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문득, 언젠가 보았던 광고의 문구가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땐 엄마는 모르는 것이 없는 대단한 존재였고, 조금 더 크면 엄마는 많은걸 알지만 모든걸 다 알지는 못한다 생각하고,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엔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라며 반항을 시작하죠. 그리고 머리가 굵어지고 철이 들고 결혼까지 해서 자신이 엄마가 되어봐야지 엄마를 이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광고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둘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엄마가 그 자리에 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얻는 나이입니다. 이렇게 엄마란 존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든든한 버팀목이시지요. 그런 엄마의 존재가 흔들릴때, 나를 돌아봐 주지 않을때, 그리고 부재일때...얼마나 휑한 느낌일까...상상도 하기 싫지만 언젠가는 그런날이 올테지요.




이 이야기 속에는 세명의 엄마가 등장합니다. 화자인 루의 엄마는 루의 동생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죽어 버리자 삶의 의미를 잃고 모든것을 놓아버립니다. 아직 어린 루를 돌보지도, 따뜻한 말을 건네지도, 한번 안아주지도 않습니다. 루가 넘어져 목이 찢어져라 울어대도 엄마는 멍하니 먼곳만 바라볼 뿐입니다. 그리고 루의 학교 친구인 뤼카의 엄마는 아빠와 결별을 한 후, 뤼카를 혼자 남기고 떠나버립니다. 뤼카를 위해 하는 일은 집과 돈을 쥐어주고 가끔 한번씩 집에 들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목처럼 길 위의 소녀인 노는 엄마가 성폭행을 당해 태어난 아이로, 엄마는 노를 자식 취급을 하지 않지요.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없는것 같은 이 세 아이들. 아이들의 자아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이럴진데 이 아이들이 제대로 자랐을리가 없지요. 책을 읽으며 세 아이들이 정말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나마 루는 그래도 가정이라는 틀 속에서 안전하게 자라고 있어 다행이긴 했습니다.




아이큐 160이 넘는 지적 조숙아인 루. 2년이나 월반을 하여 두살 많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습니다. 그리고 뤼카는 반항아 입니다.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아 시험은 백지를 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업 중에라도 그냥 나가 버리는 그런 아이. 그렇지만 학교의 모든 여학생들로부터 인기짱인 남자아이지요.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듯한 뤼카는 루에게만은 "꼬맹이"라며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이야기도 들어줍니다. 루는 발표과제의 주제로 "노숙자"를 택하게 되어 노숙자를 인터뷰하기위해 전철역을 찾아갑니다. 거기에서 만난 소녀 노. 서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두 소녀는 몇번의 만남을 통해 둘 사이에 뭔가 통하는 공통분모가 있다는걸 느낍니다. 루나 노나 뤼카까지, 이 세사람은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없는 외로운 아이들이라는 공통분모입니다.


 


세상과는 동 떨어진것 같은 세 아이들. 이 아이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고 상대로 부터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위로를 하고 위안을 받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이 됩니다. 노숙자로 살아온 노는 루의 도움으로 루의 집에서 지내면서 직장까지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은 어린 18세 소녀 노에게 세상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겠지요. 노숙자로 매일밤 잠잘 곳을 찾아 떠돌던 삶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혹독한 것은 그런 그녀를 보는 사회의 시선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가진 직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책속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가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루는 왠지 노가 너무 좋습니다. 노와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부족함 없이 행복해보이는 루이지만 그녀를 이해해주고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은 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를 루는 뤼카에게도 소개시켜 줍니다. 셋은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지내던 어느날, 노는 더이상 루의 집에 머물 수 없게 되었고 다시 길거리를 전전하기 싫었던 노는 뤼카의 집을 찾아갑니다.




책을 읽으며 루는 루대로, 노는 노대로, 또 뤼카는 뤼카대로 아직 어린 십대 소년 소녀들이 얼마나 안쓰럽게 느껴지던지요. 언젠가 몇일 집을 비웠던 적이 있었는데 나도 나대로 무지하게 허전했지만 집에 돌아갔을때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반기는 딸들을 보니 뭘 크게 해주진 않더라도 늘 아이들 곁에 든든한 버팀목처럼 그렇게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문장들은 극히 짧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붙인 문장들보다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문장이 짧은만큼 쉽게 잘 읽혔습니다. 그러나 쉽게 읽힌것에 비해 생각할 꺼리(?)는 참으로 많았던 책인것 같습니다. 성장소설이면서도 노숙자나 가정폭력, 어떻게 보면 아동학대일수도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짚어나간 참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증거가 부득이하게 있어야 한다면, 그게 바로 뭔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주위를 돌아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혼자서 말하거나 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려보기만 하면 된다. 지하철을 한 번 타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삶의 부작용들을, 어떤 지침서나 사용설명서에도 나와 있지 않는 부작용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것 또한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은 도처에 널려 있다고 생각했다. (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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