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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완전 유쾌, 상쾌, 통쾌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요즘같이 시국이 어수선하고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을땐 내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할것 같지만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는 요즘입니다. 그 와중에 이런 책을 읽으니 뭔가 통쾌하면서도 내가 만약 티나였더라도 전혀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것 같았습니다. 최근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진짜 태어날때부터 쭉~, 어쩌면 죽을때까지 평생 흙수저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공감할 것 같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문이 높은것도 사실이고 그문을 뚫고 들어가기란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문이 높은만큼 등록금 또한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기만 하죠.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평균이 미국에 이어 세계2위로 높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에 반해 미국은 상대적으로 등록금 부담이 낮은 국공립 대학의 비율이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그렇게 따졌을때 우리나라의 등록금이 사실상 세계 1위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아이들이 등록금을 벌어야 한답시고 이상한 알바를 하러 다니는걸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고생이 아니기에 더욱 한숨이 나오는 것이지요.
오늘 읽은 <도둑비서들>은 높은 대학 등록금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 중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남의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부분을 아주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려나갔습니다. 티나는 굴지의 미디어 회사 타이탄의 오너인 억만장자 로버트의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로버트의 부탁으로 비행기티켓을 예매하다 자신의 카드로 결재를 하게 되었고 곧 그 결재는 취소가 되었죠. 그러나 몇일 후 티나에게 2만달러라는 돈이 환급금으로 들어온것입니다. 나름 원칙주의자인 티나는 그 돈을 몇일간 가지고 있었지만 회사로부터 잘못 지급되었다는 연락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늘 자신을 옥죄던 학자금 대출액과 금액이 일치하는 우연까지! 눈 딱감고 학자금 대출금을 그 돈으로 갚아버린 티나. 그런 그녀에게 경비 처리부서의 비서로 일하는 에밀리가 마수(?)의 손길을 뻗칩니다. 티나가 써버린 눈먼돈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협박하며 자신의 학자금 대출금 7만달러도 갚아달라고 합니다. 티나는 에밀리의 7만달러를 갚아주기 위해 로버트의 경비처리내역을 위조하기에 이릅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회계팀장 마지의 협박까지 더해져 티나가 갚아야 할 대출금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옛말이 있죠. 한푼 한푼이 커져서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티나 일행들. 그녀들은 처음엔 티나를 협박했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동업자(?)가 되죠. 자신들이 모시는 상사들의 비인간적인 행동들과 상위 1%가 되기위해, 또는 유지하기 위해 하고 있는 비합법적인 행태들을 보며 자신들이 결코 나쁜짓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녀들의 생각에 나 역시 동참하고 싶어지는건 뭘까요. 후반부에 이어지는 그녀들의 통쾌한 반란은 이 사회를 제대로 한방 먹인것 같아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는 미국의 현실을 꼬집고 있지만 이건 분명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하기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회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돈 걱정없이 마음편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싶지만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온 여자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다 똑같은 사연이었고 그 점에서는 에밀리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학자금 대출은 태산 같은데 봉급이라고 받는 돈은 쥐꼬리만 하니까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뭐, ‘절망’이라는 표현은 과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나마 비서라도 되니까 광부나 원자력발전소 수위보다는 형편이 나았다. 그래도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