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말과 글을 단련하고 숫자, 언어,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
노르망 바야르종 지음, 강주헌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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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원론일 뿐이다. 현재 우리사회는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대의민주주의이기에, 선거 때 이외에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내가 지지했던 정치인은 선거이후에 나의 뜻이 아닌 자기가 속한 정당의 의견을 쫒아가는 수가 태반이며, 자기가 내건 공약의 50%이상 실천하는 정치인도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는 이름만 민주주의인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떤 정치인이 “국민이 원해서”서라고 한다면, 그게 진정 국민의 뜻이라고 볼 수 있는가는 문제는 그 말의 모호성과 더불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국민이라는 대표성을 내세우는 대의 민주주의의 진실을 반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뼈아픈 “삼당합당”의 밀약정치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도 결국 국민이 원해서 했다는 정치인의 말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대다수 다른 국민들은 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그 정치적인 활동의 영향이 경제와 산업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세금증가나 실업, 심지어는 전쟁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구경꾼으로 살고 있는 대다수의 민주시민들이 왜 깨어있어야 하는지, 미디어와 정보가 어떻게 편향되게 보도가 되는지, 숫자와 통계가 어떻게 왜곡되어지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은 깨어있는 민주시민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우리가 구경꾼이 아닌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각종 매스미디어에 현혹되어 살아가지 않는 법, 언어에 현혹되지 않는 법, 통계와 수치를 읽어나가는 방법, 사이비과학과 과학의 구별, 인간의 단순한 지각적 경험에 현혹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법을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p281 “민주주의와 정보라는 개념이 현실 세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대다수의 국민은 참여자가 아니라 구경꾼이다. 또한 국민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진 정보이다. 이런 정보는 국민의 눈과 귀를 딴 곳으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다.”

자본과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언론의 진실이 어디 있으며, 그 언론은 어떤 자본의 힘으로 움직이고, 어떤 광고주의 힘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언론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진짜 과학과 사이비과학은 어떻게 구별되어지는 지도 이야기 하는데 과학자체는 언제든 새로운 증거들이 제시되면 뒤집힐 수 있는 반면 사이비과학은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며 사고나 논리가 돌고 돌뿐이라고 이야기한다.

p262 “사이비과학은 일반적으로 제자리를 맴돌 뿐이고, 연구 결과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나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만 변한다. 달리 말하면, 사이비과학은 전통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 전 EBS에서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있는 장하석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라는 강의가 방송된 적이 있다.

이 강의에서 과학의 목적과 실험 방법 들을 설명하면서 과학이 수많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체계화되어진 과정을 설명해 주었는데 이 강의 내용 중 “토마스 쿤의 정상과학”,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하며 과학도 결국 끝없는 변화의 과정을 통해 좀 더 옳은 방향, 객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다원주의적 철학과 맞물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장하석교수는 이를 과학적 다윈주의라고 이야기한다.

 

객관적인 자료의 분석으로 이루어진 과학도 이럴 진데,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민주적체계도 점진적으로 발전을 이루려면, 국민 개개인이 정확하게 사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며 그것 자체가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사회적 다원주의가 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역이나 연고에 얽매이는 인정주의를 깨고, 장기적인 발전을 바라볼 수 있는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은 그 바람의 디딤돌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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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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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산행을 하거나, 오래달리기를 하다보면 몸은 지쳐서 헉헉대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죽을 듯 힘들지만, 손발은 기계처럼 움직이고, 마음은 힘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분리된 듯한 경험이라고 할까요.

 

그러고 나면 일상에 찌든 삶이 훨씬 가벼워보이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은 자신감도 들게 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힘든 마라톤을 하고 산행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7년의 밤》, 《28》의 작가 정유정님의 유쾌한 히말라야 산행기는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작가의 슬럼프탈출기라고 보면 될듯하기도 합니다.

척하면 착하고 써낼 것 같은 작가들이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그런 지독한 슬럼프는 수시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정유정작가도 역시 그런 지독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휴양지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만 하는 불편한 히말라야로 떠나게 됩니다.

 

첫 해외여행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곳을 간다는 것 자체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쫒아갈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내밀한 상처와 아픔들, 그리고 힘든 맏이의 생활 등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며, 지독하게 힘든 여정을 겪어나가는 과정이 다소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되어집니다.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끄집어내고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한 단계 올라서는 일. 그일을 그녀는 이 여행을 통해 이루어 낸 것 같습니다.

 

p281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그때 답해왔던 목소리가 똑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죽는 날까지.

 

쏘롱라패스를 통과하는 히말라야 환상 종주를 통해 어려움에 맞설 용기를 얻어낸 작가의 다음 작품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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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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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기가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뒷동산에 올라 쏟아질 빛나던 하늘의 촘촘한 별들은 가로등불과 휘황하게 밝은 네온사인들, 그리고 큰 건물들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여행간 밤 바닷가의 모래사장에 누워 쏟아지듯 빛나는 별을 보며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찾고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에게 별은 과학적분석의 대상이기 보다는 순수한 감성적 어떤 이미지를 간직한 것 같습니다.

그 아름다운 별들이 인간이 만든 빛속에 잊히듯 우리도 우주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우주를 잊고 산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가 찰나의 존재라는 잊고 산다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 『코스모스』를 보면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전쟁과 환경오염 그리고 핵폭탄 등의 범지구적 재앙을 가져올지고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적 국가관으로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면 범지구적관점을 가지는 것이 이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칼세이건의 외침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절실한 인간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전우주적 관념에서 본다면 인간은 지극히 귀중한 존재이니까요.

 

p674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하나가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과학 서적으로 생각하고 읽었던 이 책에는 유전자와 원자, 양성자, 쿼크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우주와 은하의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과학의 답변과 더불어 인간이 왜 귀중한지, 그리고 그 인간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이 담겨있습니다.

 

과학 서적에 이런 인문학적 생각까지 녹여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30년이 지나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자체 또한 과학 서적으로는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도 과학의 발전을 본다면 비약적일 터인데 30년 넘게 살아남은 과학 서적이라면 무조건 읽어봐도 될 것 같습니다.

 

2500년 전 이오니아의 학자들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 그리고 그 과학자들의 잊혀진 이야기가 중세의 어둠속에 갇혀 있다가 르네상스 이후에 근대 과학의 탐구로 이어졌던 과학사적 이야기와, 조르다노 브루노의 우주관, 케플러의 행성의 타원운동 과학사와 과학이야기들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이 책은 700페이지가 넘지만 쉽게 읽힐 뿐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힘들 일들이 있었습니다. 힘든 일이라는 것이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나 작은 일이면,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일 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욕심으로 어떤 일을 보기 보다는 그 욕심을 버리고 어떤 일을 바라봐야만 그 일이 제대로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칼세이건은 지구는 우리은하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며 한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왜 열심히 충실하게 살아야 하고, 우주를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 해줍니다.

 

p631 이제야 우리는 스스로를 1조개의 별들을 각각 거느린 1조 개의 은하들이 여기저기 점점이 떠 있는 저 광막한 우주의 바다에 부질없이 떠다니는 초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초라하지만 귀중한 인간을 생각하며 읽어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듯합니다.

참고로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13부작의 코스모스 다큐도 방영되었는데, 이것과 같이 보면 이 책의 내용이 정말 잘 이해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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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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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2년 노벨상 수상작가인 중국 모옌의 소설인 『개구리』는 중국의 가장 민감한 문제의 하나인 계획생육을 다루고 있다.

‘계획생육’이란 것이 인구를 계획적으로 조절한다는 의미로, 일종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볼 수 있는데, 도시에서는 독생자녀(獨生子女)라는 원칙에 따라 한명만을, 농촌에서는 아들인 경우에는 한명만을, 첫째가 딸인 경우에는 8년이 지난 뒤 한명을 더 나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라고 한다.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인권이라는 틀에서 이 정책을 본다면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자율이 아닌 강제를 통해 이 정책을 시행했고, 그 결과 수많은 낙태와 어둠의 자식(무호적 자식)을 양산해 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식인구와 실제인구에 차이가 많다고 이야기되는 것도 이 정책 때문이며, 이 정책을 어기고 둘째를 출산해서 등록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중국정부가 외국에 비판에도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는 이 정책은 중국에서는 언급자체가 다소 민감한 문제라고 하며, 모옌은 이 민감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 한다. 작중화자인 커더우(필명이며 올챙이라는 의미)의 입을 통해 중국에서 50년간 산부인과 의사를 했던 고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산동성에 있는 가오미 둥베이 향을 배경으로 계획생육의 일선에서 직접 정관수술과 낙태수술을 시행했던 산부인과 의사였던 고모는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정부의 정책을 꾸준히 실천해가며, 그 속에서 이를 위반한 사람들과 목숨을 건 싸움까지도 해야 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p185 고모가 말했습니다. 계획생육은 국가의 대사야. 인구를 통제하지 못하면 식량도 옷도 부족하고,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어. 사람들의 수준을 향상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가 없어. 이 한목숨, 나라의 계획생육 사업을 위해 바칠 수 있어.

커더우 본인의 아내마저 임신을 숨기기 위해 도망 다니다가 너무 늦게 시행된 낙태수술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고, 나중에 재혼을 하게 되지만, 아들을 가지고 싶어 하는 아내의 욕심으로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얻게 되는 슬픈 중국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

정책의 잘잘못을 떠나 그 정책의 시행 속에 인권이나 사람들의 삶이 망가져가는 모습들. 그리고 현대화를 통해 부의 편중이 일어나면서 대리모등을 통한 부유층의 출산 등으로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을 커더우와 고모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스키다니 요시토라는 선생에게 보내는 서간체형식으로 이루어있는 이 소설은 끝부분에 극본을 붙이는 형태의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중국의 내밀한 모습을 비판하는 모습보다는 담담하게 본인의 일을 제 3자에게 서술하는 형식을 통해 정책비판이나 인권비판을 피해가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개구리는 수많은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정령으로 상징되는 데 소설 속에 3개월 된 태아의 모습이 긴 꼬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변태기의 개구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개구리가 낙태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생명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라져간 생명들과 그를 기리는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그 의미만으로도 인권을 가장 앞에 두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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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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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근대사는 우리만큼의 격동의 세월을 겪어냈다. 공산주의 사회로의 변화와 문화대혁명의 시기, 그리고 다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 등은 고단했던 중국의 근현대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기의 중국에 사는 민중들은 절망하기도 했으며,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하기도 했고, 문화대혁명의 시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역적으로 이름으로 처단당하기도 했다.

 

그 격동의 세월을 이 소설의 주인공 “푸구이”노인은 온몸으로 겪어내게 된다.

인생을 도전과 응전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삶의 역경에 순응하며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아마 격동의 세월에 반기를 들었다면 죽음이었을 모를 시대를 살아남은 이들의 비참함일지도 모른다. 중국혁명과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삶과 죽음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기보다는 당의 평가 속에 있고, 그것을 어쩔 수 없이 개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적 순응일런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이라는 게 이런 정치적 격동을 모두 포함하여 “운명”이란 말로 포장한다면 푸구이의 삶은 운명의 격랑에 흘러내려가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인다.

 

p8 이 작품의 원제 ‘살아간다는 것(活着)’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 …… 나는 《인생》이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작가 위화가 서문에서 밝힌바와 같이 인생은 목적을 지향해서 살아가기 보다는 살아가는 것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말에 동의한다면 이 소설은 눈물과 절망 없이 견뎌내기 힘든 한 개인사를 감정이 배제된 담담한 필체로 이야기한다.

 

“푸구이”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놀음과 주색에 빠져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결국 빈털터리로 자신이 주인이었던 땅에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사기 놀음으로 푸구이의 땅을 모두 가져갔던 룽얼은 결국 공산주의의 악덕지주의 처단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결국 푸구이 대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몰락의 행운을 빼고는 푸구이는 내내 불행하다. 아내 자전의 병과 아들 유칭이 현장부인에게 과도하게 수혈을 해주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고열로 농아가 된 딸 펑샤가 나중에 출산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 사위 완얼시의 죽음. 그리고 외손자 쿠건의 콩의 과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푸구이는 꿋꿋하게 살아낸다.

그리고 자조 섞인 말로 삶을 이야기 한다.

 

p278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과 아내, 손자까지 죽음에 이르는 과정 속에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의 경지를 벗어난 지도 모르고, 소설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슬픔을 묵묵히 참아내며 살아남는 푸구이의 삶은, 일제징병과 6·25전쟁에서 가족과 자식을 잃어버렸던 우리민족의 어머니들의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 무게를 이겨내고 삶아남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당장은 힘들고 죽을 것 같지만 먼 세월 속에 돌아본다면 큰일도 별거 아니라는 삶에 대한 유연한 시각일지도 모른다.

위화는 이 소설 인생을 통해 이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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