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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유서 깊은 명문가의 일족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명. 아름답고 영특한 소녀 히사코. 그러나 그녀는 눈이 먼 소녀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만, 진척이 없다. 앞을 볼 수 없는 히사코는 목격자가 될 수 없고, 다른 누구도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진범이 나타난다. 죽은 시체로. 진범으로 보이는 사내는 사건 일체를 자백하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고, 시간은 흐른다.
히사코의 옆집에 살았던 한 소녀, 마키코가 자라나 대학생이 된다. 마키코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조사하여 논문을 쓴다. 논문은 곧 책으로 출간되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로부터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때의 사건을 조사한다.
소설은 그 누군가가 당시 사건과 관련되었던 여러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진술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듣는 진술들에서 잊혀졌던 진실의 편린들이 나타난다. 진술을 한 당사자조차도 당시에는 잊고 있었던 사실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야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진실의 조각들이 모인다. 과거의 사건은 현제의 진술과 조사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된다. 재조립된다. 진실의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듯 한다.
그러나 그림은 늘 한 조각이 부족한 상황에서 끝나 버린다. 진실의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마지막 한조각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을까...
'유지니아'는 2005년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06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온다 리쿠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아름답고 꼼꼼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소설의 몇 페이지를 넘기면 곧바로 떠오르는 다른 작품이 있다. 1999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다. 그러나 '이유'와 '유지니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명확성'에 있는 듯 싶다. 이유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건의 전후 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명확한 진실을 전달한 후, 과연 그 엄청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문제를 독자에게 던진다. 그러나 온다 리쿠는 진실 그 자체에 의문을 건다. '진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라는 문제를 던진 것이다. 그래서 유지니아에는 답이 없다. 진실에 대한 답은 독자의 몫이다. 어떤 진실이 그려질 지는 독자의 머리마다 다를 것이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란 그만큼 힘들다. 또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이해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진실도 결코 하나의 모습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완전하게 보여질 수 없는 법이다. 보려는 사람에 따라, 일부분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 일부가 그 사람에게는 전부가 될 수도 있다. 복잡한 문제다.
이렇듯 복잡한 문제를, 온다 리쿠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부드럽게, 혹은 비밀스럽게 전달한다. 온다 리쿠의 문장은 가히 신비스럽다. 절제된 듯 하면서도 문장 하나에, 단어 하나에 일순 모든 것을 드러내보이기도 한다. 멋드러진 문장으로 감정의 완급 조절을 훌륭히 해낸다. 문장의 분위기나 색채도 미야베 미유키와는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미유키의 문장이 다소 건조한데 비해, 온다 리쿠의 문장은 대단히 축축하다. 문장을 쥐어 짜면 많은 것들이 나올 것 같다. 문장 속에 지난 시간이 서려있고, 시간 속의 추억들이 서려있고, 추억 속의 진실, 그 진실의 편린들이 숨어 있다. 대단히 감성적이고, 비밀스럽고, 음험하고, 무섭고, 아련한 문장이다. 그런 문장으로 추리소설을 쓴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쩌면 추리소설이 아닐 수도 있다. 정통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추리라는 말은 빼고, 그저 하나의 장편소설로서 읽혀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지만, 완성된 그림은 제시되지 않는다.
온다 리쿠는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이해될 수는 없다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하나의 이해일 수 있다고. 그래서 세상은 이해되는 것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다고. 애써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이해를 바라지만, 기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애써 진실의 그림을 완성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정작 바라는 것은 완성된 진실의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저마다의 의도(목적)의 실현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고,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타자에게 이해시키려고, 그렇게 열심히 타자를, 대상을, 세상을 이해하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