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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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읽을까, 책장을 뒤적거리다 그냥 뽑아든 책이었는데, 몇장을 펄럭펄럭 넘겨보다 그냥 앉아서 50여페이지를 훌훌 읽어버린 몇권 안되는 책 가운데 한권이었다.  여타의 책들은 대부분이 앞부분은 장황한 설명과 인물설명들이 곁들여져 지루하기 마련이었는데, 감옥에서 출감한 거구의 '춘희'라는 여자가 인적 하나 없고, 잡풀이 무성한, 십여년동안 버려졌던 벽돌공장으로 돌아와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누룩뱀을 산채로 잡아먹는 첫장면이 인상 깊어서였을까.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과는 조금 다른 상황과 내용과 등장인물들이, 잘 어우러진 한편의 대하드라마랄까, 대서사시랄까.  영화화 하고 싶은데, 이 활자들을 이겨낼때 영화화가 가능한데 도저히 활자들을 이겨낼수 없을것 같아 영화로는 가늠을 할 수 없다는 장진감독의 말씀처럼  영화로 만든다면 스케일이 엄청나게 클것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또한   이 작품을 끝으로 작품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만큼 애정이 가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의 처음은 위와같이 춘희에 대한 짤막한 상황이 나온다.  그리고 본격적인 처음은 한노파로 시작된다.  절대박색인 한여인이 어려서부터 노파가 되기까지 겪은 고난과 설움과 한을 담아 세상을 살아오면서 모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두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그 죽음에 얽힌 그리고 그 재산에 얽힌 사람들을 둘러싼 일종의 복수극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곁들여진 신화와도 같고, 설화와도 같고 초현실적이기까지한 이야기들이 단순히 복수극이라 하기엔 아까울(?)정도이다.  1부와 2부에선 춘희의 엄마인 금복의 어린시절과 그녀가 수많은 남자들을 거쳐오며 사업가로 성공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녀가 사업가로 성공하는 바탕은 그녀가 어린시절 이미 죽음을 맞았던 노파의 재산이 한몫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 재산으로 인해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말이다.  금복의 일대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재미있는 설정들이 많았다.  벌꿀 두통에 팔려버린 노파의 딸은 벌을 온몸에 붙이고 나타나는가 하면, 노파가 젊은시절 만난 거대한 양물을 가진 반편이의 등장, 금복을 위기에서 건져준 거구의 순진한 청년 걱정, 금복을 너무 사랑한 칼잡이 등등. 책을 읽는 동안 이 기이한 등장인물들에 눈을 뗄수 없었고, 작가의 해학적인 표현또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큰 이유였다.
 
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중간생략)..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243쪽)
 
마침내 스크린에까지 불길이 옮겨붙었다. 한때 보잘것없던 산골의 한 소녀였던 그는 자신의 손으로 이룩한 거대한 영화가 눈앞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301쪽)
 
책의 3부는 소설의 처음처럼 금복의 딸이자 정신박약아인 춘희가 감옥에서 나와 어린시절을 보냈던 벽돌공장에서 혼자 벽돌을 빚으며 외로운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녀의 노동이 단지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필사적이었으며 단지 유희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된 일이었으며, 또 단지 그리움 때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반복적인 일"인 벽돌굽기를 왜 그토록 열심히 했는지, 참 기구한 춘희의 삶이 안쓰럽기만 했다. 어찌보면 세여자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곁가지를 퍼뜨린 이 이야기가 왠지 멀지않은 미래에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실리면 참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그것도 요즘 젊은 작가들 처럼 학력이 뒷바침 해주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고 나이도 지긋한 40대에 작가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소설로 전향을 하지 않았다면 이 귀하고 특별한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니, 다시 한번 그의 작가생활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바라게된다.  그의 작품 '고령화가족'도 어서 읽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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