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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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이 살아온 것 같아 읽을 수록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별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삶을 통찰하는 시선은 그다지 깊지도, 예리하지도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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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호의 악몽 1 버티고 시리즈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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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빙하보다,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북극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항한 최신식 증기 범선 이리버스 호와 테러 호가 캐나다 북단의 빙하 지대에 갇혀 고립된다. 이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현실은 악몽에 잠식당한다. 본국과의 연락은 두절됐고, 향후 일정을 두고 선내에서는 갈등이 빚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선원들의 주식이 되어줄 통조림이 군납 비리에 의한 납땜 불량으로 절반 이상이 부패했으며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괴물까지 등장해 선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괴물의 존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덩치도 크고 가공할 힘을 지녔으며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당할 재간이 없다. 외형은 거대한 북극곰을 닮은 듯하지만 북극곰이 그렇게 클 수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나타났거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의 세계로 인간들이 진입한 것이다. 

고립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악몽은 더욱 짙어진다. 선원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고, 부패한 음식으로 인해 괴혈병으로 죽고, 느닷없이 출현한 빙하 괴물에게 무시로 잡아먹히기까지 한다. 함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하나둘씩 죽자 선원들의 기강도 느슨해지고, 상관에 대한 반발과 불복종의 조짐까지 보인다. 마침내 배를 버리고 빙하를 이동해 살 곳을 찾아 나서지만... 추위와 질병, 괴물의 습격,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 발동한 인간의 흉포한 본능과 야만성이 남은 사람들의 목숨을 시시각각 위협한다. 


댄 시먼스의 역작 '테러호의 악몽'은 실화를 극화한 작품으로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한 본능을 날카롭게 묘파해 북극의 얼음장 같은 추위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괴물의 공격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는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역설한다.   

1권 중반까지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데 함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차례로 죽어나간 후 몇몇 선원들의 마음에 광기가 발동하는 순간부터 강렬한 흡인력을 자랑하며 2권 마지막까지 쉴 틈 없이 읽힌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의 북극 판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이 얼마만큼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지,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악몽과도 같은 고립과 재난 상황에서 진짜 공포는 인간들의 손에서 빚어진다. 동료에게 느닷없이 칼날을 날리고, 편을 갈라 상대를 끔찍하게 도륙하고, 급기야 인육까지 섭취하는 인간의 소름 끼치는 만행은 거대 괴물의 공격을 귀여운 수준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다. 

댄 시먼스는 브램 스토커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공포에 대한 이해와 묘사가 무척 탁월하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난 소설로도 읽히지만 공포소설로 봐도 역대 공포소설 베스트에 오를 만큼 성취도가 높다. 

처음에는 빙하 괴물의 등장에 당혹스럽고 적대적인 감정도 들었지만 나중에는 괴물이 선원을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공포보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괴물의 출현 빈도가 낮아지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도 남기 때문일 것이다.

작중 또 하나 인상적인 인물은 신비한 아우라를 품은 인디언 처녀였다. 인디언 처녀가 등장할 때마다 뭔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끔찍한 악몽 같은 재난과 공포 속에서 인디언 처녀는 기이한 위안과 위로, 휴식을 제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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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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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후 ‘열대‘ 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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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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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 높은 중년의 변호사가 살해된 채 차 안에서 발견된다. 수사를 맡은 형사 고다이는 피해자 주변 인물을 탐문하지만 사망한 변호사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는 성실하고 정의롭고 선한 변호사였다. 

실낱같은 단서들에 기대 힘겹게 수사를 이어가던 중 고다이는 생전의 피해자와 통화했던 한 인물을 찾아 탐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사람 역시 피해자와 크게 연관 있는 인물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같은 장소가 존재한다. 그 장소가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헤치던 중 고다이는 몇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하는데... 갑자기 그가 모든 것을 실토한다. 

이제 그만, 됐습니다. 전부 내가 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의 범인은 나예요.

자백에 의한 피의자 검거.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며 수사는 일단락된 듯 보였으나 고다이는 뭔가 석연치 않다. 

우리는 정말 미궁에 빠지려는 사건을 해결한 것인가. 어쩌면 새로운 미궁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한편 범인이 드러났지만 피해자의 딸은 납득할 수가 없다. 사건 전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납득할 수 없기는 피의자의 아들도 마찬가지. 역시나 아버지가 '죽인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 함께 '진짜 이유'를 찾아나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데뷔 35주년 기념 작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무려 18000원이라는 높은(그리고 불만스러운) 가격으로 출간한 '백조와 박쥐'는 특별한 기념작답게 재미있게 잘 읽힌다.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그동안 숱한 작품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줬던 여러 서사와 이미지, 트릭들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진수성찬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잘 끓인 잡탕찌개가 될 수도 있겠다.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특징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사와 트릭, 캐릭터, 사연들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서사의 진행이나 미스터리 구조가 어딘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짐작 가능한 수준으로 서사가 흐르거나 독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는 작가의 미끼와 덫이 종종 눈에 보인다. 가령 '모든 사건의 범인은 나예요'라고 외치며 스스로 유치장으로 들어가는 용의자가 사실은 진범과는 거리가 멀거나 말 못할 사연 때문에 진범인 척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 마니아(혹은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예측 가능하다. 심지어 그 사연이나 숨겨진 뒷 배경, 베일에 가려진  진실조차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거나 적어도 드러난 그 모양새가 그리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만큼 이 작품 속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이 진하게 녹아 있으며, 그간 작가가 써왔던 작품들의 특색이나 흔적 또한 숱하게 배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용의자 X의 헌신'이다. 다시 쓰는 용의자 X의 헌신이라 해도 좋을 만큼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다('용의자 X 2의 헌신'이라 할 만 하다). 그 외에도 '붉은 손가락', '기도의 막이 내릴 때', '기린의 날개' 등 작가의 대표작에서 경험했던 서사나 분위기, 트릭이나 사연의 냄새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럼에도 이런 익숙함이 마냥 단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당 부분 장점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를 특정 지었던 숱한 요소들은 다소 익숙하더라도 여전히 강력한 흡인력을 발산한다. 같은 맛을 내지만 먹을 때마다  맛있는 라면처럼.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에 익숙하든 말든 독자들은 이 스타일에 여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길로 반죽되어 구워진 미스터리의 빵은 여전히 풍미가 넘치고 맛깔난다. 이것이 눈속임을 위한 미끼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 좋게 물 수 있다. 미끼를 물고 작가가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도 여전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 휘둘림이 크게 신선하거나 충격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기막힌 반전이나 충격적인 진실 같은 것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소소(so so)한 반전과 결말이었다(피의자의 자식과 피해자의 자식이 함께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설정은 꽤 흥미진진했다).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단호하게 범죄자가 되려는 사람의 내면에는 어떤 뜨거운 감정이 들끓고 있을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명사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존경받는 정의롭고 선한 사람의 과거에는 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그들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죄의 씨앗은 어떻게 인간의 마음속에서 발아하는 것일까. 내 안에 한순간 드리워진 죄의 그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어둡고 차갑게 만드는 것일까. 얼마나 외롭고 무섭게 만드는 것일까.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 그늘은 사라지지 않고 먼 곳까지 뻗어나가는 것일까.

다소 낡은 주제일 수 있으나 죄와 인간. 그리고 정의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죄는 지어서 남 안 준다'라는 김운경 드라마 속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자기가 지은 죄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언제가 되든, 어떤 형태로 오든 반드시, 돌아온다. 죄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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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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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의 총집합. 또 다시 헌신하는 용의자 X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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