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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ㅣ 스토리콜렉터 37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아, 요즘은 정말 잔혹동화가 대세인건가요? 잔혹동화와 얽힌 책을 읽은 것이 이 책으로 벌써 세 권 째가 되네요. 북유럽 하면 요 네스뵈가 떠오르듯이 독일 하면 일단 타우누스시리즈의 넬레 노이하우스가 떠오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독일 작가입니다. 타우누스 시리즈 이후 독일 최대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하니 독일에선 가히 그 인기가 실감되는 바입니다. 정말 사소한 영감에서 시작해 멋진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책 역시 그렇게 나온것 같아요. 작가는 제약회사에 근무를 했는데 그 회사의 사장이 "정신병자가 피해자의 손가락을 잘라서 숨기고, 다른 사람한테 그걸 찾아내라고 하는 얘기를 한번 써보는 건 어때요?”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어 쓴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싹을 타고난 사람은 역시 뭔가 다르긴 달라요. 저 한문장으로 이렇게 대단한 장편소설이 탄생했으니 말이죠.
정신과의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은 세살짜리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위해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를 직접 그리고 썼다고 하는데요. 그것이 벌써 150여년 전이긴 하지만 어쩜 자기 아들에게 읽힐 책을 요로코롬 잔인하게 썼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필독서로 읽고 있는 우리나라 전래동화도 그렇고 세계명작동화도 그렇고, 이야기 하나하나 다른방향으로 생각해서 읽어보면 어쩜 하나같이 다 잔혹하긴 하더라구요. 동화의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심지어 소녀소녀한 공주동화들 마저도 잔혹하기 이를데없어보였어요.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어쨌든 백설공주도 그렇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그렇고, 인어공주도 그렇고 라푼첼도 그렇고,..그런 동화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잔혹함을 영화로 만든 이야기도 있었죠. 스노우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나 말레피센트 같은.
이 이야기는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를 모티프로 한 것이 아니구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범인이 동화속에 나오는 방법대로 연쇄살인을 한다는겁니다. 여기서 동화의 내용을 잠시 보자면, 개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개를 놀리던 아이는 개에게 물려 버리고, 불장난을 하던 아이는 불에 홀랑타 재만 남고, 흑인을 놀리던 아이는 새카만 잉크병에 빠져 버리고, 토끼사냥을 나갔던 사냥꾼은 잠든사이 토끼에게 총을 뺏겨 토끼가 쏜 총을 피해 우물에 빠져 죽고, 손가락을 계속 빠는 아이는 재단사에게 양쪽 엄지손가락이 싹뚝 잘려버리고...이러한 내용입니다.
프로파일러 지망생인 여형사 자비네에게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엄마와 이혼 후 혼자살던 아버지에게 48시간전에 엄마가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자비네는 망연자실합니다. 왜 진작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알리는 순간 엄마를 죽일거라는 범인의 협박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아버지.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비네는 그 사건의 수사에서도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곧 기도로 삽입된 호수에 2리터의 잉크를 들이부어 잉크에 질식사한 엄마의 주검이 성당의 오르간에 한쪽발이 묶인채 발견됩니다. 그리고 전직 프로파일러였으며 현재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헬렌에게 어느날 잘린 손가락 하나가 배달이 됩니다. 범인은 자신이 누구를 납치했으며 납치한 이유를 48시간 이내에 말하지 않으면 납치한 사람을 죽일거라는 협박전화를 해옵니다. 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되는 악랄한 납치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괴팍한 천재 프로파일러 슈나이더가 방문을 하고 슈나이더의 요청으로 자비네는 슈나이더와 함께 범인의 행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정말 동기는 단순한것 같은데, 물론 범인의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이 힘든 어린시절이었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이 사이코패스적인 연쇄살인을 계획했겠지만요. 어쨌든 그 단순한 동기에 비해 꽤나 탄탄한 전개가 돋보입니다. 독일에선 고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화를 바탕에 깐 내용도 참신하구요. 앞서 읽었던, 잔혹동화와 얽힌 책들이 각각 특색이 있는것 같아요. "푸른수염의 다섯번 째 아내"는 "푸른수염"이라는 동화에 뼈와 살을 더 붙여 각색을 했구요, "피처럼 붉다"는 백설공주를 테마로 하여 그 분위기만 비슷하게 가져간것 같구요, 이 책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를 직접 언급하며 그 내용을 모방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죠. 세 권 다 방법은 달리 했지만 각자 나름의 매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장르소설의 히로인은 뭐니뭐니 해도 형사죠! 해리홀레나 해리보슈, 잭리처나 링컨라임 같은. 그래서 이 형사들은 시리즈가 줄줄이 나오잖아요.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개성이 강한 형사는 등장하지 않지만(자비네가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괴팍한 프로파일러 슈나이더가 꽤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슈나이더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있다고 하네요! 슈나이더가 등장하는 시리즈, 꼭 읽어보고 싶은데 하루빨리 번역본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네요.
개에게 물려 죽었다! 양철통에 담겨 불에 타 죽었다! 소금 박힌 프레첼을 먹고 잉크에 잠겨 익사했다! 갑자기 자비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두피에 열이 나면서 근질거렸다. '끔찍한 어린 시절’이라는 대목에서 자비네는 갑자기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책이 생각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죽어라 싫어했던 책이다. 그 책에서 아이들이 불에 타 죽거나 개에게 물려 죽기 때문이었다.(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