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인심-4회

 

겨울이 봄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 아침에는 제법 찬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는 마늘이 실린 차를 몰고 닷새마다 열리는 장터로 향했다.

 

작년 초겨울 김장철이 한 참 지나 비수기로 접어든지 오래 돼서 마늘은 몇 접 팔리지 않는

 

다. 오고가는 차량 운영비에 점심값을 제하고 또 추위를 막기 위해서 피운 석유난로 난방비

 

까지 따지다 보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내 주위에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주위에 장꾼도 자리를 가끔씩 비우기도 하고 물론 나

 

도 그렇다. 하지만 난로에 불을 지펴 물이 끓으면 주변 사람들과 커피 한잔을 나눠 마시며

 

오늘은 장사가 좀 되려나 오늘은 누가 장에 안 나오는 날인가 푸념 섞인 농담을 건내기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 앞에는 예전에 쓰던 키나 소쿠리를 비롯해 멍석, 체, 빗자루,

 

맷돌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파시는 환갑이 한참지난 만물상 장씨 아저씨가 계시고 옆으로는

 

나이는 만물상 장씨 아저씨보다 두어 살 아래인 뻥튀기 김씨 아저씨가 추억을 튀겨내려 자

 

리를 펴고 대각선 쪽에는 음악 CD나 USB를 파시는 50대 중반 최씨 형님이 커다란 스피커

 

로 유행하는 트롯트음악을 틀어놓고 장터에 흥을 돋우려 나온다.

 

오늘은 뻥튀기 김씨 아저씨가 자리를 비웠는데 그 자리에 suv차량을 몰고온 나이 지긋한

 

낮선 남자가 내게로 와서 옆에서 딸기를 좀 팔아도 되냐고 물어왔다.

 

마침 뻥튀기 튀기시는 분이 자리를 비웠으니 팔고 가셔도 된다고 하고 따뜻한 커피한잔을

 

건내 주었다. 딸기를 내리는 것도 도와드리고 장사꾼처럼 같아 보이지 않아서 딸기를 팔러

 

나온 까닭을 물어보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인근에서 하우스 딸기 농사를 짓는데 출

 

하가격이 너무 형편없어서 욱하는 마음에 직접 팔아 1KG 한 팩에 오천원이라도 받아 보겠

 

다고 나선 걸음이라는 거였다. 끝물이기도 하고 설날이 지나 매매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

 

이기는 하지만 애써 자식처럼 키운 딸기를 헐값에 팔고 싶지 않은 마음이 와닿아 내 마음

 

까지 편하지는 않았다.

 

장터에 처음 나와 숫기도 없고 장사수완도 없어 보이는 터라 딸기는 잘 팔리지 않았다.

 

그때 음악CD 파는 최씨 형님이 나섰다. 일단 딸기 주인에게 오천원을 쥐어주고는 그 딸기

 

를 가져다가 음반 사러온 손님들에게 나눠주시면서 싸고 맛있는 딸기가 단돈 오천원 한다며

 

홍보에 나서는 것 이었다. 단골음악 손님에게 강매하다시피 딸기를 떠안기는 거였다. 나도

 

질새라 박스를 구해가 안쪽 면에 딸기가 반값이라는 홍보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써서 딸기 앞

 

에 놓아두고 내 물건 인양 팔아 주려 하였고 만물상 장씨 아저씨도 판매를 거들어 주었다.

 

농부는 네팩 이상을 사면 한 팩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가지고 나온 딸기를 모두 팔지는 못

 

했지만 주위에서 도와주어 2/3정도 소진한 것으로 보였다. 그 농부는 이렇게 도와줄지는 꿈

 

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받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고마움에 표시로 딸기를 한 팩씩을 나누어

 

주고는 돌아갔다. 뭐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아직 장터에 인심이라는 것이 살아있고 나도

 

작지만 한 몫 했구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편리한 대형마트에 기계적인 쇼핑문화와는 달리 거기에는 없는 정(情)이나 덤이 우리네 전

 

통시장에는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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