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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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트랙을 맴도는 늙은 조랑말의 이미지가 이 소설의 전부를 대변하고 있었다. 말은 늙고 지쳤으며 아이조차 태우기 버거울 정도로 힘이 없다. 마부가 이끄는 대로 터벅터벅 걸어서 똑같은 트랙을 돌고, 이따금 물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다. 그 구차한 일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며, 살아 있기에 그 구차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말은 어금니 사이에 물린 재갈이 아직도 익숙지 않은 듯 틈만 나면 입을 벌려 뱉어내려 한다.

평생을 재갈 물려 발굽이 닳도록 달리고 달려왔지만 결국 쳇바퀴 돌듯 좁은 원만 반복해서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허망하고, 구차하고, 부질없는 삶.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가혹한 운명의 끈. 소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터에서'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저 늙은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운명의 끈에서 달아나려 발버둥 쳐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누구도 가혹한 운명의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누구도 정해진 운명의 트랙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나마 처음의 생생했던 젊음과 반항기, 무모한 용기마저 소멸되고 늙고 초라한 몰골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바로 그 자리로.

인간의 삶은 운명에 갇혀 있다. 운명에 갇힌 삶은 설명되지 않고, 설명될 수도 없는 것이다. 탄생부터가 그렇다. 탄생은 선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원하는 시각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탄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탄생되고 만다. 무수히 탄생되고, 설명은 무수히 불가능해진다.

설명이 불가능한 것에 설명을 요구하는 순간이 오면 인간의 삶은 힘들어진다. 답 없는 문제를 푸느라, 혹은 문제없는 답을 구하느라 소용없는 시간만 흘러간다. 그 시간 위에 한숨, 증오, 절망, 분노, 시련이 서린다.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시간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고, 그렇게 이뤄진 역사는 다시 인간의 시간을 잠식한다. 인간의 삶을 잠식하는 순간부터 역사는 운명이 된다. 역사라는 이름의 운명 앞에 많은 인간의 시간들이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삶에 종말을 고한다. 속 시원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없거나, 쓸모없는 것들뿐이다. 삶의 중요한 부분, 역사의 중요한 부분들은 언제나 이해되기에 앞서서 이해받으려는 대상을 장악해 버린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운명이다. 세상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고, 우리가 느끼는 삶의 하중은 대부분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서 오는 것이다. 인간에게 지워진 운명의 끈은 그래서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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