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감동 휴먼 다큐 '울지마 톤즈'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증보판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성직자란, 사제란 어느 누구나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뵈었던 많지 않은 사제분들은 언제나 희생하고 봉사하고 자신을 낮추고 사시고 계셨다.   친척분중에도 신부님이 한분 계시고 수녀님도 한분 계시지만,  모두 한결같은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았다.   난 어릴때 부터 성당을 다녔었다.   할머니가 항상 기도 하고 계시는 모습이 어릴땐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수가 없었다.   항상 경건하고 엄숙한 성당은 선뜻 발길을 들여놓기가 무서울 정도로 어린 나에겐 묵직한 그 무엇이었다.   그러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신비감과 경외감에 더 우러러 보았던 것 같다.   동네의 조그만 성당이라 그런지 유아세례를 받고 자주 들락이다 보니 신부님 수녀님과도 친해지고, 사춘기 시절엔 앓던 속을 고해성사를 보며 신부님께 토해내기도 했었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냉담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혼식 역시 성당에서 치렀다.   이렇듯, 성당과 신부님은 나의 생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 우연히 TV에서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되었다.   많지 않으신 나이에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이렇게 TV로, 책으로 알려지게 되어 다시 한번 신부님의 그 마음을 기리게 되어 감사히 생각한다.
 
 
이태석 신부님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셨고,  군복무를 끝내신후 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으셨다.   그후 로마유학을 마치고 2001년 사제서품을 받으시고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나셨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라는 작은마을에서 신부님은 모든걸 다 바쳐 봉사하셨다.   톤즈는 수단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거의 황폐화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콜레라와 말라리아등 황토병으로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전쟁으로  무너져내려 공부할 곳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브라스밴드라는 밴드부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하였다.   3월말에 시작된 콜레라는 이렇게 한 달 정도를 누비고 돌아 다니며 마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을에 상을 당하지 않은 가족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콜레라에 대한 주민들의 무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처음 당하는 일이라 간단한 설사병으로 여기고 하루 이틀 저절로 멎기를 기다리다 병원에 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변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며 정말 무서워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age 66)
 
 
이태석 신부님은 그렇게 8년을 톤즈에서 봉사하시고 휴가차 귀국을 했다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꿈을 찾아가던 톤즈는 신부님이 안계시자 다시 황폐화 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신부님이 안계신 병원에는 아직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신부님의 선종소식을 전하자 마을 주민들은 통곡을 했다고 한다.  특히, 신부님이 몸을 아끼지 않고 돌보아 주었던 나병환자들은 신부님의 사진을 꼬옥 끌어안고 눈물을 지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얼마전 신부님의 선종 1주기를 맞아 방송된 다큐프로에서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눈물이 흘렀다.   성심을 다해 톤즈 주민들을 위해 봉사를 하신 신부님의 진심이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성직자라 해서 누구나 다 이렇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강요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 분들이 이렇게 살고 계신걸로 안다.   조금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만이라도 가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환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선종하신 고 이태석 신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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