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er Evans (Paperback)
Mora, Gilles / Thames and Hudson Ltd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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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의 농업안정국 소속으로 활동하던 워커 에반스의 사진작품집이다. 당시가 미국의 대공황시절인데, 미국 농촌의 현실을 담아낸 수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모두가 흑백사진이며 전반부는 포트레이트 사진이 주류이고 후반에는 건물의 조형성을 강조한 이미지가 주류를 이룬다. 에반스는 대형의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이에 따라 큰 삼각대를 둘러메고 사진작업을 했다고 한다. 아뭏든 그의 대표적인 여러가지 인물사진이 있는데, 필자는 'Dock-worker, Havana. 1932' 라는 작품에 시선이 간다. 삽자루 2개를 왼쪽 어깨에 걸머지구 사진가를 뚜렷이 바라다 보고 있는 사람을 촬영했다. 눈매가 슬퍼보이기도 하면서 삶에 지친 듯한 인상을 풍기며, 꾹 다문 입술은 하얀 수염에 가려서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아마도 고된 노동으로 인해 치아가 거의 없는 듯 하다. 왜냐하면 턱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는 매우 커서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 번 보면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한편, '파리가 있는 침대' 라는 이미지에는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 인화를 하던 사람이 꼼꼼히 하얀 침대에 앉아 있어서 마치 잡티처럼 보이는 파리를 일일이 제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본 에반스가 불같이 화를 내서 다시 인화를 했다고 한다. ㅎㅎㅎ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나름대로는 잘해보겠다고 한 것인데 말이다. 초기에 에반스는 자신이 직접 인화를 했으나 이후에는 조수나 전문 현상소에 맡겼다고 하는 것 같다. 현재 그는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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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 Riboud (Hardcover) - 50 Years of Photography
Annick Coljean / Flammarion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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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마크 리부의 작품을 볼 때마다 페르낭 레제의 예술작품이 오버랩된다. 특히나 '에펠탑의 페인트공(Man painting the Eiffel Tower without a safety belt more than 900 feet avobe Paris. 1953)' 이라는 사진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레제의 '건설자들' 이라는 회화작품을 보는 듯 하다. 필자의 사진보는 내공이 딸려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면 일종의 기시감 때문인가? ㅎㅎㅎ
이 사진은 하얀 배경을 바탕으로 탑의 조형성이 K자 구도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인물은 조금은 무심한 듯한 표정을 갖고 그러면서조 약간 미소를 띈 듯한 옆모습, 한 손에 붓을 들고 에펠탑을 칠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그런데 페인트칠에는 집중하지 않고 있는듯 해서 약간 설정샷 비슷한 냄새가 풍긴다. 이 사진이 바로 표지에 나와 있는 마크 리부의 사진집이다.

또 하나나 이름난 작품이 있는데, 제목이 'Confrontation between a flower and the bayonets of solders guarding the Pentagon during the March for Peace in Vietnam. Washington, D.C., October 21, 1967) 라는 사진이다. 화면 좌축에 총을 든 병사들이 있고 우측에는 한 여인네가 그 총구에다가 꽃을 꼽아넣는 장면이다. CF에서도 많이 패러디 되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렇게 냉정한 현실을 아이러니한 코믹스타일로 만들면서도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스타일이 바로 마크 리부 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진 이전에 1958년에 그는 일본에도 잠깐 갔었는데 몇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원제가 (The Buddha of Kamakura. Japan, 1958) 인데, 화면 중앙에 큰 돌부처가 보이고 그 바로 앞에 여인네와 딸이 작게 나와있다. 그리고 이 모녀를 촬영하는 남자가 매우 과장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리부가 촬영한 사진이다. 모녀를 찍는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양다리를 좌악 펼치고 --기마자세라고 하나?-- 바지는 배위까지 올린다음 단단하게 벨트를 조이고 있다. 마치 불량스러운 야꾸자를 보는 듯하다. 왜 이렇게 기묘한 자세로 불편하게 사진을 찍고 있을까? 아마 이 장면이 무척이나 우습게 보여서 리부가 찰칵 찍은 것 같다. 필자가 짐작해보기에는 당시 일본에서 카메라 라고하는 것은 일종의 중산층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느라고 그런 자세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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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apa : The Definitive Collection (Paperback)
Whelan, Richard 지음 / Phaidon Inc Ltd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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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두꺼운데 엄청 저렴한 사진집. 겨우 5만원도 안된다고? 요즘 웬만한 사진집하면 십수만원 넘는것은 기본인데? ㅎㅎ 아뭏든  카파의 보도사진이 572쪽에 걸쳐서 모두 나와 있다. 책 크기도 크고 사진용지를 사용해서 상당히 무겁다. 펼치면 웬만한 책상은 다 차지함.

이 보도사진집을 보면 알겠지만, 카파의 시선은 거의 대부분 위를 바라보며 찍었다. 사람의 시선과 비슷한 화각은 한 20퍼센트 정도고 나머지는 항상 앉은 자세에서 인물을 바라보며 촬영한 이미지다. 부감법으로 내려다 본 사진은 몇장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Saarland, September 1934, 라는 사진에서는 화면 좌측에 거대한 기계, 아마도 포크레인의 아귀같은 구조물이 크게 걸려있고 그 옆으로는 노동자인 듯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로 위치해있다. 그리고 이것을 앉은 자세에서 앵글을 잡아서 매우 강렬하고 담대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다.  또 하나 필자의 시전을 잡아 끄는 사진은 ''Saint-Quen, Francd, May-June 1936. Sit-in strikers at the Lavalette Construction Company plant' 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진이다.


한 2미터 남짓한 벽위에 한 남자가 갓난아이를 두손으로 잡고 있으며, 그 아래에서는 또 다른 남자가 그 아이를 받으려고 두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있다. 위에 있는 남자와 갓난쟁이는 매우 즐거운듯 이를 드러내며 웃고있다. 아래에 있는 남자는 뒤통수와 상반신만 보이므로 표정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위에 있는 남자와 아이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래층 남자도 껄껄 웃고있음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이 정말로 보이는 듯도 하다. ㅎㅎ. 아뭏든 이것을 약간 뒤에서 물러나 역시 살짝 올려다 보면서 찍은 이미지다. 올려다 보면서 찍었지만 렌즈의 왜곡이 거의 없어서 왜곡되지는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카파의 스타일이 아닐까 한다.

그가 말하길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하니 이런 마인드가 그래도 드러나는 것 같다. 여기에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 직접적으로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피사체를 나와 떨어진 어떤 객체로 인식하지 말고 그 안에 같이 뒹굴면서 친해지라는 뜻.

그리고 올려다보지 않고 그냥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진에서는 'Near Troina, Sicily, August 4-5, 1943. A Sicilian peasant telling an American officer which way the Germans ha gone.' 가 기억난다. 화면 오른쪽에 농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긴 막대기를 들어 왼쪽을 가리키고 있다. 이 막대기는 가늘고 길어서 화면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미군장교가 쪼그려 앉아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독일군이 어디로 갔지? 미군은 묻고 농부는 대답한다 저~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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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강세황
국립중앙박물관 지음 / 그라픽네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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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그는 천재였는데 시.서.화 3절에 모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조선 예술계의 거목, 총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영.정조 때였는데 그는 관직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거의 반 평생을 후학을 길러내는데 힘을썼으며 주로 평론가로서 활약했다. 그러나 말년인 60대에 이르러서야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중국으로 가서 새로운 문물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왜냐하면, 서양화 화법의 도입에서 보듯이 그는 진취적이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결코 꺼려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예로써 그는 72세에 노구를 이끌고 북경 사행길을 다녀왔는데, 그 와중에 많은 기록과 작품을 남겼다. 평소 그는 중국 학자들을 만나서 폭넓은 교류를 하기를 소원했었다고 한다. 앞선 문명과 문화에 대한 갈증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바이니 강세황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표암 강세황은. 단원 김홍도를 길러낸 스승인데, 우리나라 그림의 역사에서 서양의 원근감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시도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열린 자세를 가졌던 선비다. 당시의 조선은 오로지 중국만이 대형이고 다른 여타의 나라는 오랑캐라고 취급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마음가짐은 정말로 본받아야 한다. 세계 정세를 등한시하다가 불행했던 근현대사를 보내고 있는 우리민족을 생각해보라. 아뭏든, 그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닮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멘토였던 셈이다. 그러한 강세황의 작품과 일대기를 간략하게마나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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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되고 싶은 화가 장승업 - 한국편 3 ㅣ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한국편 3
조정육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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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의 그림은 호쾌하면서도 푸근하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는 조선후기 민화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쁘기 한량없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바로 오원 [장승업]이다. 필자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어떤 유명한 조각가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뛰어난 작품을 다듬어 낼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답하길, 나는 조각을 하는게 아니고 그 안에 담겨진 형성이 드러나도록 불필요한 부푼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장승업의 화풍도 이와 같다. 그는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으나, 붓을 쥐기만 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걸작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적도 없는 이가 말이다. 달래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뭐라고 비유를 할까? 포토샵의 마스크 툴과 같다. 가면을 벗으면 실체가 드러나듯이, 장승업은 하얀 도화지를 걷어내어 그 안에 담겨진 진실한 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한편, 장승업이 화가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은, 이응헌이라는 재력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는 역관 출신으로 중국의 많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조실부모하고 고아로 자라난 장승업이 이때 그의 집에서 하인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응헌이 장승업의 후원자가 되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걸작들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후 장승업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는 관직을 받았는데, 무엇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가 이를 박차고 뛰어나가는 장면이 바로 취화선 포스터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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