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일본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문제작.
성적인 부분에서 표현이 자유로운 일본에서조차 문제작이라고 하니 일단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영상을 보다가 원작이 궁금해져서 책을 찾아보니 도서관에 있었다.
며칠 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그리 두껍지는 않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대출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일본 여배우 중 일본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기 배우 키타가와 게이코라서 더욱 흥미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유키는 임상심리전문가이다.
사진작가인 남편과 아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고 평안한 워킹우먼 그 자체이다.
유키와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꿈이었던 종군 사진작가를 포기하고 사진관을 운영하며 웨딩사진이나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남편은 유키에게 자상하기 그지없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의 표본인 거 같은 사람이다.
대학시절 남편의 사촌 동생을 만나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사진전을 찾아갔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사촌 동생과의 사이는 여전히 어색하고 껄끄럽다.
그런 그에게 직접 연락이 온 것은 유키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다.
법대생이었던 가쇼는 유키와 같은 학교 출신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가쇼가 이번에 맡은 사건의 피의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극강 미모의 아나운서 지망생' 이라는 타이틀로 세간을 들썩이고 있는 칸나이다.
국선 사건으로 이 사건을 맡은 가쇼는 제대로 된 변호를 위해서 칸나의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는 이유로 형수이자 대학 시절 연인에 가까운 존재였던 유키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가쇼가 다른 전문가들을 두고 그녀에게 연락한 이유는 대학시절 유키가 가진 심리적 어둠을 칸나에게서도 보였기 때문인 거 같다.
해외출장을 자주 갔던 아버지가 출장을 갈 때 해외에서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유키가 성인식을 하던 날이었다.
어느 날인가 유키가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던 중 아버지가 욕실 문을 열었을 때 전혀 당황하지 않고 팬티만 입은 유키의 몸을 보던 그날의 불쾌함의 이유를 알게 된 그날 유키의 정신은 무너져버렸다.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직접적인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어리 소녀를 성적인 대상으로 구매했던 아버지가 딸인 자신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사실을 어머니가 알고 있었다는 점 또한 유키는 이해할 수가 없어 어머니를 보는 것도 껄끄럽기만 하다.
칸나를 만나면서 그녀가 감추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파고들수록 자신과 비슷한 경험과 마음속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아버지라는 사람과 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린 소녀인 칸나에게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 알게 된다.
칸나의 아버지는 칸나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고, 세간에서는 성공한 화가이자 미술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자신의 친구와 자신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칸나에게 티 나지 않는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은 파렴치한이었다.
미술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호적상으로는 딸인 칸나를 자신이 집에서 남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데생 교실에 모델로 세웠다.
어린 소녀에게 몸의 실루엣이 다 드러나는 얇은 소재의 옷만 입히고 성인 남성 누드모델과 장시간같이 포즈를 취하게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보통의 아버지가 아니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뻔뻔하게 했고 그런 그의 행위에 예쁜 어린 소녀의 몸에 더러운 시선을 당당하게 보낼 수 있는 동조자들이 있었다.
피부의 감촉이 느껴지는 얇은 천은 몸을 다 드러냈고 그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림을 그리는 수많은 성인 남자들 사이에서 어린 칸나가 느꼈을 공포와 수치심은 그녀로 하여금 자해를 하게 만들었다.
직접적인 성폭행이나 추행은 없었다고 하지만 데생 교실은 학생들 중 몇몇은 유난히 예쁜 소녀였던 칸나에게 추한 욕망을 요구하는 등의 스토킹 행위도 있었다는 사실을 유키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다.
그중 몇은 어린 소녀의 동의를 구했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들과의 성관계가 칸나도 원했던 것이라 주장한다.
딸이 이런 상황에 내버려둔 것도 부족해서 검사 측의 증인으로 칸나에게 죄를 묻는 그녀의 어머니를 보며 유기는 더욱 화가 났다.
현실을 외면한 채 어머니로서 자식을,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무책임한 자신에 대한 반성은 일도 없이 칸나를 살인자로 모는 칸나의 생모를 보며 유키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남편이 외국에 갈 때마다 어린 소녀들을 사서 성매매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유기의 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키에게 연락을 하거나 만나러 온다.
아버지가 딸에게 어떤 시선을 보냈는지 딸 또래의 소녀들과 성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유키가 받았던 고통을 알면서도 그저 자신은 유키와 자신을 위해 가정을 지켰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을 하며 뻔뻔하게 유키에게 연락을 하는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유키에게 여전히 힘들었다.
이런 유키를 위해 남편 가몬은 장모에게 일부러 유키가 집에 없다고 하거나 연락 없이 갑자기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강경하게 말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유치나 자신의 친정어머니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유키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다.
생모에게 어린 시절 학대를 받다가 굶어죽기 직전에야 생모의 언니였던 지금의 어머니에게 구조된 가쇼.
이모와 이모부는 그 후 가쇼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 되어주었고, 그들의 아들이었던 가몬은 어린 가쇼에게 자신을 아껴주는 좋은 형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쇼와 유키가 캠퍼스에서 만나 연인에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지만 우연히 유기의 방에서 둘은 처음으로 성관계를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그 일을 계기로 가몬은 대놓고 유키를 무시하며 멀어졌다.
유키와 가쇼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은 그들이 연인이 되기에 충분해보였지만 너무나 마른 유키의 몸이 가쇼의 생모와 너무나 비슷해서 그들은 연인이 되지 못한 채 헤어졌다는 것을 나중에 유키는 병원에서 시이모인 가쇼의 생모를 직접 만나고서야 알게 된다.
마음을 터놓은 유일한 친구였던 유키의 벗은 몸을 보는 순간 가쇼는 자신의 학대하고 방치했던 생모를 떠올렸을 것이다.
칸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서 한 명 한 명 만나 칸나의 양부가 했던 파렴치한 행동들과 그의 데생 교실에 참가했던 괴물같은 인간들에게 어린 소녀가 당했을 성적 수치와 성폭행, 성추행 등이 하나하나 들어날 때마다 뚜럿한 증거 없는 성폭행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렸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손목을 긋고 자해를 해서 상처를 만드는 것만이 그 끔찍한 모델일을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어른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 몸을 내주는 것만이 어린 칸나가 그들에게 버림받지 않는 방법이었다.
싫다는 표현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버릇처럼 웃으면 그들은 그저 그 웃음이 그녀가 자신들과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라 생각하며 어린 소녀를 유린했다.
친딸이 아니기에 퍽하면 호적에서 파낸다는 소리를 쉽게 했던 양부. 예뻤기에 더욱 망가트리고 싶었던 아내의 불륜의 증거일 뿐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칸나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망가트리기 위해 대놓고 프로노를 찍게 하고 매춘을 하게 한 거나 다름없는 행위를 그저 '예술'로 포장했지만 그가 칸나에게 한 행위는 티나지 않은 아동 성학대 그 자체였고 아무것도 몰랐다며 그저 칸나를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로 주장하던 칸나의 생모 역시도 자신이 성적 학대
를 받은 피해자였다는 것을 칸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다.
하지만 칸나의 생모는 자신이 피해자였다고해서 칸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묵과한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인 추행이나 성폭행이 아니니 법적인 처벌은 힘들 것이다.
더욱이 어린 칸나나 유키가 당했던 끔찍한 일들을 가족이라는 틀안에서 디른 가족들의 묵인과 무시 속에서 벌어지기에 타인이 알아채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하지만 책의 끝부분에 칸나의 책을 추진했던 편집자의 말대로 칸나나 유키처럼 법적 처벌이 가능하지 않은 사각지대에서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꼭꼭 숨어 당했을 고통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풍족해 보였던 칸나와 유키는 자신들을 마땅히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부모들로 인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칸나는 살인자가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