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월

 

과거의 치유여행과 미래의 꿈 여행

 

여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감정이 목적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설렘이나

 

기대감이 아닐까? 그런 감정과 함께 나는 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여행에 대한 한 가지

 

기억이 있다. 그것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 치유여행 이었다. 30년전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시절,

 

나는 고등학교 진학과정의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인해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 진 적이 있었다. 당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환영(幻影)에 시달렸다. 잠을 이루지 못

 

해서 강제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신경과 상담과 함께 입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주사 맞고 약

 

을 먹어야만 겨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들 수 있었다. 며칠 입원해서 호전되면 퇴원해서 지내

 

다 같은 증세가 반복되면 입원 하곤 했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부모님께

 

서는 입원 치료를 포기하시고 주위분의 권유로 한적한 사찰에 나를 의탁하게 되었다.

 

그 절에서 요양하면서 건강을 찾은 사람도 적지 않고, 중요한 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신경과에서는 약을 처방받고 심리치료는 사찰에서 병행하기로 선택 하셨다고 한다.

 

부모님은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셨지만, 정월이나 사월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에 어린 나를

 

절에 데려가곤 하셨다. 그곳에 인자한 주지스님이, 예불이 끝난 후에 부처님께 공양했던 음식

 

중에서, 과자를 나눠 주셨다. 절 많이 하고 소원을 빌면, 부처님이 그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신 걸 철썩 같이 믿은 적도 있었다. 나 또한 절에 따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사상

 

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기에, 사찰에 머무르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사찰로

 

이동하면서도, 거기 가서 지낸다고 불면증이 치료가 되겠어? 아니야 거기서 건강해진 사람도

 

있다잖아! 하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갈등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어느새 부모님과 함께 어딘지도 모르는 곳까지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이동했다.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 초입에 도착해 있었다. “내려야지 여기부터는 걸어 가야해”

 

어머님의 목소리에 며칠 잠 못 이룬 초췌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 암자로 올라가는 좁

 

다란 길 좌우에 꽃이 활짝 핀 나무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꽃은 복사꽃

 

이었다. 복숭아 재배 농가들이 심어놓은 과수나무였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만개한 꽃들이 주위

 

를 둘러싸고 있었기에, 아름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솔길 옆을 따라 계곡에서 시냇물

 

도 흘러 내려가고, 어디선가 간간히 새 소리도 들려 왔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한 시간이 조금

 

못 올라가서 조그만 건물 몇 채가 시아에 들어왔다. 내가 머무를 암자에 도착한 것이다.

 

아담한 분위기가 나는 절에서 인자하신 중년의 남자 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목이 말라서 스님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샘에서 물 한 바가지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을 축이고 주위를 둘러보니 꾀나 오래된 절인 듯 보였다.

 

부모님은 주지스님의 인도로 예불을 드렸다. 스님과 몇 마디 말씀을 나누시고는 걱정스런 눈

 

빛으로 산을 내려가셨다. 스님은 “마음 편하게 먹어요. 학생은 낳아 질거에요.” 하시며

 

내가 기거할 곳으로 안내 하셨다. 넓지는 않았지만 정갈하게 정리된 방에 짐을 풀고 암자생활

 

이 시작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 켜고 불 때서 밥해먹는 그런 곳 이었다.

 

짐 정리 다 되면 당부할 말씀이 있다고, 스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으로 건너오라고 하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도자기 그릇에 차(茶)를 내리고 계셨다. “자 천천히 마셔 봐요.”

 

하시며 차를 건네셨다. 처음 접해서 그렇기도 하고, 맛도 생소했다. 마지못해 입에 댔다가 떼

 

 

는 정도였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니까 약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요.”

“그리고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고, 예불은 본인이 마음 내키면 하도록 해요.”

 

그밖에 절에서 지킬 예절 몇 가지를 일러 주셨다. 엄격하지 않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속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은 해 나갔다. 불면증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밤새 이름 모를 새소리와 벌레소리에 시달렸다. 온갖 망상에 사로잡혀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신경과 약을 복용 했지만 숙면에 들기는 어려웠다.

 

절에서는 새벽4시경 일어나서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는데 나는 거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학생 지낼만 해요? 마음을 편히 가져야 몸도 편해져서 숙면에 들어갈 수 있을텐데,

내 말에 따라 보는건 어떨지.....” 말씀하셔서

 

“스님 말씀대로 하면 잠 못 자는거 고치고 헛것 보는거 고칠 수 있나요?” 고 되물었을 때

 

“믿으세요! 언젠가 학생같이 잠못이루던 사람이 좋아져서 돌아간 적이 있으니까”

 

그말에 나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제발 헛것 안보고 잠 좀 실컷 자게 해주세요. 뭐든지 다 할

 

께요.”했더니 스님은 내가 하라는 대로 일단 한 달만 해보겠냐고 하셨다.

 

그 말씀에 따르기로 마음먹고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스님이

 

시키신 일은 다름 아닌 행자(불가에 입문해서 수행에 길을 걷는 사람)생활 체험 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부처님께 예불 올리고, 나무로 불 때서 밥 짓기를 했다. 허드렛일 돕기, 하루

 

에 부처님께 3번 108번 절하기, 경전 외우기 등 몸을 쉴새없이 움직였다. 허튼 생각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잠도 못 자는데 이걸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기왕 잠 못

 

자는 거 한번 해보자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달려들었다. 어렴풋이 보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스님이 오늘은 부처님께 108배(절)를 세 번 올리는 대신, 법당에 기다란 천(1000)알 염주가 있

 

는데, 그것을 한 알 돌리고 절 한 번씩 해서 그 염주가 다하면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성공하면 앞으로 백팔 배는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하루에 세 번 절하는 것도 힘들고 번거로

 

워서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시키는 대로 절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

 

보다 염주에 길이가 길었다. 하는데 까지 해보기로 마음먹고, 염주 한 알 돌리고 절 한번 하기

 

를 반복했다. 염주 알이 절반정도 지날 무렵 다리가 후들 거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며 법당에

 

쓰러져 버렸던 것 이다. 얼마가 지났는지 알 수 없었고 눈을 떠보니 법당에 그대로 누워 있었

 

다. 예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법당에서 내려와 시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10시경 염주를 돌리며 절하기 시작했다. 쓰러진 후 깨어난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서였던

 

것이다. 쓰러져 잠들었던 것이다. 내가 잠을자다니! 이럴수가 있을까? 너무 너무 신기했다.

 

그 날 이후로 불면증 증세는 차차로 사라져 가기 시작 했다. 신경과에서 지어준 약 없이 숙면

 

에 이르는데 3개월 정도 걸렸다. 물론 헛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주 가끔은 불면증세가 나

 

타나기도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죽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다시 제발 할지도 모르고해서, 부모님과 스님의 권유로 학교는 다음해에 복학하기로 했다.

 

좀 더 암자에 머무르면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간간히 부모님도 다녀가시고 내가 집으로 부모님

 

을 찾아뵙기도 하면서 지냈다. 불면증 치료 후 암자 생활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꽃이나 풀벌레를 찾아다녔다. 하루 종일 바위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서, 마음 놓고 발가벗고 계곡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 크게 소리치며, 세상에 큰 인물이 될 거라며 호연지기를 품어 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님과 허물없이 지내면서, 중학교 때까지 삶의 과정을 털어 놓고, 어떻게 진로를 결정해야 하

 

는지 여쭙기도 했다. 그때마다 부모님처럼 아니 부모님 이상으로, 자상하고 인자한 말씀으로 이

 

야기를 공감해주셨다. 앞날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하고 격려해 주시곤 하셨다.

암자에 머무르던 그 시절, 감수성이 예민하던 그때, 자연과 종교를 접하면서 스스로에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성년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친구와도 애인과도 나눌 수 없는 비밀스런 이야기도 꺼내놓았다.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게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 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내 인생에 카운슬링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스님은 현재 안 계시지

 

만, 스님이 입적하신 이후에도,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그 암자를 방

 

문한다. 부처님께 절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마음을 추스르고 오곤 한다. 내 나름의 힐링 법인

 

셈이고 장소이다. 내 나이 마흔 여섯. 불혹이라고 불리우는 나이다. 인생 백세시대로 본다면, 이

 

제 반환점을 지나가고 있는 시기이다. 백세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백년을 여행 한다고 생각해 보

 

면 어떨까? 여행할 목적지를 먼저 정하고, 50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60세에는 또 다른 곳

 

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나름에 성취하고 싶은 일이나 지위 꿈이 있다면, 진정가고 싶던

 

그곳으로 가기위해,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세운다. 설렘에 잠 못 이루며, 성취에 그 날을 상상한

 

다. 기대감에 마음껏 부풀어 오른 가슴으로, 미래의 내가 있을 곳을 향해 가방을 꾸려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지금은 꿈을 쫒는 여행자다. 필수 항목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침반과 지도

 

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곳에, 반드시 데려다

 

줄, 지도가 맞는지 인생의 로드맵을 다시 한 번 펼쳐놓자.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성찰 해봐야

 

할 것 같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정 하거나 아예 다시 그리자. 정확한 내 위치를 파악

 

하는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다음 시간과 비용이 얼마인지를 계산해야 한다.

 

내가 투자 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과 건강 및 재화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곳이 맞다고 확신이 섰다면, 방향을 잡아줄 신념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모든 점검이 끝났다면 떠나자. 한 걸음 한걸음 차근차근히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의 내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자. 가끔은 지치고 힘들지도 모르지만

 

흔들리지 않은 마음의 방향타를 바로잡고, 스스로 생각한 이상적인 그곳에 도착해서

 

인생의 희열과 자아실현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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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영문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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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추억을 생각하며 사 보았다.

 

앤이 너무 수다 스러워서 지겨웠다.

 

그래도 감동과 재미와 추억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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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2018-04-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릴적 앤은 재밌었는데 수다스러워 지겹다니 내가 늙었나보다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 - 도전하는 승부사 윤석금의 경영 이야기
윤석금 지음 / 리더스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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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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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선생님 첫걸음 NIE 연구총서 1
정문성 외 3인 지음 / 한국편집기자협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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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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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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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가난을 극복한 링컨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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