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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저는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의 정을 못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괴팍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참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저는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엄마한테는 좀 죄송하네요. 친정이나 시댁에 가면 아이들이 참 할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시댁의 할아버지는 묵묵하게 말씀이 없으신 반면,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친절(?)하세요. 아이들이 귀찮게 질문을 자꾸 던져도 정말 성의껏 말씀해 주시고 아이들이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손수 아이들 손을 잡고 가게에 가서 과자도 사주시거든요. 뭐 모든 할아버지들이 그렇긴 한가요?ㅋㅋ 그런 반면 저희 친정 아버지는 또 아이들을 많이 웃게 해 주십니다. 우리아버지가 그렇게 유머러스한 분이 아니신데 아이들만 오면 그렇게 변하시더라구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아이들이 좋은가봐요. 아무튼 이런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저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누구나 이 책을 보면 떠오르는 책이 있을것 같아요. 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오베라는 남자>인데요. 두 권 다 80세가 넘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들입니다. 저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만 읽어보았는데 할아버지가 주인공인데 어쩜 그렇게 재미난지! 정말 지루 할 틈 없이 책장이 훌훌 넘어가던데 말이죠. 이 책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도 역시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페르디낭은 괴팍하긴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것 같아요.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에 괴팍해서 이웃들과 어울리는것이 쉽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괴팍함에 부인과 딸 마저도 곁을 떠나고 할아버지 곁엔 애완견 데이지만 남아 있습니다. 페르디낭이 살게된 아파트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주 모여 게임도 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데이지와 둘이 살게된 할아버지는 같은 아파트의 이웃들과의 소통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아파트 관리인인 쉬아레부인은 원리원칙을 따지는 깐깐한 할머니인데 페르디낭은 그런 원리원칙을 따르려 하지않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쉬아레부인과 사이가 나빠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페르디낭의 하나뿐인 가족 데이지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건 데이지의 차가운 주검이었습니다. 세상을 잃은 것 같은 페르디낭. 그렇게 실의에 빠져있던 페르디낭에게 윗집 꼬마인 줄리엣이 찾아옵니다. 처음엔 귀찮게 구는 꼬마가 싫었는데 하루, 이틀 자꾸 찾아오는 꼬마가 이제는 기다려지는 페르디낭입니다. 줄리엣과 페르디낭은 좋은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평온한 생활도 잠시, 심장마비로 죽은 관리인 쉬아레부인의 살인용의자가 되어 페르디낭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모든 게 단순하다. 교활함이 없다. 속박이 없다. 애정을 미끼로 하는 협박 따위도 없다. 소소한 배려든 부드러운 말이든 찔끔찔끔 인색하게 굴 필요가 없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런 걸 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데이지가 어제 저녁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페르디낭은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데이지는 그가 사는 마지막 이유다. 그는 데이지를 기다릴 것이다. 어쨌든 여든두 살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본문중)
요즘은 혼자사는 노인들이 참 많습니다. 저희 시부모님 친정부모님들도 모두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두 분이서 오순도순 사시는 모습이 어떨때 보면 참 외로우시겠다 싶다가도 또 어떨때보면 두분이서 산책다니시고 시장구경 다니시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더라구요. 저희 엄마, 아버지께서도 두분이 사시는게 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두 분 중 어느 한분이 안계실땐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물론 페르디낭 할아버지가 사시는 아파트처럼 주변에 또래 노인분들이 많으시면 같이 재미있게 보내시겠지만 그렇지 않을땐 너무 외로우실것 같으니까요. 이 책은 오렐리 발로뉴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처녀작 같지 않은 노련한 전개와 작품의 짜임새가 참 탄탄한것 같습니다. 괴팍하고 고집불통이지만 여든의 나이임에도 옆집과 윗집 할머니에 대한 풋풋한 사랑이 느껴지는 귀여움도 발산하는 페르디낭 할아버지. 늙음에 대해,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한 비법은 죽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늙는다는 것은 남들이 죽는것 을 보는 것이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맞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본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