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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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두꺼운 책을 좋아하지만 <열세 번째 이야기>라는 600여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 망설이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책태기인 요즘 약간 고전틱한 이 책을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잠깐 스쳐지나갔죠. 하지만 책표지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리고 <모던앤클래식>은 제가 워낙 좋아하는 라인이기도 해서 펼쳐 들었는데 왠걸,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끌더니 그 느낌 그대로 쭉 끝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정말 쉼없이 한번에 읽고 싶었는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장문의 편지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 전개가 됩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책관리"를 맡고 있는 마가렛.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전기를 쓰는 일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어느날 한통의 편지가 배달이 됩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아닌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금세기의 디킨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작가라 불리는 비다윈터라는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비다윈터는 수백번의 인터뷰를 하면서 한번도 진실을 말한적이 없는 작가인데 마가렛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진실을 말해줄터이니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을 해온거죠. 호기심이 발동한 마가렛은 비다윈터의 저택을 찾아갑니다. 엔젤필드가문의 3대에 걸친 전설같은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하는 비다윈터. 과연 마가렛은 그 이야기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조지와 마틸드,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찰리와 이사벨. 그리고 이사벨의 쌍둥이 딸들인 에덜린과 에멀린. 이렇게 3대에 걸친 엔젤필드가의 이야기는 뭔가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끝까지 책을 읽다보면 흔치않은, 아니, 쉽게 허용할 수 없는 사랑이 곳곳에 담겨있는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순간순간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는 엔젤필드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놓을수가 없었습니다. 유령의 존재가 드러났을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초록색 눈과 적갈색 머리카락은 엔젤필드가의 사람이라는 뚜렷한 증거였죠. 그런 특징이 유령에게서도 보여졌다면...(이것은 스포)

"나에겐 내 과거에 연막을 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네. 그리고 이제 그 이유들은, 분명히 말하건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말하는 비다윈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하나 밝혀지는 그녀의 과거와 그녀가 저질렀던 일들, 그리고 그녀가 불길속에서 손목을 잡아끌어 살려냈던 한 소녀는 과연 그녀가 사랑했던 그 소녀였는지.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발단-전개-결말-발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지막의 발단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의미하는 걸까요. 묘한 숙제를 남기는 결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삶,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나의 모든 기억, 꿈, 환상, 내가 읽은 모든 것들. 그 모든 것이 그 퇴비더미에 던져졌다네. 시간이 흘러 반죽이 발효했고 결국엔 검고 비옥한 거름이 된 거야. 때때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그걸 그 거름 위에 심어놓고 기다리지. 나의 생각은, 한때는 생명이 있었던 그 검은 퇴비로부터 양분을 먹고 자라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되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 그러다가 어느 화창한 날, 난 하나의 이야기, 소설을 갖게 되는 거야.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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