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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8월
평점 :
책 읽기가 가끔 의무로 느껴질때가 있다. 꼭 읽어야 하는데, 오늘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것 같은데...하면서 집어든 책들은 왠지 잘 읽히지도 않지만, 잘 읽히더라도 한순간 타이밍을 놓치면 잡생각에 책장만 왔다갔다 하고 그러다 책한권을 일주일씩 이주일씩, 손때만 묻히고 다 읽고 나도 뭔가 허무한 느낌을 지울수 없는 그런 때. 요 몇일 책몇권을 그런식으로 질질 끌어 왔었는데, 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 이라는 이 책으로 슬럼프를 완연하게 이겨낸것 같아 너무 홀가분한 느낌이다. 우연히 이웃님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책인데, 다른사람의 별다섯 책들은 왠지 너무 궁금해 꼭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읽을책이 산더미 같지만 굳이 구입해서 읽었었다. 그 선택이 절대 헛되지 않을만큼 만족한 책이다. 다만, 장편인줄 알았는데, 중단편 다섯편이 실린 책이었다. 하지만 한편한편 끝나는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만큼 작가의 톡톡튀는 기발한 소재들이 단편스럽지않을 만큼 몰입을 하게 만들었다.
책에는 다섯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연애소설 같기도 하고, 미스터리물 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복선들과 반전의 묘미를 곳곳에서 느낄수 있다. 역자는 이 책을 "연애소설이라고 쓰고 미스터리물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다. 이 다섯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스스로를 매력없다 생각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첫번째 "교환일기 시작했습니다"의 하루카는 대학생인 동생집에서 얹혀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사흘을 못넘기는 소극적인 아가씨. 고등학교시절 체육선생님과 사귀면서 교환일기를 쓴 내용이 실려있다. 두번째 "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의 아사히나는 배우지망생으로, 바람난 선배의 부탁으로 선배의 부인을 유혹하는 일을 맡게되는, 이 사람역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총각. 그러면서 정말로 선배의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세번째 "낙서를 둘러싼 모험"의 치하루는 어린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으로 왠만하면 튀지않고 묻어가는 여대생. 네번째 "삼각형은 허물지 않고 둔다"의 렌타로는 스스로를 존재감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고등학생. 잘나가는 친구의 꼬붕역할을 도맡아 하면서도 전혀 꿀림이 없고 그 역할이 너무 자연스럽다. 한 여학생을 두사람이 동시에 좋아하지만, 친구를 위해 사랑까지 포기할줄 아는 렌타로. 하지만, 그 여학생은 렌타로를 더 좋아한다는것. 결국, 그 친구가 여학생을 차 줌으로서(?) 렌타로에게 가는 여학생. 왠지 모를 뜨거운 우정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가장 재밌게 읽은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배"의 다카야마는 자신의 뱃속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어 있는 여고생이다. "배울리스트"라는 단어가 얼마나 재밌던지...유난히 귀가 밝은 같은반 남자아이 가스가이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는 다카야마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다섯편 모두 재밌고 기발한 소재라 지루함 없이 정말 재밌게 읽었던것 같다. 기발하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라 한층 친근감있었던것 같다. 나역시 학교시절 그다지 튀지않는 내숭9단의 여학생 이었던지라, 공감대도 컷었던것 같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몰입하여 읽을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