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색 연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7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강렬한 주홍색 표지를 보고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었다.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에서 말해 주듯이 이 책의 내용은 주홍색에 얽힌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표현해야 할까.  우연히 목격한 죽음의 현장이 짙은 주홍색 화마에 휩싸여 있었던지, 또는 천지의 종말을 예고 하는듯한 강렬한 주홍빛 석양이 질 무렵이라던지 하는 배경 때문인지 온통 주홍빛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난 이 책을 접한 후 알게 된 책인데 셜록홈즈에게 보내는 대담한 도전장이라고 책소개에 표현 했듯이, 작가는 셜록홈즈와 그의 조력자 왓슨박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설, 즉 <주홍색 연구>에서 이 책의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그처럼 이 작품 또한 홈즈역의 히무라와 왓슨역의 아리스가와가 등장한다.  홈즈처럼 날카롭게 사건을 파헤치는 히무라. 그리고 왓슨처럼 현명한 조력자 아리스가와.  두 사람은 과연 홈즈와 왓슨처럼 적절한 콤비를 이루며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히무라는 조각상처럼 우뚝 서서 무토베(살인용의자)와 내가 주고받는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서글픈 심정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모를 감정을 무토베에게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363쪽) 이 문장에서 아리스가와가 히무라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함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는 법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에게 제자인 아케미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아케미는  2년전 겪었던 살인사건을 조사해 줄것을 히무라에게 의뢰한다.  친척의 별장 근처 해변에서 둔기로 뒤통수를 맞고, 거기다 5미터 높이에서 떨어뜨린 돌덩이에 한번 더 머리를 강타당한 친척의 피아노선생의 살인사건 이었다.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살인사건 조사를 위해 방문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유령맨션'이라 불리우는 곳에서 또 다른 사람의 교살된 시체를 맞딱뜨리게 된다.  바로 아케미의 외삼촌이었다.  또한, 아케미는 이모부가 화마에 휩싸여 죽어가는 장면도 본, 주변사람이 세사람이나 피살된 사건을 겪은, 소설속 주홍색의 트라우마를 겪고있는 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사건의 연관성과 세 사건에 관계된 예닐곱명의 용의자를 한사람씩 줄여가며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와 진다.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범인이라면 스쳐 지나갈 때 얼굴을 돌리거나, 걸음을 서두르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뭐, 히무라가 마음에 걸린다고 해도 그 인물을 목격한 지 벌써 한 시간도 더 됐으니 이제 와서 뒤를 쫓을 방법도 없다.
"혹시 모르니 인상과 풍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히무라의 천부적인 통찰력이 발휘되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연령 20대. 신장은 1미터 70센티미터 전후, 적당한 몸집. 머리카락은 가운데 가르마로, 길이는 귀를 반쯤 덮는 정도. 베이지색 코트 깃을 세우고 있어 콧대나 입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볼록한 이마와 또렷한 눈이 특징적이었다. 약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이게 전부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라니 대단도 하시다. 나는 그 인물이 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였다는 정도만 자신 있게 증언했다. (55쪽)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단 한편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을 아주 재밌게 읽었었던 기억이 난다.  이색적으로 스님이 탐정으로 나오는 책이었는데 독자에게 추리의 기회를 제공하는 특유의 서술방식이 흥미를 돋우기도 했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주홍색 연구>는 본격추리로서 내가 느끼기엔 두 작품이 완연히 다른 양상을 띠었음에, 처음 이 책을 잡고는 며칠을 주물럭 거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나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은듯 히무라와 아리스가와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갈 즈음부터 가속이 붙어 훌쩍 읽어 버린것 같다.  냉철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본격추리물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이 작품 역시 처음엔 좀 지루하다 싶었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만의 재치 넘치는 대화들에서 또다른 재미를 느꼈고 새로운 시도를 한것 같은 색채 미스터리는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강렬한 주홍빛이 남아 있는듯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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