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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왠지, 감성을 무지하게 자극할 것 같은 제목이었다. 찬바람에 눈까지 내리는 꽁꽁얼어버린 한 겨울의 도시에서 나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갈즈음, 살포시 내 맘을 녹여준 책이다. 어딘지, 무언지 정해지지 않은 여행지와 뚜렷하지 않은 주제가 한층 더 궁금증을 자아내며, 계속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더불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이지만, 쉽게 담을 수 없었던 사진들이 더욱 아련히 가슴에 남아 있는듯 하다. 어디서 본듯한 곳, 어디서 만난듯한 나무, 집 밖을 나가면 당장 마주 칠 듯한 풍경이 가득하지만 마치 꿈속에서 보아왔던 데자뷰처럼 퍼뜩 정신이 들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치 그런 현상을 경험한 듯, 내게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그런 내용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얼마전 읽었던 "나만 위로할 것"의 작가 김동영님과 뭔가 참 많이 닮았단 생각을 했는데, 책 속 최갑수님의 짧은 인터뷰속에서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이야기와 시규어로스의 음악이야기를 읽으며 역시 두분의 감성과 생각이 참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카메라 하나 달랑 어깨에 매고 그저 이곳저곳 여행만 다니고 싶었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 졌다. 그런 여행을 해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은 그런 여행을 아직도 꿈만 꾸는 한 남자의 아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작가는 외로움과 친구가 되면 여행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는데, 이렇게 가족에 둘러쌓여 외로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어져 버린 난, 앞으로도 그런 여행을 할 수 없는걸까? 생각하니 왠지 서글픔이 왈칵 밀려온다. 하지만,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이 외로움이라면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충만과 행복이라 생각하고 싶다.
나이가 든 여행자들을 존경하라. 그들 대부분은 인생의 교훈을 체득한 이들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혹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여행을 시작한 이들이다. 이들은 낯선 풍물을 보며 신기해 하지도 않고,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따위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page 207) 나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옛적 꿈꾸었던 여행을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
새로운 직장을 위해 이력서를 쓰기가 쑥스러운 나이.
혼자서 영화관 가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나이.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편견이 서서히 쌓여 가는 나이.
일상을 뒤엎는 전폭적인 모험을 감행하기에도,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도 이른 어정쩡한 나이.
자신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
그래서 약간 우울해지는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혼자 남겨지는 건 아직도 두려운 나이. (page 292-293)
이 글들이 너무나 공감되는 내 나이도 서른과 마흔 사이. 이 책을 읽고나니 내 인생 잘 지내고 있는지,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그냥 훌쩍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