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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만약 룰루와 메리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난 룰루와 같은 행동을 했을까, 메리와 같은 행동을 했을까요. 자신의 성격과 생활방식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룰루와 메리처럼 너무도 판이한 미래를 살게 된다면,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 것 같은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게 옳은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그 선택이 옳고 그른건 본인이 결정하고 그 결과는 본인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따지고 봤을 때 룰루와 메리중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라고는 할 수 없겠네요. 겉으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룰루도 내면적으로는 무척이나 힘들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는 말입니다.
이야기는 첫 장부터 끔찍한 사건을 필두로 숨 막히는 전개가 시작됩니다. 아홉 살인 룰루는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참혹한 광경을 눈앞에 마주하게 됩니다. 아빠가 오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집에 들이고 만 룰루. 술에 취한 아빠는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 손에 쥔 칼로 엄마를 살해하고 어린동생 메리도 아빠의 칼에 가슴을 찔렸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를 급히 부르러 갔던 룰루는 그 위험한 순간을 모면한 것이지요. 집에 돌아온 룰루는 부엌바닥에 흥건한 검붉은 피, 조용히 그 피 위에 누워있는 엄마, 그리고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동생 메리를 목격합니다. 그 후, 아빠는 교도소에 들어가고 자신들을 돌보던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이모마저 자신들을 거부하자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녀들은 그곳에서 조차 살인자의 딸들로 낙인찍혀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메리가 공을 던지지 못한다고 놀렸다. 그건 가슴에 입은 상처 자국 때문이었다. 유치원을 다른 데로 옮겼지만 모두들 우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살해한 가족의 딸이라는 걸. 게다가 가엾은 메리는 아빠한테 칼에 찔린 아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어 다녔다. (42-43쪽)
이야기는 룰루의 시점과 메리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서술되어 두 자매의 심리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빠를 절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룰루. 아빠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지만 교도소로 아빠를 찾아가 아빠를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메리. 두 사람은 늘 이 문제로 부딪힙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룰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빠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신의 남편과 메리는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라며 아이들에게 말 해 주기를 원합니다. 서두에서 서술했듯이 내가 만일 그녀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래도 내 아빠인데, 룰루 처럼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지는 못했을 듯 하기도 하구요, 또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빠를 메리처럼 그리 쉽게 용서하지도 못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양면성이 있다고들.. 하지만 마지막 몇장을 남기고 아빠를 찾아간(비록 모진 말을 하기 위해서지만) 룰루가 내 뱉은 한 마디는 그동안 아빠를 한 번도 찾아 가지 않았던 그녀를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면서 뭔가 마음 한구석이 짠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 문을 열던 나는 1971년부터 내 숨통을 막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엄마가 죽은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너희 아빠가 날 죽일 거야. 티니 아주머니를 불러와!’ 난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460쪽
작가인 랜디 수전 마이어스는 어릴 때부터 가정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러한 기관에서 10여년간 가정폭력에 연관된 일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 전력을 증명하듯 그녀의 글은 간결하지만 이해하기 쉽고 그런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힘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룰루와 메리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들이 겪어야 했던 상실감,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주변의 수근거림을 고스란히 지고 가야 했던 암울한 청소년기, 각자 사는 모습은 달랐지만 그녀들만의 개성적인 삶을 느낄 수 있었던 성년기, 결혼과 아이들...이렇게 자매의 일생을 속도감 있게 서술한 부분들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끝까지 그녀들의 삶은 많이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사는 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생각은 하나이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