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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고 있다보니 문득 옛~적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 주연의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인데요, 그 당시 친구들과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아마 그 후로도 서너번은 본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것이 다시 한번 영화를 찾아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속의 브리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한마디를 듣고 심장이 고장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심장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가슴이 멎거나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질환. 여성의 발병률이 훨씬 높으며 매우 드물지만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라고 하는 상심증후군으로 말이죠...사실 상심증후군이라는 병명이 실제로 있다는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됐네요.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 처럼 브리 역시 죽었지만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이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목격한 일들...아빠의 외도, 가장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속마음과 배신. 남자친구인 제이컵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를 듣고 죽음에 이르게 된 브리는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역시 영혼인 패트릭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제이컵에게 복수를 감행한 브리. 그러나 그녀의 복수는 후회를 남기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제이컵과 친구들의 진심을 알게된거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딱 소설같은 내용이지만 이야기는 책 표지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시종일관 유쾌하고 발랄합니다. 주인공 브리와 같은 십대소녀들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사랑, 우정, 성장, 그리고 판타지적인 요소까지 두루 갖춘 이야기였습니다.
얼마전 앤 브래셰어스의 "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라는 책은 죽음과 영혼, 환생등을 다루는 내용이었는데, 시공간을 넘나드는 절절한 사랑에 가슴 한켠이 묵직해 지는 느낌이었다면, "상심증후군"은 죽었지만 생기발랄하고 톡톡튀는 브리의 설정이 죽음이라는 아픔 보다는 사랑이라는 달달함이 더 느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천국 한 조각"이라는 죽은영혼들이 지내는 곳은 브리가 좋아하던 피자를 맘껏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이러한 설정 역시 브리 나이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환상의 조합이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브리를 기다려온 패트릭의 등장은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하나의 큰 획이었습니다.
브리가 마치 옆에 있는 친구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이어지는 문체는 상당히 감각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속으로 흡입이 되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나 자신이 십대 소녀가 되어 브리의 친구로서 이야기를 듣는듯한 느낌이랄까요. 신선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제3의 공간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아픔과 그 아픔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면서 브리 또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지내왔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모습은 청소년 독자들에게도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딸아이에게 꼭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엄마가 자꾸만 눈에 밟혔어. 방 건너편의 꽃꽂이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엄마. 나를 잃은 슬픔이 피부 밑으로 흘러들기라도 한 듯 살갗이 다 갈라진 것처럼 보였고, 희미한 장미향이 우리 사이의 허공을 서글프게 떠돌았지. 나는 다른 문상객들에게 눈을 돌렸어. 그 많은 사람 앞에 앉아 있자니 되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살아 있을 땐 인사도 굳이 안 하던 사람들이 왜 죽고 나니 찾아온 걸까 싶어서. (19쪽)
아빠가 나를 이렇게나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를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아빠는 물론 실수를 저질렀지만, 실수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내가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었듯이 아빠 역시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거야. 나는 아빠의 손을 힘껏 마주 쥐었어.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목을 적시고 심장감시장치의 신호음이 잦아들 때, 나는 아빠의 눈을 들여다보고 마지막 소원을 빌었어. 이렇게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서로 소중히 여겨주세요." 그리고 숨이 끊어졌어. (4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