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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평점 :
말러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비해 대중적인 음악가는 아니다.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 역시도 말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히 클래식 라디오에서 말러의 아내 알마 말러의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19세기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던 빈 사교계의 화가, 음악가, 건축가 등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일류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녀는 당당히 뮤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말러에게 알마는 모든 것이었지만 알마에게 말러는 그저 지나가는 인연 중 하나였던 거 같다.
나중에 그녀가 말러가 아닌 말러와 결혼 중에 불륜 관계였던 다음이 된 남편인 건축가 그리피우스와의 낳은 딸과 합장을 한 것을 보면 그런 거 같다.
말러는 그녀의 첫사랑도, 마지막 남편도 아니니 자신의 인생에서 말러와의 사랑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거 같다.
처음부터 빈의 이방인이었던 말러가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알마를 아내를 맞이한 것이 어쩌면 기적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교양과 센스까지 뛰어났던 사교계의 여왕이 잠깐 성격까지 어두운 시골 출신으로 막 후광을 받기 시작한 천재에게 잠깐 호기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이도 많은 유대인 지휘자를 남편으로 선택한 것은 그녀의 인생을 평생 풍요롭게 해주었으니 그녀야말로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의 증거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말러와 결혼 전에도, 말러와 결혼 중에도, 말러의 사후에도 그녀는 자신의 매력과 자신의 아버지와 양아버지를 포함하여 주신의 주변의 남자들을 충분히 활용해 명성을 유지하니 그녀가 예술가적 재능의 유무는 그녀에게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거 같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극성적인 부모 특히 아버지의 철저한 음악 교육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말러에게 가정 환경은 오히려 아버지의 술집이나 근처 광장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민족의 음악을 빼면 최악의 환경이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빨리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지만 그의 부모는 천재적인 그의 재능에 관심조차 없었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그는 작곡을 하고 음악을 탐구했다고 하니 역으로 생각하면 부모의 음악적 문외한이 그에게 음악적 자유로움을 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의 성공을 바랐던 아버지는 말러의 재능을 발견한 피아니스트의 말대로 그를 빈으로 보냈고 학교 성적이야 어쨌든 그는 빈의 상류층에 당당히 입성하였으며 그 증거로 알마라는 아내까지 얻었으니 아버지의 바람보다 더 큰 성공을 한 셈이다.
알마와의 결혼생활은 장녀의 죽음 이후로 불륜과 파경으로 치닫지만 그래도 알마가 말러가 죽을 때까지 아내의 자리를 지켰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녀로써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어린 시절부터 사교계의 꽃으로,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로 활동했던 그녀가 19살 차이가 나이는 가부장적인 말러에 알마는 처음부터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지 않았을까, 그런 알마가 8년이나 그의 요구를 맞춰주며 가정적인 아내 노릇을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러의 사후에 '말러'라는 브랜드를 철저하게 자기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그녀의 행적을 보면 왠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 씨가 생각나는 것은 죽은 남편을 두고 자신이 유리한 대로 모든 것을 만들어버린 능숙함 때문일 것이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라는 조력자가 있었다면 말러에겐 여동생들이 있었다.
오빠의 모든 것을 맞춰주고 케어해준 그들이 있었기에 말러는 자신만의 오두막에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저자는 말러의 오두막 3군데를 다녀왔고 가는 여정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으니 나중에라도 가게 된다면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말러의 전기는 이미 몇 권이나 나와있으니 굳이 이 책까지 말러의 인생에 대해서 쓸 필요는 없다.
말러가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조금 다른 거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러에 대해서 단순히 천재 음악가로서가 아닌 말러가 살아간 세상의 모습이 어떤 이데올로기와 어떤 사람들의 이익들이 부딪히고 그 안에서 말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또 그가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등등 당시의 시대적 사실을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순히 악처로만 생각했던 알마 말러에게 조금은 동정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알마 말러는 아내나 연인으로써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투자자로서의 자질은 뛰어난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녀의 연인이나 남편들 대부분이 세계 예술사에 흔적을 남겼으며 그들이 남긴 작품들 속에서 그녀는 영원히 여신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휘자로는 이른 나이에 인정을 받았지만 작곡가로는 인정을 받지 못해서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외국으로 끊임없이 원정을 다녔던 탓에 건강이 약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깐깐한 성격의 완벽주의로 인해 단원들이나 악단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으며 그 결과 빈에서 지휘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건너간 후 단원들과 관계에서도 조금은 인간다움을 보여준 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그에게 3개월간의 유럽의 숲속 오두막에서 보낼 여름휴가가 절실했으리라 짐작되었다.
그에게 지휘는 작곡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벌기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거 같다.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말고 잘 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말러의 음악들이 인정을 받아 천재 작곡가 말러의 음악들이 세계의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지만 그의 개인사를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가 작곡은 그저 취미 정도로만 하고 지휘 활동만을 했었더라면 말러의 인생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