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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딸아이는 방학이 되면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긴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아이들은 하나, 둘 다른 모습이 되어 나타나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예쁘지 않던 아이가 환골탈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봐줄만한 얼굴이 되어 나타나면 한창 이쁘게 꾸미고 싶은 여리디 여린 중.고생의 여학생들은 질투아닌 질투를 하게되죠. 그 아이 앞에서는 너무 이쁘다, 너무 자연스럽게 잘됐네, 마네 하며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대지만 집에만 오면 뒷담화가 시작됩니다. 너무 인조인간 같다느니, 티가 많이 난다느니...속으로 픽 하고 웃지만 겉으론 아이의 말에 동조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딸아인 아직 자연미인? 아니, 자연인입니다. 그래도 엄마가 보기엔 미인이 맞습니다. 아무튼.ㅋㅋ
요즘 티비를 보면 한, 두해 활동을 쉬다 나온 연예인들은 뭐가 달라져도 달라져서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생활에 초 밀착 되어있는 성형수술이라는 한 방법이, 오늘 읽은 <못생긴 여자>라는 책 속의 주인공 레베카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하늘이 내린 선물이겠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수술로 이젠 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정형화 되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옷에도 기성복이 있듯이 말입니다. 레베카는 이야기 속에서 못생긴 여자로 등장을 하는데 앞부분을 읽을 땐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길래?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책을 읽다보니 흔히 말하는 그냥 못생긴 정도가 아닌, 아마도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돌연변이가 아닐까 생각이 되어지더라구요.
너무 못생겨서 세상밖으로 한 발짝도 나와 본 적이 없는 아이 레베카. 엄마조차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못생겼기로서니 엄마인데 왜 저러나 싶었지만 심각한 우울증으로 모든일에 의욕을 잃은 엄마입니다. 눈길을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거기에 있다는 생각조차 못한 거지요. 그러나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레베카는 늘 엄마의 눈에 띄고 싶어 하지만 또한 눈에 띄지 않으려 숨어 지내는 아이러니한 삶의 연속입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빠는 바쁘다는 핑계로 또 아이를 방치합니다. 이런 레베카에게 보모로 일하는 마달레나가 따뜻한 품을 내어줍니다. 그리고 음악을 공부했고 현재도 음악계에 종사하고 있는 에르미니아 고모로 인해 레베카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걸 알게되고 서서히 자신을 둘러싼 딱딱한 껍질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오려합니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가족의 비밀들. 그리고 엄마의 자살. 어린 레베카가 감당하기엔 힘들었을테지만 숨겨져 있던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엄마 역시 말 못할 큰 아픔을 품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절대 자신을 미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엄마의 아프고 답답했을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인생이란 세월이 흐르는 것도 무시하고 간직하기만 해야 하는 귀중품이 아니야. 삶은 우리 손안에 망가진 채로 되돌아오기 일쑤야. 그리고 그걸 고칠 수 있는 부속품이 항상 있는것도 아니고. 가끔은 그냥 부서진 채로 가지고 있어야 해. 어쩌면 없어진 걸 같이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삶이란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우리 뒤에도, 위에도, 우리 안에도 있는거야. 당신이 한쪽으로 물러서 있는다고 해서, 눈을 감는다고 해서, 주먹을 불끈 쥔다고 해서 삶을 멈출 수 있는 건 아니야. (197쪽)
이 작품은 이탈리아작가인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첫 소설이라고 합니다. 첫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호평과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잘생긴 사람도 많지만 못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가두고 사람들의 그림자 뒤로 숨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내가 이만큼이면 나보다 더 힘들고, 나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가 역시 그런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레베카는 괴물이라 불리울만큼 못생긴 얼굴을 갖고 있지만 남보다 월등한 능력 또한 갖고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그 능력을 최대한 믿고 다듬어 나간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각각 놓고 보면 너무나 크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만 서로 보듬고 위로하고 이해해 준다면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을것입니다. 레베카의 목소리가 마치 내 귀에 들리는 듯한 마지막 대화는 그래서 더 내 마음속에 울림으로 긴 여운을 남깁니다.
"난 불행하지 않아.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지. 나름 잘 지내. 그리고 그렇게 외롭지도 않아. 마달레나도 있고 데 렐리스 선생님도 있고, 일로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외롭다고 할 수는 없지. 그냥 그게 내 인생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