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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오우!!! 정말 괜찮은 작가를 만난듯 하다. 지금현재 <두시탈출 컬투쇼>의 담당 PD를 맡고 있는 이재익작가의 책이다. 이 책이 벌써 그의 여섯번째 책이라니, 왜 난 전혀 몰랐을까? 생각하며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 된다. 먼저, 표지에 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은 '도시위에서'라는 샤갈의 작품으로 샤갈의 아내 벨라와의 신혼생활 중에 넘치는 행복감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다시 보게된 표지는 저렇게 하늘을 훨훨날아 둘이서만 조용히 살고 싶은 상민과 연희의 바램이 녹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소설, 연애소설, 스릴러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소설이었다. 국내작가의 소설로는 드물게 스릴러를 혼합한 시도가 돋보였고, 마지막 반전이 꽤나 짜릿함을 선사해 주었다.
우린 별로 고민할 것 없는 속 편한 아이들이었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아버지와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가 있었다.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갈 만한 성적도 유지했다. 외모역시 다들 말끔하고, 남녀공학에 다니면서 마음만 먹으면 여자 친구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었다. (52쪽)
거칠것 없는 십대시절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는 소년,소녀들. 젊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그 시절에 그들은 부러울것 없는 재력또한 갖춘 그야말로 '오렌지족'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의 아이들이었다. 그 시절에 끓어 오르는 젊음의 표상이었던 음악을 즐기며 분노를 표출하고, 사회 부조리에 대해 쓴소리를 내 뱉던 "서태지와아이들"같은 목적이 있는 그런 아이들은 아니었다. 단지, 즐기고 싶은 그런 아이들. 남자 다섯에 여자 셋으로 구성된 이 '압구정소년들'과 '반포소녀들'중 연예계에 데뷔하여 스타반열에 오른 연희라는 여자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년들의 리더격이던 대웅과 결혼한 연희. 대웅은 거물급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가 된후 연희와 결혼을 하지만 평탄하지 않았을 거라는 세간의 추측대로 대웅은 일년에 300일은 외국에서 보낸다. 그 와중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연희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연희의 죽음을 접하고보니, 최근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사건들이 문득 떠올랐다.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라 그런지 많은 부분에서 실제 사건들이 오버랩되는 현상을 느낄수 있었다. 화자인 압구정소년들중 큰 존재감이 없었던, 지금은 기자가 된 우주는 한때 짝사랑했던 연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위험한 사투를 벌인다.
박대웅 정도 되는 거물은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소시민 하나쯤 얼마든지 눈에 띄지 않게 감시할 수 있고 해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막연한 위협이 아니라 목 뒤를 겨눈 칼날처럼 구체적으로 위험이 다가왔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는 여자처럼 어쩌면 나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닿으려고 애쓰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간다. 가야 한다. 기다려, 개자식아. (280쪽)
상민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출연으로 사건의 전개가 더 복잡해졌으나, 상민의 존재를 캐기위해 멀리 밴쿠버로 날아간 우주는 그곳에서 만난 대웅에게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다. 놀라운 사건의 전말속에 첫번째 반전이 숨어 있었고, 그 모든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귀국하던 우주앞에 나타난 상민과 연희! 마지막 반전이었다. 냉소적이고 비인간적으로만 느껴졌던 박대웅에 대한 독자들의 감정은 연희의 출연으로 인해 봄눈 녹듯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연희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그녀가 원하고 바라는 사람곁에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비밀이 탄로나는것이 두려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나, 난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대웅은 진심으로 연희를 사랑했노라고...
소설의 중간중간에 또다른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아이돌스타들의 뒤이야기들...결코 이런 이야기들이 소설속에서만 접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음 좋으련만. 최근 젊은 나이에 자살한 연예인의 이야기가 다시 이슈화 되면서 우리 사회속에 계층간의 부적절한, 비인간적인 이야기들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한번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던것 같다. 작가의 이야기가 얼마만큼 녹아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소설속의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냥 스쳐지나가버리면 안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