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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사운드 - 전 세계의 경이로운 소리를 과학으로 풀다
트레버 콕스 지음, 김아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유명한 건축 설계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건축 설계자라 해서 건물을 짓는 사람은 아니었고, 건물안의 음향 설계를 하는 사람이었다. 음향의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서 건축물을 설계하는데, 예를 들면 음악당, 극장, 강당, 오페라관 등을 설계하는 일 등이다. 한참 전의 기사였는데 당시에 흔하지 않은 직업이었고 전문성도 높다는 기억이 난다.
음향설계란 강당의 강연을 명료하게 들을 수 있게 하거나 음악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실내음향, 소음, 진동등을 제어하는 것이다. 보통의 실내음향에서는 외부의 소음을 잘 차단해야 하고 에코, 부밍(웅하고 울리는 현상), 데드 스폿(음이 약해지는 장소)이 없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가 벽에 반사한뒤 도달하는 반사음이 직접음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음악당이나 강당에서 보는 벽의 요철은 이런 것들을 반영하여 설계한 것들이다.
저자는 이런 음향설계를 하는 음향공학과의 교수이다. 그는 그동안 실내에서 음향이 잘 작동하게 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소리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는 연구만을 해왔는데, 어느날 음향에 관한 라디오 인터뷰를 지하 하수구에서 하면서 소리의 왜곡도 가끔은 멋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실내가 아닌 지구 곳곳의 놀랍고 예상밖의 절묘한 소리를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고대 유적에서의 반향과 동물의 소리, 과거 건축물의 소리와 동굴, 사막에서의 소리, 그리고 인공물인 종소리와 극장에서의 소리 등등.
소리를 음파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리의 파동에 관한 물리적 지식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주파수와 보강, 간섭, 굴절 등. 물리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이렇게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이 신기했다. 종소리가 소개되어 있는 장에서는 에밀레 종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성덕대왕 신종도 언급되어 있다. 나는 아직 그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 소리가 신비로워 종을 만들때 아기를 희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책에서 종은 대칭, 또는 대칭의 부재가 울림을 일으키는 원인인데, 종이 완벽한 원형이 아니면 비슷한 주파수의 두 음이 함께 울린다 한다. 영국의 빅벤이 독특한 울림을 갖는 이유는 종의 결함(눈에 띄는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두 개의 주파수가 발생했기 때문이고, 한국의 에밀레 종도 이런 떨림을 음질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실내 음향에서는 이렇게 두 개의 주파수가 동시에 발생하면 서로의 간섭으로 소리를 잘 듣지 못하게 되므로 회피했을 방식인데 악기나 다른 사물 곳곳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의도적으로 삽입하여 제작한다는게 새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각적인 것만 중시하던 것에서 청각적인 것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첫장에 나와있는 세계 곳곳의 신비한 소리들이 숨어있는 곳을 이 책과 함께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