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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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스는 현존하는 최고의 공포소설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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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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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시리도록 아름다운, 하룻밤 꿈 같은 우리들의 청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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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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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쫓다보니, 내가 괴물이 되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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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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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설가 중에서 김훈만큼 소설적 소재를 잘 선택하는 작가도 드문 것 같다. '칼의 노래'에서는 임진왜란과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루더니, 이번에는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의 이야기다.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이 마침내 삼전도로 나와 청에게 투항하기까지 한 달 보름간의 이야기다.

줄기를 이루는 서사는 평이하다. 그러나 서사 속에 담긴 뜻은 가파르다.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 샌가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오는 산행처럼, 단순명료한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샌가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이 폭발하려는 순간, 서사와 인물들은 하나가 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틔이듯, 서사가 진행될수록 남한산성을 둘러싼 당대의 역사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신분도, 성격도, 사상도 제각각이던 인물들이 서서히 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고매한 정승들도, 우매한 민초들도 결국에는 나약한 인간으로 묶여진다. 그즈음 이미 감정은 식어, 한숨이 된다. 서사는 끝나고, 인간만 남는다. 남한산성에서 많은 이들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그렇게 죽어 갔지만, 그래도 살아 남은 인간들이 있다. 임금도 살아남고, 인간도 살아남는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질기다. 밟히고 쓰러져도, 한참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다시 일어나, 잡초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역사는 이어진다.
 

인조는 마침내 삼전도로 나와 청의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하지만, 기실 그보다 굴욕적인 것은 그 굴욕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임금이 꼼짝달싹 못한 채 한달 보름동안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는 자체가 굴욕이다. 그 안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굴욕이다. 임금과 신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공허한 언쟁만 벌였다는 것이 굴욕이다. 한달 보름동안 가슴을 쥐어뜯는 민초들의 고통을 못 본 척 했다는 것이 굴욕이다. 언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적의 총탄에 머리가 깨어지고, 다리가 잘려 나가고, 반병신이 된 몸으로 급식조차 외면당한 채 굶어죽고, 얼어죽는 병사들을 어찌하지 못 하고 그저, 지켜만 봤다는 것이 굴욕이다. 10만 청군으로 둘러싸인 남한산성 안에서 한달 보름동안 결국, 싸우지도 못하고, 수성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 한 채, 성안의 모든 것들이 말라 비틀어지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마침내 항복이라는 하나의 선택밖에 남지 않았을 때, 비굴하고, 무력하게 그것을 취했다는 것이 굴욕이었던 것이다.
임금을 앞에두고 신료들이 벌이는 언쟁은 답답하다 못해 우습고, 우습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했다. 적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답은 뻔히 나와 있는데, 최명길의 말처럼 길은 하나 뿐인 듯 싶은데, 어쩌자고 저들은 그 좁은 돌구멍 속에 틀어박혀 그 안에서 지들끼리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너희 군신이 그 춥고 궁벽한 토굴 속으로 들어가 한사코 웅크리고 내다보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하는 적장의 말에 오히려 수긍이 갈 정도였다.

저 아둔함과 한심함이 낳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그 과정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훈의 경이로운 문장 앞에서는 탄복을 금치 못한다. 문장의 힘이 서사를 압도한다. 옥토에서 작물이 왕성하듯 좋은 소재가 좋은 문장을 만나 힘찬 서사로 뻗어나간다. 

김훈이 구사하는 언어는 동시대 작가들의 것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그가 휘두르는 언어의 칼은 서슬퍼른 무사의 칼이다. 그래서 그가 다루는 이야기도 무사의 칼로 다룰 수 있는(다룰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무사의 칼로 요리나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 또한 장작을 패거나, 들짐승을 사냥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무사의 칼은 수련을 하거나, 전장에서 사용되어져야 마땅하다. 스스로를 다스리거나, 타자를 다스리는데 사용된다. 김훈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의 칼로, 자신만의 언어의 칼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침을 흘리는 혹은 한 남자를 두고, 세 여자가 안달하는 따위의 요상한 연애담이나, 실연을 당하고, 술을 퍼마시고, 과거의 추억을 끝없이 상기하고, 눈물이나 찔찔 짜는 신파나, 한량들의 술주정 같은, 백수들의 잠꼬대 같은 공허한 농담 따위는 하지 않는다. 무사의 칼이 할 이야기가 아니다. 무사의 칼은 안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베거나, 앞으로 나아가 적을 베는 이야기를 한다. 간단하지만 명확한 힘이 실려 있고,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다. 같은 말을 계속 곱씹고 주저하고 망설이고, 한자리를 맴도는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비록 그 전모가 다 드러났다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장수 같은 기백과 찡한 박력이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김훈의 문장과 서사에는 '아쌀한' 맛이 있다. 미지근하지 않고, 화통하다. 감동이 가슴을 찌르듯 직접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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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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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명문가의 일족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명. 아름답고 영특한 소녀 히사코. 그러나 그녀는 눈이 먼 소녀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만, 진척이 없다. 앞을 볼 수 없는 히사코는 목격자가 될 수 없고, 다른 누구도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진범이 나타난다. 죽은 시체로. 진범으로 보이는 사내는 사건 일체를 자백하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고, 시간은 흐른다.
히사코의 옆집에 살았던 한 소녀, 마키코가 자라나 대학생이 된다. 마키코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조사하여 논문을 쓴다. 논문은 곧 책으로 출간되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로부터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때의 사건을 조사한다.
소설은 그 누군가가 당시 사건과 관련되었던 여러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진술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듣는 진술들에서 잊혀졌던 진실의 편린들이 나타난다. 진술을 한 당사자조차도 당시에는 잊고 있었던 사실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야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진실의 조각들이 모인다. 과거의 사건은 현제의 진술과 조사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된다. 재조립된다. 진실의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듯 한다.
그러나 그림은 늘 한 조각이 부족한 상황에서 끝나 버린다. 진실의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마지막 한조각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을까...  

'유지니아'는 2005년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06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온다 리쿠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아름답고 꼼꼼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소설의 몇 페이지를 넘기면 곧바로 떠오르는 다른 작품이 있다. 1999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다. 그러나 '이유'와 '유지니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명확성'에 있는 듯 싶다. 이유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건의 전후 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명확한 진실을 전달한 후, 과연 그 엄청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문제를 독자에게 던진다. 그러나 온다 리쿠는 진실 그 자체에 의문을 건다. '진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라는 문제를 던진 것이다. 그래서 유지니아에는 답이 없다. 진실에 대한 답은 독자의 몫이다. 어떤 진실이 그려질 지는 독자의 머리마다 다를 것이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란 그만큼 힘들다. 또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이해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진실도 결코 하나의 모습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완전하게 보여질 수 없는 법이다. 보려는 사람에 따라, 일부분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 일부가 그 사람에게는 전부가 될 수도 있다. 복잡한 문제다.
이렇듯 복잡한 문제를, 온다 리쿠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부드럽게, 혹은 비밀스럽게 전달한다. 온다 리쿠의 문장은 가히 신비스럽다. 절제된 듯 하면서도 문장 하나에, 단어 하나에 일순 모든 것을 드러내보이기도 한다. 멋드러진 문장으로 감정의 완급 조절을 훌륭히 해낸다. 문장의 분위기나 색채도 미야베 미유키와는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미유키의 문장이 다소 건조한데 비해, 온다 리쿠의 문장은 대단히 축축하다. 문장을 쥐어 짜면 많은 것들이 나올 것 같다. 문장 속에 지난 시간이 서려있고, 시간 속의 추억들이 서려있고, 추억 속의 진실, 그 진실의 편린들이 숨어 있다. 대단히 감성적이고, 비밀스럽고, 음험하고, 무섭고, 아련한 문장이다. 그런 문장으로 추리소설을 쓴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쩌면 추리소설이 아닐 수도 있다. 정통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추리라는 말은 빼고, 그저 하나의 장편소설로서 읽혀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지만, 완성된 그림은 제시되지 않는다.
온다 리쿠는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이해될 수는 없다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하나의 이해일 수 있다고. 그래서 세상은 이해되는 것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다고. 애써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이해를 바라지만, 기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애써 진실의 그림을 완성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정작 바라는 것은 완성된 진실의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저마다의 의도(목적)의 실현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고,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타자에게 이해시키려고, 그렇게 열심히 타자를, 대상을, 세상을 이해하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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