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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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을 쉬차가 끌고가듯, 소설 <28>은 우리를 단숨에 화양으로 이끈다.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늘 예약이 차있던 책

맘을 단단히 먹고 빌리긴 했지만 읽는 내내 힘들었다.

내가 원치 않는데도 글자들이 영화속 장면처럼 자꾸만 그려졌다.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책을 읽을 땐 눈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눈에서 피가 맺히는 기분이랄까.

작가는 굉장히 집요한.. 저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가는 힘이있다.

그 바닥이 지옥의 끝이라 해도 밀고 나가는 추진력..

무간지옥을 연상케 하는 도시 화양을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려냈는지. 정말 이런 도시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았다.

정부의 대응은 어찌나 현실적인지. 지금의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침몰에 대응한 것과 유사하다

꼬리 자르듯 화양만 섬으로 남겨진 채 화양시민들이 죽어가는 3개월 넘는 시간..

도저히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오히려 미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어떻게 썼을까. 쓰고 나서 탈진하지 않았을까.

작가 안에 있는 것 없는 거 모두 끌어다가 피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 것 같다.

트라우마로 느껴질 만한 많은 상황들에서 너무나 세세한 묘사들. 마치 그걸 보고 말하는 사람처럼.

끔찍한 장면들에서는 읽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다.

기준, 재형, 윤주, 수진, 동해, 링고.. 는 각각의 인생살이가 너무나 잘 이해됐다.

특히 재형은 누구보다 살기를 원하면서도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인간만큼 잔인하게. 죽도록 생존을 원하는 존재도 없다는 거다.

인간이 이 자연 속 식동물 세계에서 많은 종을 몰살시킨 유일한 종이므로.

우리는 그저 한 종의 동물이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장면들을 보면 알수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그저 살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이 세계 속에 들어와있기에 모를뿐이지

멀리서 보면 그저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나비 하나 정도로 여겨지지 않겠나.

어떤 욕망이나 뜨거운 감정이 올라올 때 식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내가 살아있는 수많은 생명체들 중 하나일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거울 속에 내 얼굴 안에는 수많은 뼈와 근육들이 있다는 것.

그저 그 자체일뿐이라는 것을 알면 된다.

그러면 거리감이 생겨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다.

문제와 나를, 감정과 나를, 욕망과 나를... 어쩌면 그것들은 지나가는 공기이자, 바람이자, 날씨 같은 것들이니까.

나 또한 지금은 이렇게 살아있지만 내일 혹은 한 달 뒤면 없어질 존재일지도 모르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던져진 생의 한계점이자 삶의 전제라는 것

작가의 생명에 대한 화두는 인간과 동물을 제한하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소중하다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을 죽이면서까지 애를 쓴다고.

사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애달프고 고달픈 게 아닌가. 적어도 화양시에서는 차라리 먼저 죽는 게 이꼴저꼴 보지 않고 힘들지 않은 것이다.

왜 이렇게 이 주인공들은 힘겹게 힘겹게 죽거나 살아남는가.

나는 솔직히 읽는 내내 치료제가 발견되거나 생존자들 중에 항체가 있어 그 비밀을 퍼뜨리거나 정부에서 도와주거나 하는 등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소설 중반이 넘어서까지 그럴 가능성은 1 프로도 없어져 버렸다.

끝까지 끝까지 도대체 끝이 어딘지 모를 바닥의 코너까지 몰린 기분이다.

그래서 결국 끝은 이거라고? 이게 다라고? 그 많은 생명들이 희생당했는데 결말은 이거라고?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처럼 허탈하고 또 허탈했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 끝에 2013년 6월 광주에서. 를 보고 어쩌면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고 그 얘기가 여기에도 쓰였겠다 싶었다.

글 읽는 동안 5.18 때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에게 했던 짓과 그 참상이 자연스레 떠올려졌다.

화양을 가두듯, 광주라는 도시 하나를 가둔 일..

부디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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