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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평점 :
이 서평은 #리뷰어스클럽 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처음에는 조금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버리다니.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요. 목차에서도 상당히 공격적인 차례가 나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직관적인(?) 목차였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두 개가 있었는데, 좀비시대부터 주는 어감이 남다릅니다. 아무래도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짐작이 가긴 긴했는데요, 예술적인 내용과 관련됨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도 보입니다.

목차를 보면 이렇게 똥, 흙, 은, 금수저로 구분 짓는 차례를 볼 수 있습니다. 계급으로 나뉜 서울의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그런 단순하지만 많은 것을 나타내주는 목차였습니다. 산언덕에서 굽어보는 서울은 욕망의 용광로이자, 동시에 거대한 분리수거장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샴페인을 터뜨리지만, 누군가는 그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악을 씁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똥수저,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분류는 이 소설이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계급론에 대한 신랄한 고발장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책 표지는 서울의 고층 아파트들을 희미하게 표현한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결국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울,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마저 '수저의 색깔'로 난도질하는 우리 사회의 끔찍한 자화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소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똥수저 동네'의 풍경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곳은 가난이 불편함을 넘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공간입니다. 책 속의 묘사는 거칠고 투박합니다. 대화 자체를 그대로 표현하기에도 좀 불편합니다. 오가는 대화 속에는 애정이나 배려 대신, 오직 '돈'을 향한 원초적인 갈망과 증오만이 들끓습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라고 교과서는 가르치지만, 이 '똥수저 동네'에서 가난은 곧 죄악이자 형벌입니다. 돈 몇 푼 때문에 가족이 서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붓고, 최소한의 윤리마저 찢겨 나가는 이곳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려줍니다. 작가는 이곳을 미화하거나 동정의 시선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폭력성을 전시함으로써, 극한의 빈곤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보여줍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하지만, 사실 그 혐오의 진짜 대상은 자신들을 이 진창에 가둬버린 세상일 것입니다. 솔직히 보면서 좀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이것이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읽어나가고 나니, 다음 동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계급의 사다리를 한 칸 힘겹게 올라 마주한 '흙수저 동네'의 이야기는 더욱 역설적이고 비극적입니다. 주인공은 화마가 모든 것을 집어삼켜 빈털터리가 된 순간을 회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설 속 화자는 "세상은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그것이 외려 축복이었다니!"라고 외칩니다.
집이 불타고 거리로 나앉게 된 딱한 처지가 언론에 보도되자, 사람들의 온정이 쏟아지고 큰 액수의 성금이 모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 사회의 위선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는 빈곤층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세상이, 극적인 비극이 터지고 나서야 마치 구경거리를 소비하듯 동정을 베푸는 행태. 주인공이 겪은 비극이 '콘텐츠'가 되어야만 비로소 생존을 허락받는 이 기가 막힌 아이러니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불행마저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흙수저의 삶은 자신의 불행을 전시해야만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비루한 연극 무대와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위선도 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말입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마주하게 된 '은수저 동네'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아파트 동네는 주택가 바로 옆에 있다. 도로를 두고 두 동네가 나뉘어져 있는데..."라고 서술하며,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좁혀질 수 없는 두 세계를 대비시킵니다. 달동네에서 내려다보면 훤히 보이는 그곳은, 어릴 때는 그저 풍경이었으나 학교라는 사회화 기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넘을 수 없는 '성벽'이 됩니다. 이런 사진을 남미의 빈부 격차를 공부하는 책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서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망을 가장 빠르게 습득합니다. 도로 하나를 건너 등교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저 아파트 단지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학습합니다. "내가 사는 달동네 하나만으로도 벅찼고..."라는 독백처럼, 가난한 아이들에게 은수저 동네는 동경의 대상이기에 앞서,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확인사살하는 잔인한 거울입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사는 곳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는 교실. 은수저 동네의 존재는 흙수저들에게 '노력하면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절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배제와 차별의 메시지를 뿌리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이 존재하는 걸까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금수저 동네'는 이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딴 세상'입니다. 주인공이 묘사하는 고급 빌라촌은 진입로의 경관부터 다릅니다. 정제된 느낌, 분위기 있는 표지판, 뛰어난 조경.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지만, 이곳은 공기조차 다른 것처럼 묘사됩니다. 우리는 이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다. 실존하는 곳이니까요.
반 친구 중에 이곳에 사는 아이는 "대궐 같은 으리으리한 집"에 살며, 방과 후엔 기사가 대기하고, 명품 가방과 최신형 아이폰을 씁니다. 이곳은 단순히 돈이 많은 곳을 넘어, 서민들의 삶과는 철저히 격리된 '성역'입니다. 똥수저 동네에서 돈 때문에 서로를 물어뜯고, 흙수저 동네에서 불행을 팔아 동정을 구걸할 때, 금수저 동네는 고고하게 그 모든 아우성에서 비켜나 있습니다. 본 적조차 없기에 실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묘사를 통해서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 자본이 만들어낸 계급이 이제는 물리적인 공간마저 완벽하게 분리해 냈음을 고발합니다.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끊어진 지 오래이며, 그들만의 성벽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도 그런 구조가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소설속에서 똥수저에서 금수저로 이어지는 동네들을 보고 나니, 최의진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양극화가 재난처럼 삶을 삼키더라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고요하고 끔찍한 풍경"이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작가는 이 도시에서 주인공을 '고아'로, '쓰레기'로, '달동네 사는 애'로 호명되게 함으로써,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계급으로 분류하게 만드는 서울의 의 야만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주인공이 결국 선택한 것은 이 견고한 수저 계급론의 피라미드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똥수저의 세계에서 서로를 혐오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즐기거나, 혹은 닿을 수 없는 부를 숭배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이 미친 게임에서 나가고자 합니다.
서울, 서울, 서울. 입버릇처럼 서울에 가서 살고 싶어. 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속담마저 존재하는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화려한 빌딩 숲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똥수저'와 '흙수저'들이 신음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이 잔인한 분류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아니면 그저 남들이 쥐여준 수저의 색깔을 바꾸기 위해 당신의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입니다.
작가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