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최고 매력남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안녕 내 사랑아'를 통해서였다. 말로는 여전히 냉소적이고 비정했으며, 여전히 멋있었다. 이 친구의 일과를 따라가다 보니 탐정이라는 직업이 참 부럽기까지 했다. 

안녕 내 사랑아는 전작인 빅 슬립보다 더 잘 읽혔고 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아름답고 애처로운 소설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는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순정파가 등장한다. 쇠처럼 차갑고 단단한 가슴을 지닌 비정한 우리의 주인공 말로와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눈물이나 질질 짜고 과장되게 감정을 자극하는 그런 진부한 로맨스가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폭력이 난무하고, 음모와 배신이 도사리는 가운데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가 진행되고... 비정한 어둠 속에서 옛 사랑을 찾아 떠나는 한 남자가 있고,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남자가 있고, 살인자가 있다. 살인자를 쫓는 경찰이 있고, 거짓말을 하는 노파가 있고, 부패한 경찰도 있고, 베일에 가려진 어둠의 세력들이 있고, 다시 힘겹게 옛사랑과 대면하는 남자가 있고, 변해버린 여자가 있다. 그리고 차갑고 무서운 사랑이 있고, 애처롭고 나약한 인간들이 있다. 그렇게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렇게 범죄가 진행된다.

 

이번에도 책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는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일 년은 지나버린듯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많은 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다 읽고 나면 말로와 거구의 사내가 만났던 첫 장면이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잊혀진 사랑의 기억이 꿈 속의 실루엣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듯...

챈들러의 문장은 얼음 조각처럼 차갑고 단단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물이 되어 녹아버리듯 짙은 허무와 슬픔을 자아낸다. 사랑 이야기가 전면에 녹아 흐르는 이 소설에 두 말할 나위없이 어울리는 문장들이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고, 하나의 범죄가 끝나도, 혹은 하나의 생명이 사라져도...

부패하고 비정한 세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삶도 계속되고, 사랑도 계속되고 있다. 잊혀지고 상처받는 것은 삶도, 사랑도 아니다. 시간의 굴레에서 버둥거리는 인간들일 뿐이다.

말로는 마치 불멸의 철학자처럼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는 비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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