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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왜, 경찰소설 하면 다들 "사사키 조"를 얘기하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겠네요. 경찰소설은 얼마전 나가오카 히로키 작가의 "교장"을 읽은게 전부이긴 하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여 한참 오래전에 출간된 "경관의 피"라는 작품을 읽어야지 생각만 했었지요. 두 권짜리 책이 이번에 합본으로 아주 사랑스럽게 두툼한 두께의 책으로 나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친구중에 경찰이 한놈 있는데 아들이 셋이나 되요. 이 아이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 한번 물었던 적이 있어요. "네 아들도 경찰 시킬거야?"라고. 돌아온 대답은, 자신은 시키고 싶지 않지만 아이들이 원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라는 시시한 답변이긴 했지만 강하게 반대를 하진 않는다는 말이기에 셋중 한명은 그 길을 따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문득.
거의 일년전인가 유준상이 부패경찰역을 맡은 "표적"이라는 영화를 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유준상이 워낙 연기를 잘 해준 것도 있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을 다시 보게 되었죠. 그 영화를 보고나서 경찰인 그 친구에게 열변을 토했더니 자신도 그 영화를 봤는지, 너무 과장이 심하더라, 그런 소설같은 얘기에 속지마라, 경찰은 절대 그렇지 않다등등 한마디로 영화이지 실화가 아니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렇게 이야기는 끝나긴 했지만 왠지 씁쓸함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오늘 읽은 "경관의 피"는 경찰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경찰소설만이 아닌 삼대에 걸친 60년이라는 긴 시대를 반영한 시대소설 또는 역사소설임과 동시에 가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가족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안조 세이지와 그의 아들 안조 다미오, 그리고 아들의 아들인 안조 가즈야의 이야기가 삼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부인 안조 세이지의 이야기는 1948년 세계2차대전후 부흥기인 일본의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어 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어려웠던 시절 대대적으로 경찰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에 지원한 안조 세이지는 채용이 되어 경찰의 길에 들어섭니다. 훈련소에서 만난 세명의 친구는 그 후로도 세이지의 아들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끈질긴 인연을 쭉 이어가죠. 세이지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찰서장과 사복형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에 비해 소소하게 시골 주재소의 주재경관이 되고싶어했던 세이지. 덴노지 주재경관이 된 세이지는 그곳에서 두 건의 살인사건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어느날 밤, 덴노지 오층석탑이 불타는 방화사건 현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세이지의 시체는 방화사건 현장에서 이탈하여 발견이 되고, 그래서 그는 순직이 아닌 자살로 처리가 되고 말았죠.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다미오 역시 경찰이 됩니다. 다미오는 공안의 스파이가 되어 일을 하다 심한 정신적장애를 겪게되어 아버지가 근무한 덴노지 주재소로 돌아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주재경관으로 일을 합니다. 주재소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던중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조사를 시작하죠. 그 조사를 하던 중 인질강도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는 다미오. 세이지의 손자이자 다미오의 아들인 가즈야 역시 경찰이 되어 그들의 죽음의 열쇠를 풀고자 합니다.
삼대에 걸친 경관의 길. 그들에겐 정말 경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걸까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건의 진상을 대충 짐작을 하긴 했지만 각 인물들의 이야기마다 또다른 사건들과 얽혀있는 이야기들도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상당히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던것 같습니다. 미스터리의 장르를 가진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다지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적어 실망스러울수도 있겠지만 경찰이야기, 시대적인 상황, 그리고 삼대에 걸친 가족이야기가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책 [경관의 피]. 오랫만에 벽돌같이 두툼한 책을 끝내니 뿌듯합니다. 이 책은 경찰인 친구에게 선물해야 겠습니다.
"경관이 하는 일에 회색지대란 없다. 약간의 정의, 약간의 악행, 그런 일은 없어.”
“그런가요? 솔직히 저는 제가 명도 백 퍼센트의 결백한 흰색이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명도 영퍼센트의 검은색도 아니지만요.”
“우리 경관은 경계에 있다. 흑과 백, 어느 쪽도 아닌 경계 위에 서 있어.”
“어느 쪽도 아니라니,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해. 우리가 하는 일을 시민이 지지하는 한, 우리는 그 경계 위에 서 있을 수 있어. 어리석은 짓을 하면 세상은 우리를 검은색 쪽으로 떠밀겠지.”
“모든 것은 세상의 지지에 따른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경관이다.” (6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