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농할멈과 나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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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무서워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무섭고 섬뜩했던 귀신의 추억,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아이 시절의 추억, 사라져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쓸쓸함과 비애의 추억까지. 그 시절의 모든 것을 그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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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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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이자 블랙코미디이며, 모험 활극이자 한순간 가슴을 울리는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마지막 작품에서까지 장르의 대가답게 다양한 색과 맛을 내려고 노력한 저자의 열정에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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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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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말이다. 섣불리 내뱉은 말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독이 되고 칼이 되고 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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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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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대만,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들이 '젓가락'을 소재로 릴레이 형식으로 쓴 소설들을 모았다. 이름만으로도 책을 서슴없이 구입할 수 있는 미쓰다 신조와 찬호께이가 함께 참여한 작품집이라 큰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책을 구입했으나 독서 후 감상은 기대에는 조금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쓰다 신조가 쓴 첫 번째 수록작이 공포감을 자극하는 면에서는 가장 좋았으나 공포를 강조한 만큼 미스터리 구조에서는 완결성을 띠지 못해 독립적인 단편으로서는 만족감이 크지 않았다. 물론 이 소설집은 릴레이 형식으로 이어지는 작품집이라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다음 작가가 이어받아 쓰고, 또 다음 작가가 앞선 작품을 이어받아 쓰는 식의 구성을 이룬다. 마지막 주자인 찬호께이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대단원을 장식하는데 사실 이런 형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선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다음 이야기의 단서가 되거나 복선이 되는지 신경 써서 읽어야 하니 피곤하기도 했고, 미처 놓치거나 잊힌 부분이 있으면 다시 앞의 이야기를 들춰봐야만 하는 성가심도 있었던 것이다.

그냥 깔끔하게 젓가락을 소재로 각기 독립된 단편을 써서 모은 것만 못한 결과물이 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다. 실험성은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장르적 재미를 느끼기에는 다소 산만하거나 늘어지는 면이 있었다. 수록작 모두가 미스터리 부분에서 감탄스럽거나 매끈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찬호께이가 쓴 마지막 수록작은 유난히 늘어지는 분위기에 어설픈 유머까지 곁들이고 있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같은 소재로 글을 쓰다 보니 작품집 전체가 중언부언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나마 두 번째 수록작인 '산호 뼈'가 가장 인상적이었으나 미온적인 결말은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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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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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꿈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인간들의 서글픈 운명을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훗날 영국인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여주인공 에츠코의 눈을 통해 전후 나가사키 마을의 암울한 풍경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딸의 그림자가 떠도는 영국에서의 삭막한 삶이 교차된다. 어디의 풍경이나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지나온 시간이 조금은 더 가볍고 환하게 보이는 법이다. 현재의 삶이 쓸쓸하고 암울할수록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힘겨웠으나 지나왔기에, 그 시절을 조금은 추억할 수 있다. 힘겨웠지만 그래도 멀어진 거리감만큼 아득하고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희미하게 반짝이는 빛도 이제는 보인다. 현재에서는 굳건히 잠겨 있는 감정의 문도 과거로 향하면 저도 모르게 헐거워지고 슬쩍 쿵 열리기도 하는 법이다. 현재를 직시하는 눈은 냉혹해도 과거를 향하는 눈은 조금은 더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에츠코는 그렇게 과거를 추억한다. 나가사키 시절을 떠올리면 그녀의 기억 속으로 제일 먼저 뛰어드는 인물이 사치코다. 에츠코는 사치코를 추억하며, 그 시절 자신의 모습도 함께 추억한다. 어린 딸을 데리고 홀연히 마을로 나타난 사치코는 가진 건 없어도 기품이 흘렀고 도도했다. 그녀는 일본의 명문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지만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빈털터리 신세에도 버리지 못하는 도도함은 주위의 눈총을 사고 현실의 걸림돌만 될 뿐이다. 가난에 못 이겨 에츠코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사치코는 허드렛일을 해내지 못한다. 그녀는 도도함을 못 버린다. 비참한 현실을 단번에 벗어날 수 있는 도약을 꿈꾼다. 도약의 길이 미국에 있다고 믿는다. 사치코는 미국인 남자를 만나고 그를 따라 미국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는 사이에 사치코의 어린 딸은 소외되고 상처받고 자기 세계에 갇혀 버린다. 사치코에게 어린 딸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자신의 꿈이 딸의 꿈이고, 자신의 성공이 딸의 성공과 이어질 거라 믿는다. 

에츠코는 근심 어린 눈으로 사치코 모녀를 응시한다. 그 근심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치코의 꿈과 미래만큼이나 에츠코의 꿈과 미래도 종잡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었다. 에츠코는 나가사키에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생이 뜻한 바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잠기곤 한다. 사치코의 거듭된 실패와 방황을 지켜보면서 불안과 근심은 짙어진다. 닮고 싶지 않은 사치코의 생과 자신의 생이 겹쳐지지 않을까 에츠코는 두렵다. 사치코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그 대가로 큰 희생을 치를 것만 같고, 그것이 사치코만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을 가진다. 사치코와 어린 딸을 걱정하면서도 그들과 자신의 삶을 분리시키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들과 진정한 소통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 시절 나가사키는 그런 곳이었다. 모두가 상처에 갇혀 있던, 미래와 꿈이 짜부라져 있던, 운명을 종잡을 수 없던, 그래서 바로 곁의 사람과도 심지어 가족과도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던.   


전쟁과 원폭이 휩쓸고 간 것은 물질만이 아니었다. 정신까지 앗아갔다. 반쯤 넋이 나간 사람들이 그래도 살아가려, 자신을 놓지 않고, 생을 놓지 않고 살아가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안간힘을 쓴다. 에츠코와 사치코의 생을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크나큰 시련이 휩쓸고 간 후의 생존법에 대해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인생은 거의 대부분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의 삶이란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다. 크고 작은 시련이 도처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운명의 조각배를 뒤흔든다. 처음의 항로를 벗어나 운명은 내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잡을 수 없는 것과 잡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 생을 지배한다.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지만 원치 않는 운명의 굴레는 종종 어깨에 덧씌어지곤 한다. 그러니 잡을 수 없는 것에 애달프게 매달려봐야 소용없고, 내 몫의 운명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나가사키에서 살아가던 시절만 해도 에츠코는 먼 훗날 일본을 떠나 영국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예상치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본을 떠나고 싶었던 이는 에츠코가 아니라 사치코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개개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거대한 시련은 무정하게도 두 사람의 운명을 엉뚱한 방향으로 옮겨놓고 말았다. 피할 수 없는 시련과 운명의 굴레 속에서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관심과 소통뿐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더 유심히 바라보는 것. 일상을 소중히 지키는 것. 단 한 번 에츠코와 사치코, 그리고 사치코의 어린 딸이 함께 언덕으로 소풍을 떠난 적이 있는데 그때 보았던 빛나던 풍경 같은 것.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향기처럼 은은히 감돌던 여유와 연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소통의 감정들. 그런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작지만 단단한 우주를 만들 수 있다면 운명의 굴레를 견뎌내는 일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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