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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효능감을 만드는 버츄프로젝트 수업 - 할 수 있는 아이, 나를 믿는 아이, 그 변화의 시작
권영애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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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애 선생님 강의 때 저자 사인본 책을 받았다.
질문할 시간도 부족할까봐 직접 그 전날 밤에 한 권씩 사인을 해오셨단다.
권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고 계시다.

<그 아이만의 단 한사람>에서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선생님께서 학생 한 명을 체벌하셨다는 이야기..
나는 강의 때 처음 듣고 정말 놀랐다.
그러지 않을 분 같았는데 그 한 번의 실수로 이 자리에 계시다는 거였다.

책의 후반부에는 버츄 프로젝트를 실제 어떻게 적용할지 나와있다.
5대 전략이 자세히 쓰여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간관
아이들은 본래 날 때부터 선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가려진 99프로의 잠재된 능력, 보이는 1%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99프로를 보고 그걸 직접 말해주는 선생님은 별로 없다.
아이들도 느낀다
자기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는지 아닌지
그래서 상처가 많은 아이일수록 시험해보는 시간이 길다
내가 이렇게 실수하면, 잘못하면 부모나 선생님이 화 내거나 혼내겠지
하지만 권선생님은 여지 없이 그 기대와 예측을 빗나가게 한다
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실수해도 괜찮아, 네 미덕이 잠자고 있어서 그래
네 첫 번째 미덕이 어떤 게 깨어날지 선생님은 정말 기대되고 궁금해 하신다
그러면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한다
선생님을 시험하게 하려는 시도들이 실패를 거듭하면 어 이건 뭐지?
정말 내 안에 뭔가 있나? 가능성이 있대. 미덕이 있대 하면서 조금씩 서서히 자신을 믿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눈빛이 말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행동이 아이들에게 체화된다
선생님이 하던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친구들에게 해주게 되는 것이다
너무 센 초자아는 할 말이 많지만 초자아가 무력해지면 오히려 자아의 힘이 세진다
그래서 불필요한 긴장과 힘겨루기를 하지 않으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고 편해진다
점점 더 자신의 선한 본능에 가깝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미덕에 대한 표현을 처음 들으면 낯 간지러운 말로 들리지만,
아이들이 과연 미덕 통장, 카드, 조끼 활동을 좋아할까 싶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선생님께서 써주신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천사 같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동체의 선에 먼저 다가가는...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지 못 하는 모습을 학교 교실 안에서 볼 수 있다니 놀랍다
그리고 진영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선생님도 두렵지만, 용기 내어 선생님과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신 것
아이들에게 진영이의 미덕을 깨우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
참 탁월한 선택이셨다

아이들에게 힘든 친구를 가르치고 도와줄 기회를 마련한 것
아이들은 가르치면서 그 공부를 더 하게 되고
한 아이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자신이 좀 더 가치 있고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하셨다
그래서 도움 받는 아이는 물론이고 반 전체의 아이들이 자존감, 효능감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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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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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맘충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맘충’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편하게 이웃 엄마들과 브런치 시간을 즐겼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 자체와 엄마들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요. 엄마들끼리 커피숍에 앉아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남성들에게는 팔자 좋게 비추어졌구나. “낮에 식당에 가면 온통 다 아줌마들뿐.”이라는 남성들의 말은 부럽다는 다른 표현이었구나. 그 마음도 한편 이해는 갑니다. 얼마나 남자 역할, 아버지 노릇에 지치고 힘들면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느라 진 빠진 모습보다 그렇게 놀고 먹는 모습으로만 눈에 들어왔을까요? 하지만 나는 억울합니다. 화가 납니다. 그래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에 대해서.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남성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는 군대도 다녀왔고, 너희가 밥벌이의 서러움과 매일 아침 출퇴근길의 노곤함을 아느냐?’고 반발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성별에 따른 경험의 차이에 대해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차이는 출생 이전인 원점부터 시작합니다.

김지영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1970~80년대에는 여아라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많았습니다. 태어날 기회조차 애초에 박탈당합니다. 김지영씨의 어머니도 김지영씨의 여동생을 지웠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 했다는 비난과 이후 모든 것이 김지의씨 어머니의 책임인 게 뻔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셋째 딸을 낳는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여성들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출생시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그 트라우마는 이미 신생아의 몸으로 기억되어 ‘자기’가 아닌 아들이 되지 못 한 ‘딸’로 살게 합니다. 중요한 걸 달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수치심을 느끼고요. 그런 연유로 남성과 여성은 그 출발선이 다릅니다. ‘0도’에서 시작한 여성과 각도 ‘3도’ 즈음에서 시작한 남성의 성차별 총 경험치는 결국 절대 만나지지 못 하고 극복할 수도 없는 차이로 벌어집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걸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처 경험입니다. 시작부터 환영 받지 못 하는 삶은 치명적입니다. 내 존재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거절당하는 것이에요. 부모는 ‘여성’인 나를 있는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아기가 세상에 처음 던져지는 그 순간에 성별을 기준으로 다시 한 번 내쳐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정신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아주 운 좋게 살아남았을 경우는 또 어떨까요? 나는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으라고 방구석에 놓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3일 동안 목욕시키지 않았다, 어머니는 실망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등등이요. 태어나면서부터 성별에 따라 부모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을 한 여성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습니다. ‘자기’로 살기 보다는 아들이 되지 못한 ‘딸’로 살기 바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어머니께 짐이 되거나 신세 지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생명’이자 ‘존재’로서 감각하기 보다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태어나게 해준 ‘조건’으로 ‘낳고 키워준 대가를 보상하는 도구’로서 딸의 역할만 남아 있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보다 부모가 무엇이 필요한지, 부모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가 우선입니다. 부모님께 딸로 생애 최초에 실망을 안겨 드렸기 때문에 실망이 될 만한 무언가를 또 행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그녀들은 다른 자녀들에 비해 비교적 자기 앞가림을 일찍 한다든가, 집안에서 경제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던가, 공부를 썩 잘 해 기둥 노릇을 하거나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여성들에게는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누구지? 라는 질문이 다른 사람들보다 깊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날만한 존재라는 걸 부모에게 증명해보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삽니다. 하지만 그것은 왠지 애쓰면 애쓸수록 허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입니다. 처음부터 남자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부모의 마음에 들기 어렵다는 거지요. 자신의 삶에서 정답이 없는 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이러한 여성들 중 자기를 잘 이해하고 ‘나’를 찾고, 부모에게 적절하게 분리, 독립해서 잘 살아가는 여성들도 물론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는 이유를 깨닫고, 내가 왜 이렇게 열심인지, 자꾸 쉽게 지치는지를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보통 성인 이후까지 몇십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처 경험은 보통 여성들은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인 20대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태어나면서의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면서 또 이중고를 겪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끊임없는 성차별, 이중 메시지, 이중구속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차별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는 눈빛에서부터 위협하는 말투, 압박하는 분위기, 같은 비언어적인 경험입니다. 타인에게 이해시키려 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상징물, 은유적 표현, 김치녀, 된장녀, 맘충이라는 신조어, 편가르식 언론보도 또한 무의식적인 차별을 더 공고히 합니다.

여성에 대한 정신적, 이중적 잣대는 스스로에게 가식을 만들어 더욱 자기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여성들에게 주는 사회의 이중 메시지는 끝도 없거든요. 이중 메시지는 여성 스스로를 더욱 구속시킵니다. 이중 구속입니다. 전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해 그러니 한 번 해봐 라고 말하는 거지요. “여자도 일을 해야지, 하지만 회사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야.” “육아휴직이 있는데 왜 안 써. 그런데 우리 직장에서는 여태껏 휴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이런 식입니다. 요즘 20, 30대 여성들은 남자 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고 나면, 여자 팔자는 결혼을 잘 해야 하며,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직업)이 최고라고 합니다. 결론은 공부는 공부대로, 일을 일대로 하면서 엄마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도 유리천장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죠. 소설 속 김지영씨가 말한 것처럼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라는 표현은 너무나 적확합니다. 마치 아기 코끼리를 멀리 도망가지 못 하게 발목을 줄로 묶어놓고 자유롭게 다녀볼래?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서 허용하는 기준은 ‘남’들보다는 잘 해야 하지만, ‘남성’들보단 못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나 최다는 남성들 차지, 중간은 여성들 자리가 되는 구조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우리는 분명 여성인데 언제부터인가 남성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핵심은 이런 이중적인 시선은 처음에는 부모, 선생님, 주요 타자(혹은 사회)가 암묵적으로 혹은 드러내놓고 표현하던 것들이 여성들 안에 내제되어 우리도 모르게 그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들 자신에게 했던 쓸데없는 자책과 후회들로 안쓰럽습니다. 내가 여성으로서 처신이 어땠는지에 대해 수없이 복기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제일 흔하고 눈에 띄는 걸로는 신체 이미지입니다. 나는 충분히 적당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늘 뚱뚱하고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남성이, 사회가 주는 필터에 걸려 거울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합니다. 성희롱이나 추행을 당할 경우 내가 뭘 실수하거나 잘못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소설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82년생 김지영씨는 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뿌리 깊고 무의식적이며 일반화되어 있는 성차별 경험들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소설을 읽고 감정이 정화될 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랬어? 하며 주위 여성들과 공감하게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는 안도감과 함께 건강한 분노감을 느낍니다. 그 때 내가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게 당연했구나 부당한 게 맞았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나만 혼자 꽁꽁 끌어안고 아파하기 보다는 그 상처를 직면하고 표현하고 같은 여성들끼리 연대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말하면 손해 보고 나만 이상한 여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숨겨왔던 것들도 이제는 솔직하게 공개하고 말하자는 거예요. 변화의 싹을 틔워주어서 김지영씨에게, 작가 조남주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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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주식 사주세요 - 아이와 엄마의 미래를 위한 투자 원칙
존 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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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주식 사주세요 -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딸이 와서 묻는다. 주식이 뭐에요? ㅎㅎ 
나름 설명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눈치 ㅋㅋ

솔직히 경제지식의 별로 없는 나도 이해하기 쉬웠다.
그만큼 저자는 사교육, 주식투자, 경제관련 개념을 간단명료하고 쉽게 풀어갔다.

목차

프롤로그 가계가 탄탄해지려면 엄마들이 부자가 되라

1부 부자가 되려면 생각을 바꿔라

1장 사교육의 늪에서 빠져나와라
자녀를 박스에서 꺼내라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본가로 키워라
돈에 대해 가르쳐라
부자 DNA를 심어라

2장 자식 뒷바라지보다 노후 준비를 먼저 하라
열심히 일한 당신이 부자가 아닌 이유
늘어난 평균수명, 휘청이는 인생 후반
노후를 위해 주식을 사라
연금펀드에 가입하고, 퇴직연금은 주식에 투자하라

2부 엄마가 부자 되는 법, 주식이 답이다

3장 주식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현금·예금은 일하지 않는 돈이다
왜 주식투자를 도박으로 여기게 됐을까
마켓타이밍의 환상을 버려라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아직 매력적이다

4장 주식투자에 성공하는 비결
올바른 투자 철학을 갖추라
좋은 기업은 이렇게 고르라
펀드투자도 좋은 대안이다
오래 보유하라

에필로그 지금 당장 시작하라
부록 자주 듣는 주식투자에 관한 질문들

숙제를 못 해도 좋으니
아이들을 제때 제우세요.

1장. 사교육의 늪에서 빠져나와라
자녀를 박스에서 꺼내라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본가로 키워라
돈에 대해 가르쳐라
부자 DNA를 심어라

자녀를 박스에서 꺼내라는 말이 제일 와닿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알고 밝히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나라 엄마들이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 대기업으로 취업해서 월급쟁이가 되게 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스스로 돈을 버는 아이디어가 있는 창업자, 자본가로 키우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어차피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우리 아이에게 생각날 때 몇 백원씩 용돈을 주고 있다.
아직 어려서 돈의 개념을 모를 줄 알았었다.
자기가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할
아버지 할머니께 받는 큰 돈은 꼭 자기가 가지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용돈기입장 쓰면서 어떻게 돈 관리하는지 지켜보려고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자녀와 함께 주식투자를 함께 해보라는 거다.
저자는 아이와 함께 주식에 소액을 넣어놓고 어떻게 되는지 그 추이를 함께 지켜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기업, 기업이 속한 나라, 문화, 경제 전반적인 얘기를
아이의 눈 높이에서 나눠보라고 추천한다.
주식에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는 얘기다.

바로 위의 표에 나와 있듯이 우리나라 여성의 금융이해지수가 낮다.
서울교육연구소에서 들은 자산관리 교육에서 그 강사도 저자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는 가정 경제권을 주부가 쥐고 있고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도 엄마들이 결정하다보니
엄마의 경제교육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빠들보다 엄마들이 주식, 부동산 등 금융, 투자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아이를 박스에서 꺼내자

 

진정 부자가 되고 싶다면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본가가 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자본가가 되는 길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유대인 부자가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라' 라는 잠언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데서 더 나아가,
수입의 일정 부분은 반드시 부를 축적하는 데 써야 한다는 얘기다.
옆 사람이 커피를 마시거든 그 커피를 만드는 회사의 주식을 사라.
결론적으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이것이다.
첫째,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연금펀드가 꼭 필요하고
퇴직연금도 DC형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둘째, 운용 포트폴리오에 주식 비중을 최대화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시금이 아니라 연금으로 수령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남보다 일찍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엄마들이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남들보다'와 '남들처럼'이다.
공부는 무조건 남들보다 잘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교과서 안에 있지 않고,
성공은 수능 성적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넓게 보고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독특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 자신부터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본가가 되고 싶어 해야 한다.
노동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자본에게도 일을 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어려서부터 돈에 '밝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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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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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을 쉬차가 끌고가듯, 소설 <28>은 우리를 단숨에 화양으로 이끈다.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늘 예약이 차있던 책

맘을 단단히 먹고 빌리긴 했지만 읽는 내내 힘들었다.

내가 원치 않는데도 글자들이 영화속 장면처럼 자꾸만 그려졌다.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책을 읽을 땐 눈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눈에서 피가 맺히는 기분이랄까.

작가는 굉장히 집요한.. 저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가는 힘이있다.

그 바닥이 지옥의 끝이라 해도 밀고 나가는 추진력..

무간지옥을 연상케 하는 도시 화양을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려냈는지. 정말 이런 도시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았다.

정부의 대응은 어찌나 현실적인지. 지금의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침몰에 대응한 것과 유사하다

꼬리 자르듯 화양만 섬으로 남겨진 채 화양시민들이 죽어가는 3개월 넘는 시간..

도저히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오히려 미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어떻게 썼을까. 쓰고 나서 탈진하지 않았을까.

작가 안에 있는 것 없는 거 모두 끌어다가 피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 것 같다.

트라우마로 느껴질 만한 많은 상황들에서 너무나 세세한 묘사들. 마치 그걸 보고 말하는 사람처럼.

끔찍한 장면들에서는 읽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다.

기준, 재형, 윤주, 수진, 동해, 링고.. 는 각각의 인생살이가 너무나 잘 이해됐다.

특히 재형은 누구보다 살기를 원하면서도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인간만큼 잔인하게. 죽도록 생존을 원하는 존재도 없다는 거다.

인간이 이 자연 속 식동물 세계에서 많은 종을 몰살시킨 유일한 종이므로.

우리는 그저 한 종의 동물이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장면들을 보면 알수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그저 살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이 세계 속에 들어와있기에 모를뿐이지

멀리서 보면 그저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나비 하나 정도로 여겨지지 않겠나.

어떤 욕망이나 뜨거운 감정이 올라올 때 식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내가 살아있는 수많은 생명체들 중 하나일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거울 속에 내 얼굴 안에는 수많은 뼈와 근육들이 있다는 것.

그저 그 자체일뿐이라는 것을 알면 된다.

그러면 거리감이 생겨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다.

문제와 나를, 감정과 나를, 욕망과 나를... 어쩌면 그것들은 지나가는 공기이자, 바람이자, 날씨 같은 것들이니까.

나 또한 지금은 이렇게 살아있지만 내일 혹은 한 달 뒤면 없어질 존재일지도 모르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던져진 생의 한계점이자 삶의 전제라는 것

작가의 생명에 대한 화두는 인간과 동물을 제한하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소중하다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을 죽이면서까지 애를 쓴다고.

사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애달프고 고달픈 게 아닌가. 적어도 화양시에서는 차라리 먼저 죽는 게 이꼴저꼴 보지 않고 힘들지 않은 것이다.

왜 이렇게 이 주인공들은 힘겹게 힘겹게 죽거나 살아남는가.

나는 솔직히 읽는 내내 치료제가 발견되거나 생존자들 중에 항체가 있어 그 비밀을 퍼뜨리거나 정부에서 도와주거나 하는 등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소설 중반이 넘어서까지 그럴 가능성은 1 프로도 없어져 버렸다.

끝까지 끝까지 도대체 끝이 어딘지 모를 바닥의 코너까지 몰린 기분이다.

그래서 결국 끝은 이거라고? 이게 다라고? 그 많은 생명들이 희생당했는데 결말은 이거라고?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처럼 허탈하고 또 허탈했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 끝에 2013년 6월 광주에서. 를 보고 어쩌면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고 그 얘기가 여기에도 쓰였겠다 싶었다.

글 읽는 동안 5.18 때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에게 했던 짓과 그 참상이 자연스레 떠올려졌다.

화양을 가두듯, 광주라는 도시 하나를 가둔 일..

부디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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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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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만드는 히말라야

 

 

정유정 작가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를 읽은 뒤였다.
소설 속 승민이 동경하는 히말라야를 향해 비행할 때 내 심장에서도 함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작가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에세이를 썼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책을 찾아읽었다. 히말라야를 떠나기 전, 작가는 쫓기듯 살아온 인생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쏴라 마지막 구절인 '전사를 찾아서'를 가슴에 품고 떠난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과연 작가는 무얼 찾아 히말라야에 온 걸까?
출발할 때의 사진은 우리나라의 가을하늘 같고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는 신비로우면서도 웅장했다. 그 길 위에서 작가는 나마스테가 '당신 안의 신께 경배 드립니다'라는 뜻이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를 떠올린다. 뒤이어 동생들만 없다면 인생이 훨씬 즐거울 거라 여기던 선머슴 같던 어린 시절 자기를 불러일으킨다. ‘엄마가 없을 땐 네가 엄마’라던 바위처럼 무거운 말로 인해 작가는 아이였던 시절부터 아이다운 욕망을 누르게 된다. 길가 모르는 사람에게 ‘나마스테’라고 하고 싶어도 망설여지는 손, 그렇게 작가는 부끄럽고 어색해한다. 작가는 원래 태생부터 여리고 여린 천생 여자는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말씀하신 죽는 시늉을 하지 않기 위해 겉으로만 강인한 척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는 종주를 하면서 시시때때로 보는 자극들에서 과거의 장면을 소환시킨다. 코카콜라 광고판을 보고 민주화항쟁 정점 무렵의 광주, 목 안에서 최루탄이 터진 것 같았다는 코카콜라의 강렬한 경험이 지금 여기서 재현되는 것이다. 땅거미 깔리는 모래밭을 보다가도 툭 튀어나오는 계집아이, 마낭에서 마주친 어린 남매는 과거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제 삼자인 관찰자가 되어 나를 살펴본다. '그래, 맞아 내가 그랬지. 내 모습은 저랬었어.' 하는 것이다. 또한 여행지 특유의 흥분되고 현실과 살짝 동떨어진 공간에서 불쑥 끼어드는 택배기사의 전화, 엄마 기일을 알려주는 남동생의 문자 한 통, 작가가 현실의 끈을 놓지 않도록 알람을 울려 깨워준다. 이렇듯 여행은 내 삶의 연장선에서 과거, 현재를 이어준다.

작가는 소설 <생존자>를 빌어 자기 생의 구원이 파멸과 동일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보고, 히말라야에서 처음으로 그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스물두 살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투병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20대의 자기, 세 동생을 등에 업고 엄마로 살아온 자기 모습을 말이다. 세상을 전쟁터로, 가정을 살아남아야만 하는 생존터로 살아왔던 작가는 히말라야에 와서까지 산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던진다. 엄마로서 살아오느라 자신 안의 아이는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 아이는 히말라야에서 잊을만하면 자꾸 작가 앞에 나타났다. 왜 이제야 나를 찾으러 왔냐고, 그동안 내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말이다.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생존의 길이자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자꾸 무력하게 만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동생들 없이 놀다 들어오는 게 소원이요, 어여쁜 20대를 맘껏 누려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혼잣말이 나에게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고산병 증세가 심한 날은 우연히도 어머니의 기일, 히말라야에 와서야 22년 전 오늘 울지 못했던 속울음이 터져 나온다. 작가는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엎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두려움은 우리를 추동시키는 힘이지만, 그것이 너무 커버리면 자기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여행 십일째, 고산병 증상이 절정에 닿을 때 아들을 낳는 순간이 재현된다. 그 때 작가의 바람을 읽고 애달팠다. '너는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이 약속 하나에 작가의 갈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쏘롱라패스에서 타임캡슐을 넣으며 스스로에게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싸움닭 기질은 어디 가는 게 아닌가보다. '전사'라고 표현한 걸 보니. 나는 작가가 전사 대신 히말라야처럼 부드러운 여신의 모습을 찾길 바란다. 분명 자기 안에 있으므로. 자기를 찾는 것은 진정한 나의 욕망을 찾는 것이다. 가족이나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내 속에서 용암처럼 흘러나오는 욕망. 작가에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그 다음 최초 시도는 히말라야 등반? 정유정 작가 본디 모습으로 존재해주어 독자인 나는 참으로 기쁘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만은 히말라야 등반을 함께 했다. 숨이 헉헉 찰 때도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날 때도 아들을 떠올리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듯한 순간도 손에 잡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정유정 작가와 간접 등반을 했으니 나도 언젠가는 꼭 종주하고 말리라! 히말라야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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