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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책. 과연 어떤 느낌일지 읽기전 부터 무한한 기대감에 가득차 올랐다. 흔히 여행서라 함은, 일반적인 기행문과 더불어 여행지의 생생한 사진들이 나의 오감을 자극한다. 여행서를 볼때면 항상 휘리릭 책장을 넘기며 사진들을 먼저 보곤 하는데, 이 책속엔 사진이 없었다. 독자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함인지, 이해를 돕기 위함인지 중간중간 삽화가 곁들여 있긴 하지만, 역시나 여행서의 기본(?)인 사진이 없었다. 제목 그대로 책 여행 책인 것이다. 저자가 읽었던, 또는 접했던 책들과 그 책들에 얽혀있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이 수많은 책들속에 그의 여행의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니,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인듯 하다.
누군가는 "여행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일상에서 벗어나는 충동외에 여행의 목적은 없다"고 한다.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다. 이건 여행의 패러독스가 아니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은 달라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달라질 수 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변하는 건 아니다. 일상과 마찬가지로 여행도 '만들어 가야'하기 때문이이다. (P37)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만들어가는 것이 여행이구나...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선택하는 여행지가 아닌, 한권의 책으로 인해, 때론 한편의 영화로 인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가는 길은 호기롭고, 신선하고, 기대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꺼운 한권의 책속에서 단 한문장의 그 장소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만 하다.
여행은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미묘하게 드러낸다. 일상은 일탈을 꿈꾸고, 일탈은 일상을 꿈꾼다.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면 일상의 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무거워진다. 나이가 어려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마흔이 넘어도 충동적으로 살고 싶다. 맹목적인 일탈을 꿈꾸는게 아니라 변화를 꾀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순차적으로 풀어야 하는 공식 같은 삶. 그와는 다른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꿈꾼다. (P66) 가정에 매인 사람들은 일탈은 고사하고 생활패턴에 조금만 변화가 생겨도 인생의 시계가 어긋나 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도 그렇다. 꽉 짜여져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는 하루하루가 때론 숨막혀 멈춰 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만 나 하나의 일탈로 어긋나 버린 톱니바퀴를 정상궤도에 올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기에 묵묵히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통해 여행 할 수 있다면 그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 했었는데, 오히려 더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내가 여기에 있었다.
16권의 책 여행을 마치고 나면, 여행 책 파트가 나온다. 13곳의 여행지를 소개한 부분이다. 아마 저자의 기억속에 오래토록 남아있는 여행지들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행의 갈증을 해소하기 보다 그 책들과 여행지들로 인해, 말라있던 내 감성은 또다시 여행이라는 일탈을 꿈꾸고 있다. 나에겐 너무나 좋았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