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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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네이버북유럽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무서운 것이 참 많았고 학교에서만 해도 다양한 괴담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귀신이나 요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히려 불투명한 노후, 자식들의 미래, 혹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건강의 적신호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더 옥죄어 오곤 합니다. 그래서인 한동안 소설, 그중에서도 '공포 소설'은 손이 잘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도 벅찬데 굳이 가상의 공포까지 소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커피 괴담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 책은 자극적인 비명이나 선혈이 낭자한 장면으로 독자를 겁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향기 속에,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 속에 아주 얇고 예리한 칼날 같은 공포를 숨겨놓았습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작가의 관록이 느껴지는 이 작품집을 읽으며, 오랜만에 기분 좋은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이 기묘한 책과 함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최근 출퇴근 시간에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읽고 나서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려고 했는데, 마침 #북유럽카페 에서 서평을 진행했기에 타이밍 좋게 이 책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의 설정은 저와 같은 나이대의 남성들의 등장인물에게서 오는 묘한 대리만족과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네 명의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프로듀서, 작곡가, 의사, 그리고 작가. 겉보기엔 번듯한 직함을 가진 이들이지만, 속내는 다들 비슷합니다. 업무의 중압감,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인생의 허무함 같은 것들이지요.

이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습니다. 교토, 요코하마, 도쿄 등지의 유서 깊은 카페를 찾아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 모임의 유일한 규칙입니다.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골프를 치며 비즈니스를 논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이야기'를 위해 모인다는 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습니다. 사회적 체면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어린 시절처럼 둘러앉아 시시콜콜하면서도 으스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시간을 허락하는 삶의 여유가 있다는 것.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판타지 같은 요소는 괴담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네 남자의 우아한 모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맞춰서 어떻게 모이는지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작가가 그려내는 공포의 방식은 '잠식'입니다. 쾅 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잉크가 물에 번지듯 서서히 일상을 물들입니다. 책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여행지에서 묵게 된 낡은 호텔 방의 벽지 얼룩이 사람 얼굴처럼 보인다거나, 산책길에 마주친 기묘한 분위기의 집, 혹은 오래전 헤어진 친구에 대한 찝찝한 기억 같은 것들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평범한 소재를 비틀어, 독자로 하여금 "어? 나도 이런 적 있는데?" 하는 기시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특히 인간의 인지 본능인 '파레이돌리아'를 공포의 도구로 사용하는 대목은 탁월합니다. 점 세 개만 찍혀 있어도 사람의 얼굴로 인식하려는 뇌의 본능. 작가는 묻습니다. "우리가 보는 그 얼굴이 정말 착각일까? 만약 착각이 아니라면?" 이 질문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무심코 천장의 무늬나 옷장의 그림자를 유심히 살피게 만들더군요. 혹시? 혹시? 하면서 이미 무뎌진 공포의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많이 했었습니다.



말그대로 계속해서 진행되는 중년 남성들의 커피 괴담들입니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거나, 혹은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화자의 '과거 기억'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때 내가 겪은 일이 정말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은 이야기 전반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작가는 기억의 불완전성을 파고듭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믿고 싶은 대로 과거를 재구성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의 틈새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끼어든다면 어떨까요? 작가는 그런 점을 잘 이용합니다. 그 아련한 향수를 순식간에 섬뜩한 악몽으로 바꿔놓는 솜씨를 발휘합니다.

젊은 시절의 여행담, 잊고 지냈던 동창생 이야기 등 중년 독자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을 법한 소재들이 괴담으로 바뀔 때, 그 공포의 무게감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지나온 삶의 궤적 어딘가에 나 또한 이런 '구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자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 그때? 설마? 하면서 되짚어보게 되지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실화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것이 자신이 겪거나 들은 이야기임을 암시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가 캐릭터 또한 온다 리쿠 본인을 투영한 듯 보입니다.

구체적인 지명과 실존하는 카페 이름들이 거론될 때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현실 세계로 침범해 들어옵니다. '혹시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카페에서도?'라는 상상은 독서의 몰입도를 극대화합니다. 픽션이라는 안전장치를 살짝 풀어헤침으로써, 독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작가의 노련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실제 가게라는 점이 마치 영화에서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20대 때에는 모든 것에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세상에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사주라던지 점집에 기웃거리게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을 『커피 괴담』은 바로 그 '설명되지 않는 영역'을 우아하게 다루면서 저에게 파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더운 여름날의 납량특집으로 읽기 보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나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에 보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곁들인다면 더욱 몰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상의 권태가 느껴지거나, 머리 식힐 무언가가 필요하신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만 혼자 있는 밤에 읽으실 때는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익숙했던 집안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니까요. 파레이돌리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온다 리쿠가 건넨 이 씁쓸하고도 기묘한 커피 한 잔이, 팍팍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휴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커피가 어떻게 느껴질지는 읽는 분들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요.

이 서평은 북유럽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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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도 나를 믿는 연습 - 에머슨 자기 신뢰 필사책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지선 편역 / 이너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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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리뷰어스클럽 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2026년의 새해가 밝은지 어느새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안고 살아갑니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이런저런 책임을 다하다 보면 때로는 나 자신의 목소리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이 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랄프 월도 에머슨의 문장을 엮은 #흔들려도나를믿는연습 입니다.

본격적으로 서평을 하기 전에 에머슨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사상가로, 당시의 권위적인 종교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직관과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초월주의 운동의 선구자라고 합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으나, 교회의 형식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사임한 뒤,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정착하여 집필과 강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사상은 니체, 오바마 전 대통령, 마이클 잭슨 등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리더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 에세이 《자기 신뢰(Self-Reliance)》는 "너 자신의 생각을 믿어라.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도 옳다고 믿어라"라고 역설하며, 외부의 소음이 아닌 내면의 신성한 힘을 믿을 것을 강조합니다. 이 책은 그 방대한 에머슨의 철학 중에서도 현대인, 특히 중심을 잡고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수만을 뽑아 필사할 수 있도록 엮은 책입니다. 저도 필사를 간단한 명언 위주로 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상당히 긴 내용들을 필사해 보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기가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필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읽는 독서가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과정이라면, 손으로 쓰는 독서는 사유를 확장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디지털 시대이니만큼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드는 맛이 더 크기도 하지요. 이 책의 필사를 계속하다가 만년필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책의 구성은 간결합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에머슨의 원문과 번역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독자가 직접 따라 쓸 수 있는 여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펜을 들어 첫 문장을 따라 써 보았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손끝에서 전해집니다. 글자의 획을 긋는 속도에 맞춰 제 호흡도 차분해짐을 느낍니다. "부러움은 무지다. 모방은 자살이다."라는 에머슨의 유명한 문장을 눈으로만 훑었을 때는 그저 좋은 명언이라 생각했지만,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적다 보니 그 문장이 지닌 서늘한 경고와 뜨거운 응원이 동시에 가슴에 박혔습니다. 필사는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저자의 영혼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좀 과장일까요? 하지만 키보드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자기 신뢰'입니다. 에머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왜 당신 자신이 되려 하지 않는가?" 우리는 종종 타인의 성취를 부러워하고, 유행을 쫓느라 바쁩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잃고 정해진 답만을 찾으려 할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정작 저 자신도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라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에머슨은 말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의 독립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을 필사하며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아직 나만의 중심을 잡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외부의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나의 본능과 직관을 믿고 나아가라고 등을 떠밉니다. 그것이 비록 거친 길일지라도,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좋은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조언을 계속해서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 상당히 와닿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니 신뢰가 가더라구요. 물론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있지만, 업적면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날림글씨로 부끄럽지만 필사를 해보았습니다. 핑계 댈 거리는 많지만 하루 10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니만큼,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몰입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악필이지만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씨가 아닙니다. 삐뚤빼뚤하더라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눌러 쓰며,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겠습니다.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는 명상이자 치유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조용한 밤에 필사를 하며 입으로 낭독하며 그 문장의 울림을 귀로 다시 듣겠습니다. 에머슨의 지혜가 제 무의식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일상에서 흔들리는 순간마다 저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게 하겠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결심을 이렇게 적어봅니다.


이 책은 한 번에 읽어치우는 책이 아닙니다. 곁에 두고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혹은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펼쳐서 처방전처럼 활용해야 하는 책입니다.

저처럼 30대, 40대를 지나며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계신 분들, 혹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습니다. 좋아하는 펜 한 자루와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에머슨은 "자기 자신을 믿어라. 그 철현에 모든 마음이 진동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펜 끝으로 저를 믿는 연습을 시작합니다. 비록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까지 뽑히지 않는 깊은 나무처럼 제 삶을 사랑하고 신뢰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이 고요하고 충만한 필사의 여정에 동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시작입니다. 모두들 2026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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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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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도 나를 믿는 연습 - 에머슨 자기 신뢰 필사책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지선 편역 / 이너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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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을 더욱 발전된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필사의 힘을 직접 느껴보니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생각만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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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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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처음에는 조금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버리다니.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요. 목차에서도 상당히 공격적인 차례가 나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직관적인(?) 목차였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두 개가 있었는데, 좀비시대부터 주는 어감이 남다릅니다. 아무래도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짐작이 가긴 긴했는데요, 예술적인 내용과 관련됨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도 보입니다.

목차를 보면 이렇게 똥, 흙, 은, 금수저로 구분 짓는 차례를 볼 수 있습니다. 계급으로 나뉜 서울의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그런 단순하지만 많은 것을 나타내주는 목차였습니다. 산언덕에서 굽어보는 서울은 욕망의 용광로이자, 동시에 거대한 분리수거장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샴페인을 터뜨리지만, 누군가는 그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악을 씁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똥수저,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분류는 이 소설이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계급론에 대한 신랄한 고발장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책 표지는 서울의 고층 아파트들을 희미하게 표현한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결국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울,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마저 '수저의 색깔'로 난도질하는 우리 사회의 끔찍한 자화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소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똥수저 동네'의 풍경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곳은 가난이 불편함을 넘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공간입니다. 책 속의 묘사는 거칠고 투박합니다. 대화 자체를 그대로 표현하기에도 좀 불편합니다. 오가는 대화 속에는 애정이나 배려 대신, 오직 '돈'을 향한 원초적인 갈망과 증오만이 들끓습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라고 교과서는 가르치지만, 이 '똥수저 동네'에서 가난은 곧 죄악이자 형벌입니다. 돈 몇 푼 때문에 가족이 서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붓고, 최소한의 윤리마저 찢겨 나가는 이곳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려줍니다. 작가는 이곳을 미화하거나 동정의 시선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폭력성을 전시함으로써, 극한의 빈곤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보여줍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하지만, 사실 그 혐오의 진짜 대상은 자신들을 이 진창에 가둬버린 세상일 것입니다. 솔직히 보면서 좀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이것이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읽어나가고 나니, 다음 동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계급의 사다리를 한 칸 힘겹게 올라 마주한 '흙수저 동네'의 이야기는 더욱 역설적이고 비극적입니다. 주인공은 화마가 모든 것을 집어삼켜 빈털터리가 된 순간을 회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설 속 화자는 "세상은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그것이 외려 축복이었다니!"라고 외칩니다.

집이 불타고 거리로 나앉게 된 딱한 처지가 언론에 보도되자, 사람들의 온정이 쏟아지고 큰 액수의 성금이 모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 사회의 위선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는 빈곤층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세상이, 극적인 비극이 터지고 나서야 마치 구경거리를 소비하듯 동정을 베푸는 행태. 주인공이 겪은 비극이 '콘텐츠'가 되어야만 비로소 생존을 허락받는 이 기가 막힌 아이러니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불행마저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흙수저의 삶은 자신의 불행을 전시해야만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비루한 연극 무대와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위선도 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말입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마주하게 된 '은수저 동네'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아파트 동네는 주택가 바로 옆에 있다. 도로를 두고 두 동네가 나뉘어져 있는데..."라고 서술하며,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좁혀질 수 없는 두 세계를 대비시킵니다. 달동네에서 내려다보면 훤히 보이는 그곳은, 어릴 때는 그저 풍경이었으나 학교라는 사회화 기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넘을 수 없는 '성벽'이 됩니다. 이런 사진을 남미의 빈부 격차를 공부하는 책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서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망을 가장 빠르게 습득합니다. 도로 하나를 건너 등교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저 아파트 단지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학습합니다. "내가 사는 달동네 하나만으로도 벅찼고..."라는 독백처럼, 가난한 아이들에게 은수저 동네는 동경의 대상이기에 앞서,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확인사살하는 잔인한 거울입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사는 곳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는 교실. 은수저 동네의 존재는 흙수저들에게 '노력하면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절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배제와 차별의 메시지를 뿌리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이 존재하는 걸까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금수저 동네'는 이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딴 세상'입니다. 주인공이 묘사하는 고급 빌라촌은 진입로의 경관부터 다릅니다. 정제된 느낌, 분위기 있는 표지판, 뛰어난 조경.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지만, 이곳은 공기조차 다른 것처럼 묘사됩니다. 우리는 이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다. 실존하는 곳이니까요.

반 친구 중에 이곳에 사는 아이는 "대궐 같은 으리으리한 집"에 살며, 방과 후엔 기사가 대기하고, 명품 가방과 최신형 아이폰을 씁니다. 이곳은 단순히 돈이 많은 곳을 넘어, 서민들의 삶과는 철저히 격리된 '성역'입니다. 똥수저 동네에서 돈 때문에 서로를 물어뜯고, 흙수저 동네에서 불행을 팔아 동정을 구걸할 때, 금수저 동네는 고고하게 그 모든 아우성에서 비켜나 있습니다. 본 적조차 없기에 실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묘사를 통해서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 자본이 만들어낸 계급이 이제는 물리적인 공간마저 완벽하게 분리해 냈음을 고발합니다.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끊어진 지 오래이며, 그들만의 성벽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도 그런 구조가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소설속에서 똥수저에서 금수저로 이어지는 동네들을 보고 나니, 최의진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양극화가 재난처럼 삶을 삼키더라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고요하고 끔찍한 풍경"이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작가는 이 도시에서 주인공을 '고아'로, '쓰레기'로, '달동네 사는 애'로 호명되게 함으로써,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계급으로 분류하게 만드는 서울의 의 야만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주인공이 결국 선택한 것은 이 견고한 수저 계급론의 피라미드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똥수저의 세계에서 서로를 혐오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즐기거나, 혹은 닿을 수 없는 부를 숭배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이 미친 게임에서 나가고자 합니다.

서울, 서울, 서울. 입버릇처럼 서울에 가서 살고 싶어. 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속담마저 존재하는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화려한 빌딩 숲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똥수저'와 '흙수저'들이 신음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이 잔인한 분류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아니면 그저 남들이 쥐여준 수저의 색깔을 바꾸기 위해 당신의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입니다.

작가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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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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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론이 어떤 것인지를 정말 날 것으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빨려들어가는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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