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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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 세계'나 '북극의 눈물' 같은 다큐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서글픈 비애에 사로잡히곤 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야생 동물들은 결국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거기에서 탐욕이나 이기심, 유희나 여유 같은 것을 찾기는 힘들었다. 오직 생존만이 생의 목표인 듯 보였다. 먹이를 구하고, 서식지를 지키고, 새끼와 자손을 보존하는 일. 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일을 위해 언제나 가쁜 숨을 토하며 전력으로 내달리지만 그들의 삶은 처절하기만 했고, 생존의 꿈은 무시로 좌절되곤 했다.  

그들 삶이 처절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원인 중에 하나가 인간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안다. 다큐가 영상으로, 또 내레이션으로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 개입되지 않아도 그들의 삶이 그토록 처절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생존이 그토록 위태롭지도 않을 것이다. 오래전 자연에서 유리된 인간은 자신도 한 때 자연이었다는 것을 잊은 채 자연을 개발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백수의 왕이라 불리는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 무리.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그들은 아무 걱정도, 적수도 없이 제왕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제명까지 살다가는 사자는 별로 없다. 매년 사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50만 마리가 넘던 사자의 수는 불과 반세기 반에 2만 마리로 떨어졌다. 네발 달린 짐승 중에서는 적수가 없다던 백수의 왕이 멸종 위기에 몰린 것이다. 자연사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사자의 세계에, 사자라는 자연 속에 인간이 무력으로 개입하면서 초래된 비극이다. 매년 사냥총과 마취총, 수많은 살상 무기들을 챙겨들고 사자를 불법, 혹은 '합법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날아가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도대체 사자 같은 동물을 죽이는 이유가 뭘까.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사자 고기를 먹으려고 그 먼 길을 날아가는 것은 아닐 테다. 그저 과시와 쾌락, 탐욕과 자기만족을 위해 죽이는 것이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의 사정이 이 모양이니 다른 연약한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무시로 죽어간다. 이유도 없이, 혹은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인간은 다른 동물을 사냥했다. 그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연은 건강했고, 지구는 무탈하게 잘 돌아갔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던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자연보다 우위에 올라서려던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생존을 위한 사냥이 과시와 쾌락을 위한 놀이로 바뀌고, 인간은 자연과의 공존을 거부한 채 마음대로 파괴하고 변형시켰다. 지구는 병들어 갔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었다. 자연의 적이고, 자연을 병들게 하는 병균, 암덩어리에 불과했다. 몸속에 깃든 병균을 박멸하기 위해 자연이, 지구가 이제 행동에 나설 때도 된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가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에 의해 흔적도 없이 몰살당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일 년에 반이 겨울인 외딴 산골 마을에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첫 번째 사망자는 사고사로 보였으나 이어서 발생한 두 번째 사망 사건은 확실히 살인처럼 보였다. 첫 번째도 살인일 수 있다는 의심이 대두되고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주려는 듯 세 번째, 네 번째 살인이 연이어 발생한다. 짐승 포획을 즐기는 이웃 사내, 경찰관, 목사 등 죽은 이들의 면면은 제각각이며 서로 간에 연관성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전직 교사이자 저택 관리인으로 일하는 듀세이코는 자신의 특기인 점성술에 근거하여 죽은 이들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찾아낸다. 시신 주변에서 발견된 동물 발자국, 동물 박제, 시신을 발견하기 직전 마주한 동물의 눈동자, 사슴 무리, 그리고 죽은 이들 모두 사냥을 즐겼다는 단서 등을 토대로 듀세이코는 주장한다. 죽은 사람은 모두 야생 동물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고. 죄 없는 동물을 그저 재미 삼아, 과시하기 위해, 합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당하게 죽여온 죄인들에게 동물이 단죄를 내린 것이라고. 듀세이코의 주장은 무시되고, 모두들 그녀를 정신 나간 노파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된다. 듀세이코의 말처럼 시신 주위에는 여전히 흩어진 동물 발자국이 있고, 죽은 이는 역시 사냥을 즐겼던 사람이다. 정말로 인간에 대한 동물의 무시무시한 앙갚음이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을 멋대로 훼손하고 도륙한 인간에게 내리는 신의 심판일까


올가 토카르추크는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문학의 기능이고 책임이라 생각한다. 문학뿐만 아니다.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제각각의 위치해서 제각각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만 할 것이다. 작가는 글로 말한다. 

끝도 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를 파괴하는 인간의 무지하고 잔혹한 행위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작가는 글을 통해 분연히 외친다. 더 이상 죄 없는 동물을 죽이지 말라고.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고. 동물은 곧 자연이고,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오늘 사슴 한 마리를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일은 내일 내 자식을 죽이는 일이고, 훗날 내 자손을 멸하는 일과도 같다. 당신이 겨눈 총부리가 종국에는 누구의 가슴을 향하는지, 열등과 탐욕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근시안에서 벗어나 보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작가는 충고한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조화롭게 살아가던 시절을 기억하라고. 동물을 비롯한 모든 지구 생명체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의 동반자로 살아가던 시절로 회귀하라고.

이 작품의 주제와 상통하는 세계관을 지닌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중력 삐에로'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하루는 이런 말을 한다. 개를 장난으로 죽이는 건 사형입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어요.

개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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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돼지의 눈
제시카 앤서니 지음, 최지원 옮김 / 청미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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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변치 않는 본성, 변치 않는 과오, 변치 않는 역사.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내용이 담긴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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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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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내용 없이 하루키 스타일만 견고하게 살아 있는, 무미건조하고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나 습작 같은 느낌이 나는, 하루키를 우려낸 재탕 같은, 그럼에도 그럭저럭 읽히는 단편들. 책 표지가 나쁜 지는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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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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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익숙한, 오래전에 쓴 것 같은...





하루키는 참 스타일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이번 신작 단편집을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글 솜씨조차도 그때 그 수준에서 향상되거나 변화한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첫 작품에서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직선으로 똑바로 걷는 듯 밋밋하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느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지면서 끝나는 식의 작법 스타일(혹은 그 반대일 수도). 여기에 맥락 없이 끼어드는 음악과 야구 이야기. 그리고 여자 이야기.  

하루키는 여전히 소년성을 버리지 못했고, 여자에 대한 소년적인 판타지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잘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남자 주인공(스스로도 확실하게 인정하는)을 어쨌거나 좋아하고 집착까지 하는 여자들이 꼭 등장한다. 그 여자들과 어쩐지 손쉽게 가까워지고 손쉽게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도 여전하다. 그런 일상과 삶, 관계와 관념이 별것 아니라는 듯, 아무 관심 없다는 듯(사실은 굉장히 관심 있으면서. 어쩌면 온통 그 관심뿐면서) 건조하게 그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인간을,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변했을 법도 한데, 칠십을 넘긴 노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데뷔작을 지배했던 소년의 눈 그대로인 것 같다. 그 눈을 계속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아닌 척, 쿨한 척하지만 자기 안의 소년성이 사라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붙잡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도. 어쩌면 그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글쓰기를 유지하는 하루키만의 동력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런 시선, 특유의 일인칭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과 타자, 삶의 단면들을 여전히 무미건조하고 별 볼일 없이(별 볼일 없는 척) 그리고 있다. 아닌 척하면서도 소년이 어른을 흉내 내는 것처럼 꽤나 겉멋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소설집의 색깔은 유난히 하루키의 초기 작품들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은 대게 무미건조한 청춘 남녀의 일상 혹은 중년 남자와 소녀(혹은 묘령의 여자)의 우연한 만남, 술집에서 누군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털어놓는 회고담 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정말 엉뚱하게 야구나 음악에 대한 보고서 같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따라 읽지만, 굳이 두 번은 읽고 싶지 않고, 대부분 한 번 읽고 난 후에 금방 내용(내용이라고 할만한 게 없는 게 대부분이지만)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하루키의 단편 중에는 간혹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섞인 일탈적인 이야기도 있다.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 '빵 가게 재습격',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렉싱턴의 유령' 같은 작품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루키의 새로운 단편집을 읽을 때마다 내가 기대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아쉽게도 '일인칭 단수'에 수록된 모든 단편들은 내가 기대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그저 무미건조한 남녀의 이야기, 혹은 어떤 회고담 같은 것, 엉뚱하게 등장하는 야구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럭저럭 따라 읽기는 하지만 두 번은 읽고 싶지 않고, 읽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그래서 이번 작품집이 내게는 하루키 스타일을 다시 확인하는 복습과도 같았다. 특별한 내용 없이 하루키 스타일만 견고하게 살아 있는, 무미건조하고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나 습작 같은 느낌이 나는, 하루키를 우려낸 재탕 같은, 그럼에도 그럭저럭 읽히는 단편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이 작품이 정말로 하루키의 최신작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출판 인쇄 날짜로서의 최신작이 아니라 책 속에 수록된 작품(원고)들이 집필되고 완성된 날짜로서의 최신작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러니까 '여자 없는 남자들'과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쓰고, 벨트 문학상과 안데르센 문학상까지 수상한 이후, 혹은 그 즈음에 쓴, 2010년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2010년대의 의식과 시선으로 쓴 (최신)단편들이 맞는지. 혹시 아주 오래전 데뷔 시절에 쓴, 무렵에는 발표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서랍 속에 묵혀 두었던, 먼지 묻은 습작 같은 원고들을 이제야 끄집어 내 신작 소설집인 양 묶어 낸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하루키는 왜 자신의 재탕과도 같고, 자기 스타일의 복습과도 같은 이런 단편들을 근자에 열심히 썼던 것일까. 그리고 그 원고들을 묶어 출판하기에 이른 것일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나와 같은 하루키 마니아들에게 이 책에 수록된 내용들이 얼마만큼의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어떤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새로운 감동도 의미도 없다면 그 책은 아무리 최신작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난히 감동도 의미도 찾기 힘든, 재탕과도 같고, 이미 다 아는 내용의 복습과도 같은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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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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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작품집! SF소설의 존재 이유가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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