분 만 분 더 생각해 봤제. 다 버리고 다아 버리뿌리고 니하구만 살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가자고. 안 될 일이지, 안 될 일이라. 이 산천을 버리고 나는 못간다. 내 눈이 멀고 내 사지가 찢기도 자식 된 도리, 사람으 도리는 우짤 수 없네.”
“우찌 저리 뻐꾸기가 울어쌓겄소.”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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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은 책들에 관해 독서 노트를 써야 하지만 잠시 미루고, 새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 특유의 까칠한 문체가 정겹게 느껴진다. 하드커버라서 더 있어 보이기도하고. 예전엔 딱딱한 표지가 싫더니만, 사람 마음이 세월에 따라 많이 바뀌는가도 싶다. 슬슬 올해 들어 다급해졌던 맘과 몸을 그 이전 상태로 되돌려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에는 사무실로 곧장 가는 대신, 이 책을 들고 카페에 들러 9시 정각으로부터 3분 전까지 읽고 들어가리라. 누구 말마따나 회사에 ‘너무’ 최선을 다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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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나날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책을 또다시 선택했다. 글 참 재미있고 맛깔나게 쓴다, 증말.
또다시 드는 생각은 “왜 여태 이 책을 안읽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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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몰입감. 이런 느낌 정말 오랫만이다. 이틀간 출퇴근길에만 읽었는데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여태껏 왜 이책을 몰랐을까. 정말이지 딱 내스타일이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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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속았다. 난 그림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책인줄 알았는데, 작가의 일대기, 나는 어떻게 유명하고 뛰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찬이 주였다, 절반을 읽은 이 시점까지는. 책 값 아깝다는 느낌, 짜증난다는 느낌, 정말 간만이다. 어찌 다 읽어낼까.

제목을 “나의 고귀한 안목”으로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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