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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마음을 확 잡아 끌었던 강렬한 표지와는 달리 조금은 무난한(?) 추리,스릴러 였던것 같다. 추리를 좋아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더 강한거!를 찾게되는듯. 그동안 추리에 등장하는 인물중 형사, 또는 탐정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였다.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시리즈는 물론 여자이지만 말이다. 스카페타 시리즈를 읽을땐 왠지모를 긴장감에 잔뜩 움츠러들며 읽었던것 같은데, 이 책은 그냥 덤덤했던것 같다. 읽었던 내용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미로라는 여자가 사건에 꽤나 깊숙히 파고들어 들춰낸것 같긴 한데, 다 읽고난 느낌은 왜 그냥저냥인가 모르겠다. 그렇다고 재미 없다 느낀건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미로라는 여자에 대한 제대로된 인물설명이 없어서였을까? 그녀는 유명 사립탐정인 아버지를 둔 딸이자,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사건의 피해자인 요코의 친구이자, 이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로 첫장부터 등장한다.
요코는 거금 1억엔을 들고 사라져버린다. "그날 밤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라는 한문장으로 미루어 보건데 미로가 어젯밤 받지 않았던 전화는 분명 요코에게서 걸려온것이리라. 그 한통의 전화로 인해 돈을 맡긴 폭력배들은 미로가 요코의 사주를 받아 그 돈이 있는곳을 알거라 믿고 미로를 협박한다. 미로는 폭력배들에게 사생활 침해를 받으며 같이 생활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요코와 그 돈의 행방을 찾기위해 동분서주 하게된다. 명탐정이신 아버지의 딸답게 그녀의 기민한 직감력이 놀라울 정도로 들어 맞을때, 역시나 추리의 맛을 느끼곤 했다. 모든 사건이 종결될 시점, 독자들 또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을 즈음, 역시나 좀 심심한 결말일까 라는 생각을 할때 터져주는 반전. 요코와 1억엔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 다니던 요코의 정인이었던 나루세. 잠깐이긴 하지만 미로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 그 남자에게서 범인의 냄새를 맡은 순간, 아! 역시 추리는 반전의 묘미! 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보았다.
'요코가 죽었어.' 이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실내등도 켜지 않고 사진을 살짝 꺼내 보았다. 맞은편 차의 헤드라이트에 요코의 얼굴이 빛났다. 세 번째 사진에 찍혀 있는 요코는 슬픈 표정으로 멍한 눈을 살짝 뜬 채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물에 빠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다만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입 안에 들어가 있어서 원한을 품은 듯 보이기도 했다. 298쪽
기리노 나쓰오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통해 사건의 발생, 그리고 해결이라는 기존 탐정소설의 패턴에서 과감히 벗어나 미로라는 여성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이 책속에서도 등장하는, - 일테면 익사체 사진을 모으는 취미 같은 - 일본 젊은이들의 과감한 일탈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지만, 최근 발간된 미로시리즈 <천사에게 버림 받은 밤>, <물의 잠, 재의 꿈>같은 책들이 이 책으로 인해 당당하게 나의 위시목록에 올랐다. 특히, <물의 잠, 재의 꿈>은 이 책속에서도 잠깐이지만 언급이 되었던 명탐정인 미로의 아버지 무라노 젠조의 명탐정을 하던 시절을 그린 책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간다. 좋아하는 장르이지만 최근 오랜만에 접했던 추리,스릴러물이라 조금 모자란듯한 느낌도 있긴 했지만, 재밌게 읽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