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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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던 내용의 상당수가 이 책을 발원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짜집기 인지? 어떤 면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어떤 면은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다. 한번 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어려운 내용이 없으니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 한국사회의 미비한 점을 캐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완곡하게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새 심각한 고령화 사회가 되었으며,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고령 인구는 별도의 계층을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수를 앞세워 젊은 층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옹호아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다. 조금은 적나라하게 --그리고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싸가지나 버릇없게-- 말하자면, 노인층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훼방놓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한국 정치/경제/사회 부분을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또 하나는 이 좁은 반도에 갖혀 살다보니, 생각마저 협소하게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비단 저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섬나라와 마찬가지고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관점에서 뭔가를 도모하는 것이 부족하다. 불행한 근현대사를 생각해보라. 저자는 여기에서 조선시대의 병세의식을 얘기하면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그건 뭐냐? 소통이다. 한중일의 대화. 우리가 주체적으로 나서서 중국과 일본을 통섭의 장으로 이끌어내자는 얘기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역사적 앙금으로 말하면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통합에 성공했다. 역사적 앙금 그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지식인들의 교류가 충분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지식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의 상호 교류는 세 나라 사이에 어떤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한적이다.

200년 전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은 서로 활발하게 교류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형성하는 지적 공동체, 즉 병세의식倂世도 존재했다...........중략........

 

그리고 이 시기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조선 지식인들과 일본 문사와의 사적 교류도 흥미롭다. 이전과 달리 상대를 얕잡아 보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일본 지식인을 지식 교류의 장에서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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