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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신화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카다 에미코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7월
평점 :
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신화, 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게 어릴적부터 익숙해져왔구요. 그래서인지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역사로는 상당히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신화나 영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지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북유럽카페 에서 이벤트를 하여, 이렇게 #오카다에미코 의 #페르시아신화 책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뭔가 익숙한 신화의 세계를 벗어나 전혀 다른 문화와 상상력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책을 쭉 읽어보면 조로아스터교의 전승과 고대 페르시아의 이야기, 그리고 이란의 대표적인 서사시인 샤나메를 바탕으로 페르시아 신화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소개합니다. 천지창조에서 시작해 뱀왕 자하크, 선왕 페레이둔, 신령한 새 시무르그, 영웅 잘과 로스탐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구성이어서 페르시아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전체 흐름을 따라가기 좋았습니다. 저는 사실 제우스나 헤라 정도를 아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지식의 폭이 넓어지니 흥미롭기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책의 앞부분에 실린 지도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페르시아가 제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복잡한 공간이었다는 점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명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도를 함께 살펴보니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옛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여러 민족과 문화가 오간 땅의 기억이 보여서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지도라고 하는데, 익숙한 이름인 이란이나 유프라테스강(사회시간에 문명의 발상지로 열심히 외웠던 곳이네요), 카스피해 같은 경우는 반가웠습니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대립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을 단순히 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나눌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선한 왕도 자만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위대한 영웅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신들은 초월적인 존재로 느껴지지만, 왕과 영웅들의 모습은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신들도 꽤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이런 차이점이 좀 재미있었습니다.

페레이둔왕의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는 백성을 괴롭히던 뱀왕 자하크를 물리치고 존경받는 왕이 되지만, 그의 가문에서 모든 갈등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왕위를 둘러싼 질투와 형제 사이의 다툼, 복수와 죽음이 계속 이어집니다. 악한 왕을 몰아냈으니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비극이 시작된다는 점이 뜻밖이었습니다. 해피엔딩이 제일인데,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신화가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로 세상이 잠시 나아질 수는 있지만, 인간의 욕심과 질투까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웅이 승리한 뒤에도 삶은 계속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선택과 책임이 생깁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주 오래된 신화 속 사건임에도 오늘날의 인간관계나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신화도 인간이다? 뭐 그런 걸까요?
로스탐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거 같습니다. 로스탐은 강한 힘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영웅이지만, 언제나 승리만 누리는 인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 사람이기에 더 큰 책임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선택과 운명으로 인해 깊은 비극을 경험합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은 영웅의 위대함보다 인간의 무지와 뒤늦은 후회가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결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구성에서도 알수 있듯이 로스탐의 무용담뿐 아니라 사랑과 가족, 비극적인 부자 관계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상당히 흔히 볼 수 있지만 보장된 재미의, 그런 내용이네요.

맺음말에서 로스탐 이후의 신화가 사랑 이야기와 인간적인 감정의 세계로 확장된다는 설명도 흥미로웠습니다. 영웅의 싸움만이 신화의 전부가 아니라 사랑과 질투, 행복과 불행 역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중요한 이야기라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왕자와 공주, 왕과 왕비의 사랑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고, 운명에 따라 쉽게 비극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러니까 신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전승되어 왔겠지요? 신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등장하는 인간적인 감정. 동질감을 느끼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막장드라마가 괜히 인기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페르시아 신화에서 재미있게 느꼈던 점 중에 하나는 인간의 힘으로 피하기 어려운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영웅이라도 모든 일을 뜻대로 만들 수 없고,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도 아닙니다. 영광과 행복은 영원하지 않으며, 삶은 번영과 몰락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비극성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페르시아 신화를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만듭니다. 뭐 부정적인 것들이 뇌리에 더 잘 박혀있는 것이긴 하지요.
그리스로마 신화는 워낙 이름들이 익숙해서 쉽게 볼 수 있다고 치면, 페르시아 신화는 낯선 이름이 연이어 등장해 인물 관계를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왕들의 계보와 여러 지역의 이름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각 장이 비교적 짧은 이야기로 나뉘어 있고, 지도와 인물 설명이 함께 제시되어 있어 조금씩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학술서가 아닌 재미로 보는 신화이기에, 접근하기에도 쉬울 듯 합니다. 이름들이 상당히 꼬부랑꼬부랑스러운데, 이질적인 문화이니 당연한 듯 합니다. 철수나 영희로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페르시아 신화, 제가 알고 있던 신화의 범위를 많이 넓혀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나라의 옛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중동 지방 사람들 말이지요. 위대한 힘을 지니고도 운명 앞에서 흔들리는 영웅과 사랑과 욕망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왕들의 이야기는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화로 계속해서 내려오는 것이겠지요?
익숙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화의 세계를 만나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이 제격입니다. 화려한 모험과 신비로운 존재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사랑, 가족과 운명에 관한 깊은 이야기도 함께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떄문이죠.. 이 책을 통해 저는 신화의 진정한 매력이 비현실적인 사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낯선 이야기 속에서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나타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