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풋풋하던 시절.  막 10대 딱지를 떼고 20대에 접어들던 그때,  친구들이랑 떠났던 목포여행.  그저 젊음이란 그 단어 하나만을 믿고 철부지처럼 밤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었다.   목포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였던가, 7시였던가..?  대충 요기를 하고 제일 먼저 찾았던 곳이 바로 유달산이다.   조각공원을 거쳐 유달산 중턱에 세수도 안한 꼬질꼬질한 얼굴들을 하고 곧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찍은 사진을 가끔 보고 있노라면,  그때 그 햇살이 얼마나 따사로왔는지,  그 유달산 중턱이 어찌나 평온해 보였던지,  그때의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지곤 했다.   내 기억의 한켠에 고이 모셔둔 그 유달산을 이 책에서 접하고 보니,  어찌나 반갑고 왠지모를 설레임이 느껴지던지...그때로부터 강산이 두번이나 바뀔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나름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이후 아직 그곳을 다시한번 가보지 못한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책속에 등장하는 유달산을 그때의 느낌으로 되새김하며 읽고 있노라니, 아스라한 추억의 한컷한컷이 되살아 나는것 같아 책을 읽는내내 왠지 설레었다.

 

아들을 잃고,  그 후 남편마저 잃은 한 여자.   분신과도 같은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은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그러할까.   버티어낼 자신도, 의지도 상실한 한 여자가 남편과의 친분이 있던 정섭을 따라 우연히 목포에 가게된다.   자신이 왜 거기에 가게 되었는지, 무엇때문에 목포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버려진듯한 자신을, 자신마저 버리고 싶어하는 심정으로 정착하게 된곳이 바로 영란여관이다.   이름마저 상실한 그녀가 그곳에서 영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목포에 두고온 그녀가 궁금해, 그녀를 찾기위해 정섭은 목포로 떠나고, 정섭또한 목포에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며 그렇게 목포에 어우러진다.   닿을듯 닿을듯 닿지못하는 두 사람이 안타까우면서도,   타지에서의 삶에 재미를 느끼며, 아픔을 잊어가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참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왜 떠나려 하는가.  할머니도 비금이댁도 어디로 갈 거냐고, 갈 곳은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할머니는 차마 묻지 않는 것이고 비금이댁은 차마 묻지 못하는 것이며 수옥이는 물으면 아플 것이 두려워 묻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이런 사람들 속에서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비 갠 하늘처럼 맑게 살아도 좋을 것인데....비가 오면 또 달라질 수 있을까.  비 온다는 핑계로 주저앉을 수 있을까. (135쪽)  그렇게 그냥 살아도 좋으련만,  영란은 또 떠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잃어본 아픔을 아는 영란은 또다시 다가올 이별에 대한 아픔을 맛보고 싶지 않아서일까.  사람들과 섞임을 두려워 하는 그녀가 많이 가련하고 안쓰러웠다.

 

공선옥 작가의 책은 처음이라 낯설거라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몇번 접해본듯한 작가의 감성이 낯익어서 좋았다.  산다는 것은 고해, 즉,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라 했던가.   그 고통의 바다를 건너면 찬연한 태양이 비치는 초원이 나타날까?   혼자 오도카니 있다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다 보면 결단력도 흐려진다.   걸출한 남도 사투리의 이웃들과 함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영란을 보며 사람은 사람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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