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만 해도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을 시각, 따뜻한 옷으로 2겹 3겹 중무장을 하고

 

오늘도 역시 아내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일터로 향한다.

 

아내가 보온병에 넣어준, 따뜻한 물로 주변 상인과 차 한 잔을 마시며 난로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책을 펼친다.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

 

내가 게임하고 있을 때 아내가 앞에 앉아서 하하 호호 깔깔거리며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아내는 신문과 책을 너무 재밌게 본다. 재밌게 읽는 모습을 보면, 뭐가 그리 재밌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신문과 책을 본다.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만 많았지,

 

신문과 책을 즐겨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절에서 휴양하고 공부하는 동안,

 

논어, 맹자, 주역, 사서삼경, 불교에 관한 서적 그런 게 전부다.

 

절은 심심하고 손에 잡히는 책이 주로 그런 책들이었다.

 

그렇다고 상인의 집안에서 자란 내가 책을 보는 부모 밑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부모의 책 읽는 소리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아내는 아버지가 항상 신문을 보시고 향촌에서 한문과 예를 공부하셨다고 한다.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속지 않고 살려면 신문을 보고 배워야 하며,

 

사설이 신문의 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옆에서 어깨 너머로 만화나 보던 어린이가 어느새 그 아버지처럼 되어 있었다.

 

장인어른은 서예 글씨를 쓰고 , 엄마가 책을 보는 집이었다.

 

인간의 성장 과정 중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는 바다.

 

아내는 내 옆에서 책을 보며 재밌는 구절이 나오면 소리 내 읽기도 한다.

 

그러면 나도 같이 웃는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떤다.

 

아내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처의 할아버님은 8년 만에 얻은 귀한 외아들이었다.

 

그래서 8살까지 엄마 젖을 먹고, 버릇없이 자라셨다. 물론 그 시절 배움도 짧았다.

 

그래서 욕을 잘 하셨다. 처의 외가댁은 외할아버지가 마을의 수장도 하시고,

 

일제 강점기 때 고문도 받으신 분이었다.

 

외할머니도 글을 좋아하셨다.

 

외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외할머니의 옆집에 사셨는데,

 

외할머니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며느리를 삼았다고 한다.

 

그런 집에서 자란 장모님은 지금 70이 넘으셨는데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욕 이란 건 한마디도 듣도 보도 못하고 자란 양가집 규수였다.

 

근데 시집가서 시아버님이 욕을 하심에 너무 우스웠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보고 자란 장인어른 역시 화가 나면 씨자 들어가는 욕을 하셨다.

 

자연스레 어머닌 학습 받아 정신 장애인으로 부족한 아들에게

 

“야 이놈아 저 이놈아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욕을 하셨다.

 

한번은 외할머니가 딸을 야단했다. 왜 애한테 그런 욕을 하냐고 ,

 

아무리 네 새끼라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아내는 아버지의 씨자 붙은 욕 하는 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욕 안하는 남자랑 결혼해야지 하고 생각 했단다.

 

처음에 내가 운전 하다가 안 좋은 상황을 만나도 가만히 욕 한마디도 안했을 때 ,

 

아내가 참 양반 이라고 어디서 그렇게 잘 배워서 욕 한마디 안하느냐고 칭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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