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랜드맨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오~ 오리하라 이치. 이 작가분 참 흥미롭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작가분의 작품중 '도착'시리즈나 '자(者)'시리즈를 이야기 하셨지만 난 오늘 이 작가분과의 첫 만남. 그런데 꽤 괜찮네요. 예전과 달라 요즘은 단편도 꽤나 많이 읽고 있지만 이 작가님 스타일의 단편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오늘 읽은 [그랜드 맨션]도 단편이라고 하지만 연작으로 등장인물들이 각 에피소드 마다 다들 등장해 주십니다. 이곳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인물이 다음 에피소드엔 주연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주변인물이 되기도 해서 인물의 이해도가 높아지니 이야기도 재미있고 쉽게 읽힙니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저층 아파트. 이곳에는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실직자, 빈곤층, 노인등. 주로 사회의 약자들이 살고있는데 그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픽션이지만 픽션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입니다. 최근 뉴스를 통해 다뤄지는 소식들을 보면 드라마나 소설속의 이야기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내용이 많으므로...아무튼 소설이라고 치부해 버리지도 못하는 이런 이야기를 난 재밌게 읽었다는 아이러니.
층간소음을 주제로 한 첫번째 이야기 <소리의 정체>. 나 자신도 층간소음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그냥 그런 이야기로 끝이 나면 재미가 없겠지요. 기묘하고 기괴한 냄새를 풍기는 이야기라 초 집중해서 읽었는데 역시나 짜릿한 반전으로 보답을 해줍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활발히 활동(?)중인 보이스피싱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그리운 목소리>에서는 맨션에 살고 있는 노인들을 상대로 하여 여기저기서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내용입니다. 노인들의 사생활을 꽤뚫고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요. 또한 마지막 이야기 <리셋>은 그리 오래지 않을 미래의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당장 얼마 지나지 않을 내일의 우리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에 가슴 한켠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작가 특유의 서술트릭이 빛을 봅니다. 이렇듯 각각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직접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사회문제들을 한층 더 심각성을 띤, 일종의 경각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듯 합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어서 돌아갈까 생각했을 때 찰칵 하는 금속음이 났다. 문을 따는 소리.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간유리에는 어렴풋이 빛이 비쳤는데 문틈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보였다. 썩는 냄새 같은 것도 느껴져 사와무라는 뒷걸음질 쳤다. "누구세요?" 지옥의 바닥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여자의 낮은 목소리였다.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저 문틈의 어두운 공간만을 본다 - <소리의 정체> 본문중 -
무토 도메코는 집 안에서 이질적인 냄새를 맡았다.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오카야스 료타의 것도 아니다. 늘 방문하는 다가 이네코의 냄새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녀의 인생에서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였다. 남자냐 여자냐를 묻는다면 남자이고 악의가 짙게 배어 있다. 또 누군가가 집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조금 전. 시간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그와 딱 맞딱뜨렸을 것이다. - <리셋> 본문중 -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 특유의 서술 트릭이 바로 이런것이구나! 하고 감탄을 하게됩니다. 이야기 중간중간 숨어있는 트릭을, 읽으면서 찾았다면 쾌감을 느낄것이고 나처럼 좀 둔한 사람이라면 다시 앞장으로 리와인드 하며 읽어도 그 재미가 쏠쏠할 것 입니다.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트릭들이지만 어느새 속아 넘어간 나를 발견하게됩니다. 하하...이 작가의 시리즈 읽어보고 싶네요.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