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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미나토 쇼 지음, 황누리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7월
평점 :
'여명백식'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걸린 시한부 병의 이름이다.
백 끼 정도 식사를 먹으며 몇 가지의 주의사항만 지키면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지내다가 잠을 자듯이 수명을 다해 죽는 병이라고 한다.
계산하면 남은 수명이 한 달 정도인 급성 시한부인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유의 일본 소설에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괘나 신비하고 낭만적인 병들이 자주 등장하는 거 같다.
병에 걸린지 한 달 만에 죽는 괘나 안타까운 병이라고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런 죽음은 누구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호상' 그 자체인 축복받은 병인 셈이다.
나 역시도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여병백식이라는 병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거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죽음을 대비하며 삶을 정리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을 다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부지런히 뛰어다니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스노보드 선수로 활동하던 토오야는 경기 중에 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친다.
외국의 낯선 땅에서 점프 후 추락. 흰 눈 위에 자신이 흘린 피로 주변이 붉게 물든 그 기억과 숨이 멎는 고통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아픔. 무엇보다 바로 코앞에 다가온 듯한 죽음의 공포는 상처가 낫고 재활치료까지 끝났지만 여전히 토오야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에 참가해도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지만 복귀 경기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예전처럼 높이 뛰어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경기장에서 도망치듯 떠난다.
이란성 쌍둥이 동생 유키토와 함께 겨울 스프츠의 열혈 팬인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부터 스노보드를 배웠고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유키토를 보며 묵묵히 연습을 한 결과 유키토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프로 선수가 되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의 곁에서 지켜보는 고통을 어린 시절부터 겪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노력을 하며 그 시절을 견뎌냈고 노력은 드디어 결과를 맺어갔다.
하지만 한순간의 사고로 그의 지난 노력은 엄청난 먹성을 제외하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리이의 블로그'
우연히 발견한 맛집 블로그.
운동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토오야에게 운동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 시간 낭비였지만 이제는 먹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이 되어준다.
리이의 블로그를 보고 우연히 간 맛집에서 혼자서도 유난히 맛있게 먹는 예쁜 또래 여자를 발견한다.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 맛있게 먹는 그녀를 보니 그녀가 다 먹고 난 뒤에 마지막 멘트가 리이의 블로그 속에서 작성자가 항상 하는 마지막 굴과 같아 눈길을 끌었다.
"아~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설마~~ 그냥 우연이겠지~
가게를 나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토오야에게 그녀가 다가온다.
나름 알려진 스포츠 선수지만 지금은 그저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외모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는데 설마 헌팅인가 했지만 그녀의 제안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자신이 여명백식이라는 병에 걸렸고 남은 식사를 함께 할 사람으로 토오야가 해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그녀가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한 '리이의 블로그'의 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차피 훈련도 시합도 빠진 마당에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제안을 승낙한다.
21살인 토오야보다 1살이 많다는 리이는 환자라는 그것도 남은 수명이 겨우 한 달 남짓의 시한부 환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활달했다.
무엇보다 토오야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기에 토오야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쓸데없는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리이는 백수라는 토오야의 이야기를 믿는 듯하고 따로 계획도 없었기에 리이의 남은 맛집 여행에 동행하기로 한다.
분명 시한부의 끔찍한 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여행 내내 옆에서 보는 리이는 정말 환자가 맞나 싶다.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옆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리이를 보면서 그녀의 말이 거짓말이길 바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리이의 부탁으로 병원에 함께 간 날 리이의 주치의를 만나 리이의 남은 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다시 재확인하게 된다.
리이가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끼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토오야에게 리이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까지 받았다.
두 사람의 맛집 여행을 하던 중 토오야의 훈련 장소이기도 했던 스키장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토오야를 알아본 사람들로 인해 리이는 토오야가 유명 스노보드 선수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것도 알게 된다.
토오야가 자신에게 다정하거나 멋있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곤란한 표정으로 토오야를 바라보던 리이는 토오야의 본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다.
스키장에서 리이는 의사가 말했던 발작을 일으키고 그제서야 리이가 죽음을 앞둔 사람이었다는 것,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겨우 통증을 이겨내고 깨어난 리이는 높은 곳에서 선보이는 기술을 보여달라고 하고 리이를 위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자신의 스노보드를 들고나가 멋지게 성공한다.
원래의 자신의 기록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해냈다는 기쁨과 선수 무라사키 토야의 승부욕이 생각났다.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은 리이의 남은 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함께 할 날은 길지 않다.
리이의 진짜 남자 친구가 되어 리이의 친구들을 만나고 리이의 부모님을 만나 리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갑작스러운 토오야의 사고와 리이의 발병.
그리고 한 달 남짓의 짧은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모두 이 단어 하나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서명이기도 한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것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는 토오야의 운명을 한 줄로 표현한 것이었다.
겨우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함께 했던 토오야와 리이.
서로에게 필요했던 만남.
처음 만났을 때는 알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았으며, 서로에게 필요했던 용기를 줄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어쩌면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서로에게 실망할 시간조차 없었기에 토오야에게 리이는 '그리움'만으로 남은 가장 완벽한 연인으로 남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